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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랜선 여행하는 법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습니다

by예스24 채널예스

여행의 클라이맥스, 랜선 여행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습니다

면보다 고기가 더 많았던 우리 동네 쌀국수

어떤 이들은 여행을 '일상의 되돌아봄'으로 성찰하기도 한다. 한국에 두고 온 직업, 집, 가족의 소중함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는 건 여행을 떠나고 나서부터라고 말한다. 내게도 여행을 떠나는 그럴싸한 이유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두려는 태도를 살짝 경계하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설렘 때문에 지금도 떠난다.

 

내 여행의 시작은 비행기 티켓을 사는 것부터가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이른데, 여행을 마치고 '귀국 편 비행기'에서 이전 여행과 미래의 여행이 갈린다. '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떠날 준비를 해볼까? 다음 여행지로는 어디가 좋을까? 몬트리올? 오클랜드? 그도 아니면 운남?' 가고 싶은 도시 후보를 끝도 없이 나열하면서 이다음 여행이 시작된다.

 

끝남과 동시에 시작이라니! 그러니까 나는 한시도 여행의 설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도시들의 언어, 음식, 물가, 항공권 등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보고 인터넷을 통해 검증의 시간을 갖는다. 우여곡절 끝에 한 달 살이를 할 만한 도시가 선정되면 항공권을 산다. 이후부터 짐 싸기, 출국하기, 비행기 타기, 숙소 찾아가기, 맛있는 식당 발견하기, 용케 이웃을 찾아내기, 쇼핑하기 그리고 귀국까지 여행의 많은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여행의 클라이맥스로 '랜선 여행'을 꼽을 것이다.

 

이번 겨울엔 호찌민을 다녀왔다. 그 남자도 나도 베트남은 처음인지라 어수룩하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 남자보다 내가 호찌민이 친숙했던 건 이미 '랜선 여행'을 마쳤기 때문이리라. 랜선 여행이 무엇인고 하니, 위대한 구글 맵이 축적해놓은 위성 지도 위에 전 세계 사람들의 한 줄 평이 결합된 정보의 집약을 말한다. 우리는 실제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숙소의 외관과 골목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슈퍼와 맞은편의 쿨한 카페를 방문할 수 있다. 구글 맵을 휘젓고 다니노라면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습니다'라는 말을 외치고 싶어진다.

 

남들 다 가는 쌀국수 가게 말고 나만의 호찌민 맛집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지도를 이용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계치에 응용력은 제로인 나 같은 사람도 자유자재로 활용이 가능하니 여러분도 할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첫째, 숙소의 위치를 파악한다. 자고로 단골이란 외출 전후로 아무 때나 들락거릴 수 있어야 하니 무조건 숙소 근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여야 한다. 둘째, 숙소 근처 쌀국수 가게를 하나하나 방문한다. 물론 구글 맵을 통해서다. 랜선 여행의 핵심은 얼마만큼 숙련되게 구글 맵을 활용하느냐이다. 다리품을 팔며 일일이 맛을 보고 다니지 않아도 10분만 투자하면 대략 다섯 군데 식당의 견적이 나온다. 셋째, 방문객들의 평점은 5점 만점에 3.8점 이상으로 하되 리뷰 수 50개를 넘긴 곳을 찾는다. 넷째, 가능하면 현지어로 작성된 리뷰를 번역기로 돌려보고 영어나 한국어가 많으면 그 식당은 과감히 패스한다. 외국 언어가 많다는 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일 경우가 많다. 다섯째,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쌀국수 가게에 별 마크를 붙여준다.

 

우연한 발걸음이 이끈 환상의 맛집? 이런 헛된 기대를 품느니 랜선 여행으로 검증된 맛집을 찾아 나서는 편이 낫다. 간혹 아무도 찾지 않는 식당을 홀로 전세 내는 데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면 말이다.

이 별에 데려다줘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습니다

누군가는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아무튼 그 여자의 안목은 인정해야 한다. 분명 낯선 도시였을 텐데 숙소며, 식당하며 하다못해 ‘요상한’ 관광지까지 어찌 그리도 잘 찾아놓았는지. 나 몰래 왔다가 점찍어두었던 곳에 다시 데려오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이다. 그럴 때마다 그 여자는 구글 맵 하나면 가보지 않아도 가볼 수 있다고 했다. 내 스마트폰에도 같은 지도가 들어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안목이 없다. 어쩌면 가보지 않은 곳을 살피고 자신의 취향을 찾아내는 것은 안목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나… 이 별에 좀 데려다줘.”

그 여자가 찾은 숙소는 우리 말고 다른 여행자가 과연 찾아올까 싶은 현지인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 옆방과 윗방에 머무는 이들은 같은 시간에 나갔다가 같은 시간에 들어왔고, 주말에는 끼니때마다 방 앞에 쌀국수 그릇이 나와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이 하루 10달러에 머물 수 있었던 이 숙소는 호찌민으로 일하러 온 이들이 장기 임대해서 머무는 곳이었다. 가이드북에는 소개되지 않는 그런 동네였음에도 그 여자는 별을 발견했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동네 쌀국수 맛집이며, 저녁 시간에 잠깐 문을 열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껌 땀 식당에 별 표시를 해두었다. 정작 지도를 볼 줄 모른다 하여도 아무튼 그 여자의 안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1월이라도 호찌민의 날씨는 무더웠다. 지도 위의 별을 찾아 다니고 돌아오면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야 했다. 대리석이 깔린 방바닥과 비슷한 탄력을 가지고 있는 침대였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태양의 기운이 몸에서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다른 침대를 생각했다. 물컹한 침대보다 딱딱한 탄력이 좋다. 그보다 딱딱하면서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그 느낌이 소중하다. 그 여자와 내가 돌아갈 곳에는 그런 탄력이 기다리고 있다. 등에 와 닿는 감각의 변화가 떠나온 곳을 그립게 한다.

 

그 여자가 미지의 공간을 기대하는 것으로 여행의 작은 행복을 찾는다면,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확신을 통해 여행의 행복이 극대화된다. 여행의 역설이라고 할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공간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지면 여행지의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지금 맡고 있는 낯선 도시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서 맡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당연히 누리고 있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익숙한 것이 멀어지니 소중해지고, 두고 떠나야 할 것이 그리워지듯이.

 

글ㆍ사진 | 백종민/김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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