'마이웨이' 전원주, 2번의 결혼·사별…파란만장 삶 고백[종합]

[연예]by 엑스포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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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전원주가 역경의 길을 지나고 찾은 행복을 이야기했다.


10일 방송된 TV CHOSUN '인생다큐-마이웨이'는 전원주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았다.


전원주는 남자들도 쉽게 가지 못했던 대학을 졸업한 뒤 신부감 1위로 꼽히는 선생님이 됐다. 3년 동안 교직생활을 했지만 이내 성우 시험에 합격해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텔레비전 시대가 오자 30년간 가사 도우미 역을 맡으며 무명 생활을 보냈다.


전원주는 "성우할 때 DJ를 많이 했다. 그때만 해도 젊었다. 목소리가 예쁘다. 얼굴이 안 나가 주인공을 많이 했다. 대학교 졸업하고 성우를 했다. 학교에서 교사를 2년 하다가 성우로 들어왔다. 오래 했다. 10년 했나"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때는 교사가 신붓감 1위다. 우리 엄마가 볼 때 얼굴은 갈라져셔 못 봐주겠다 싶어서 공부를 많이 가르쳤다. 정화여상에서 국어 교사를 3년 했는데 뜻이 없었다. 밤낮 드라마 각본이나 봤다. 어머니가 더 속상한 건 동네 아주머니들이 '대학교까지 가르치고 선생 만들어서 무슨 짓이야' 한다. 그럼 속이 상해서 때렸다. 난 오로지 연예계만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전원주는 "20명 뽑는데 천 명이 넘게 왔다. 사미자, 박정자, 진성만, 김무생이 동아방송 1기 동기다. 라디오가 사양길로 기울고 텔레비전이 생기면서 전부 뽑혀 간 거다. 성우실에 앉아 있으면 연출실로 와 한 바퀴를 돈다. 날 한참 본다. 무슨 드라마의 가사 도우미 역할을 주더라. 헌 옷 입혀 놓고 시커먼 분장하고 나가면 그만이다. 다른 역할을 안 준다. 무명 생활을 30년 동안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한 광고에서 호탕한 웃음소리를 뽐낸 덕분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생애 첫 드라마 주연을 맡은 것은 물론 각종 광고를 휩쓸며 톱스타가 됐다. 눈물로 이뤄낸 값진 결과였다. 전원주는 "화장실에서 많이 울었다. 달래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뛰어들어간 곳이 화장실이다"라고 이야기했다.


故 여운계의 사진을 보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다. 사진을 없애기 싫더라. 내가 어려울 때 많이 정신적으로 도와줬다. 울고 있으면 안아주머 '바보야. 연예계가 쉬운 줄 알았어? 나도 힘들었지만 지금 좋잖아. 동정해 줄 사람 없다.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뜰 수 있다. 네 얼굴 보니까 나중에 좋겠어'라고 하더라. 이후 친해졌다. 눈물 난다"며 미소 지었다.


등산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전원주는 "매일 산에 올라왔다. 속상한 걸 참고 기다렸다. 내게도 해 뜰 날이 오겠지 했다. 연예계 생활이 힘들었다. 무관심이 무섭다. 밥 먹을 때도 내게 같이 가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90도로 인사하고 담배 심부름도 다 했다. 김성겸과 부부 역할 하다가 잘렸다. 카메라에 안 잡힌다고 해서 내가 빠졌다. 속상했다. 단역들은 교체가 많았다. 학교에서 애들도 식모 역할 하는 걸 다 안다. 우리 아이들이 집에 와서 울면서 학교 오지 말라고 했다. 산에 올라가서 떨어져 죽고 싶더라"고 털어놓았다.


전원주는 결혼 3년 만에 폐결핵으로 남편을 떠나 보내고 갓 돌이 지난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운명으로 다가온 두 번째 남편과 재혼했다. 전원주의 아들과 남편의 아들까지 네 식구가 함께했다. 두 아들을 위해 재혼한 남편 사이에서는 자식을 갖지 않았다.


전원주는 "엄마가 좋은 남자를 얻게 해주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무조건 서울대였다. 인물 좋고 집안도 아버님이 치과 의사였다. 알고 보니 폐결핵 환자였다. 몰랐다. 기침하는데 피가 나더라. 엄마는 무조건 잘생기고 서울대 나오고 집안 좋다고 좋아했다. 건강을 먼저 체크하지 못한 게 실패 원인이다. 우리 엄마가 억지로 떠밀었으니 미안해했다. 엄마가 '네 일생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아들 하나만 믿고 열심히 살면 남편 이상으로 밀어주겠다더라"고 고백했다.


그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재혼한 것에 대해 "쫓겨났다. 돈도 하나도 안 줬다. 미아리 공동묘지에 5만원짜리 사글셋방에서 살았다. 밤에 비가 새서 (양동이를) 갖다 놨다. 바람이 불면 집이 흔들렸다. 29살인가 30살도 안 됐는데 너무 잔인했다. 때는 아이를 데리고 재혼하는 게 있을 수 없었다. 혼자 과부로 지내는 게 통념인데 난 용납이 안 됐다"며 힘든 세월을 언급했다.


전원주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재혼할 수 있었다. "아들은 내가 키워야 하니 남편에게 얘기했고 이해하더라. 편애를 안 했다. 그 부분은 정말 인간적이었다. 아이들의 성은 다르다. 조상이니까 바꿀 수가 없다. 남편은 부끄럽다고 바꾸자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조상의 핏줄이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 원리원칙을 지켜야 한다. 큰 아들은 임씨, 작은 아들은 고씨였다. 자기들끼리 알았을 거다. 아버지가 다른 건 안 물어봤다"고 말했다.


이어 "재혼하고 유산을 5번 했다. 나중에는 깨어나지를 못했다. 자녀를 안 낳았는데 잘 한 것 같다. 아이들이 잘 자라게 만들어줘야 하고 떳떳하게 자랄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부모가 돼야 하는 게 철칙이다. 떳떳하다. 내가 둘 다 똑같이 키웠다. 편애하지 않았다. 남의 애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남편이 땅을 판 돈으로 남에게 다 뿌렸다. 난 방송이 미쳐 있을 때라 몰랐다. 파주에 갔더니 여자가 셋이 있었다. 뒷조사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라 믿었다. 엄마가 남편에게 여자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따졌다. 내가 엄마를 잡고 말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남편이 죽은 후에 소문이 나더라. '저 사람이 전원주 남편의 세컨드'라는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때로는 미웠지만 사랑했기에 남편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전원주는 "부부는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손잡고 가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 마지막에는 날 붙들고 울더라. '여보 미안해 고마워'라고 했다. 전원주가 짠순이인 건 이세상이 다 안다. 좋은 데 기부도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멋있게 쓰라고 하더라"며 그리워했다.


남편의 말을 실천하며 사는 전원주는 "남에게 베풀기도 해야 겠다 싶었다. 어르신들의 속상한 마음을 채워주고 싶은게 내 마음이다. 험난한 날도 있고 행복할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게 인간의 길이다. 힘들어도 참으면 웃음도 있다. 인간에 대해 배우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TV CHOSUN 방송화면

2019.04.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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