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것의 반대는 ‘기다리는 것’

[컬처]by 예스24 채널예스

열세 번째 문제. 스파이크의 대화법

말하는 것의 반대는 ‘기다리는 것’

문제

다음은 『피너츠북』에 나오는 대화이다. 빈칸에 어울리는 답을 순서대로 골라보자.

 

1-1.

(라이너스와 루시가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루시 : 인생에 대한 고민이 엄청 많은데, 답을 하나도 못 찾겠어.

 

1-2.

루시: 난 정말 제대로 된 답을 원해.

 

1-3.

(멍하니 있는 라이너스를 보채며)

루시 : 의견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답을 듣고 싶다고!

 

1-4.

라이너스 : (     A     )

 

2-1.

(라이너스와 찰리 브라운이 썰매를 타고 있다.)

라이너스 : 할머니는 진짜 마음에 드는 작은 식당을 발견하셨대.

 

2-2.

라이너스 : 양은 적은데…

 

2-3.

(썰매가 넘어진다.)

라이너스 : (      B      )

 

1) A: 답이 없다는 게 내 의견이야. B: 맛이 끝내준대.

2) A: 찰리 브라운에게 물어보자. B: 무제한 리필이 된대.

3) A: OX로 대답해도 괜찮겠어? B: 메뉴 글자가 크대.

4) A: 스누피가 알 거야. B: 맛이 끝내준대.

5) A: 나는 답이 아니라 의견만 말할 수 있어. B: 메뉴 글자가 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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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네 칸 만화를 열심히 그린 적이 있었다.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혼자서 열심히 그렸다. 네 칸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는 제약이 좋았고, 마지막 한 칸에서 이뤄지는 반전을 생각하는 게 좋았다. 가끔 머릿속에 어떤 이야깃거리가 떠오르면 네 칸 만화에 어울릴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첫 번째 칸에서 분위기를 잡은 다음, 두 번째 칸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세 번째 칸에서 절정에 이르면 네 번째 칸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네 칸 만화는 모든 이야기와 플롯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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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미래』를 쓴 스콧 맥클루드는 (라스코 동굴의 벽화처럼) 연속 예술이었던 만화가 인쇄 매체와 만나면서 ‘칸에 갇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칸에 갇힌다는 것은 한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했다. 인쇄는 공간을 전복시켰고, 재료를 바꾸었다. 천이나 돌에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어졌고, 길이의 한계도 사라졌다. 스콧 맥클루드는 만화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술과 기술의 운명적 만남 이래로 만화를 창작하는 많은 이후 작업들은 어떻게 이것을 ‘맞추어 넣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몇 인치마다, 새로운 벽에 부딪히고 또 다른 한계점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우리가 ‘페이지’라고 부르는 작은 사각형 캔버스는, 한 세기 내내 장편 형식의 만화에 있어서 유일한 방식이었고, 여러 세대의 예술가들은 그것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수천 가지의 창조적인 해결책들을 찾아냈습니다.” (『만화의 미래』 228쪽)

수많은 예술가들이 칸과 칸을 창조적으로 연결시킨 덕분에 우리는 갇힌 공간 사이를 훨훨 날아다닐 수 있게 됐다. 만화를 보면서 칸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현실을 파악하고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만화는 우리에게 선물해주었다. 나는 만화의 칸 속에 적힌 말들을 보면서 대화의 묘미를 알았다. 만화에서는 말과 말이 섞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커다랗게 적힌 말들은 큰 목소리로 들리고, 작게 적힌 말은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들린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들이 오갔고,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말들이 표시됐다. 우리의 대화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예술은 만화일 것이다.


세스의 만화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에는 만화 『땡땡』에 대한 추억이 나온다. 만화에 푹 빠져 사는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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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볼 때마다 땡땡이 생각난다.”

 

“어쨌든 그런 것보다야 기차를 본 때가 훨씬 많으니까. 잉카 유적이나 진자, 7부 바지를 봐도 땡땡이 떠오른다.”

 

“지금 같은 순간이라면 <검은 섬>에서 땡땡이 기차 위를 달리다가 터널에 머리를 부딪힐 뻔하는 위기의 장면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영국 출판사 편집자가 에르제에게 아이들이 따라 할지도 모르니 그 장면을 지우자고 했었단다. 에르제는 거절했다.”

 

“재미있는 일이야… 에르제가 그 장면을 삭제했더라면 기차를 보며 땡땡을 떠올릴 일은 없었을 테지.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을 바꿨을 만한 소소한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아마 백만 개쯤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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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에게 ‘땡땡’이 있다면 내게는 ‘피너츠’가 있다. 나는 어떤 상황이 닥칠 때 스파이크의 표정을 떠올릴 때가 많다. 스파이크는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로, 사막에서 혼자 살아가는 스누피의 형이다. 스파이크는 두 팔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막의 선인장과 자주 대화한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식의 대화다.

스파이크 : (선인장을 바라보며) 만약에 은행 강도가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해야겠어? 맞서 싸울까?

(스파이크는 선인장의 모습을 응시한다. 선인장은 두 팔을 들고 있다.)

스파이크 : 그래, 그게 옳은 방법이겠지.

세스의 만화에는 작가 프랜 레보비츠의 말이 인용돼 있다. “말하는 것의 반대는 듣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스파이크야말로 진정한 대화의 달인이 아닌가. 선인장이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아도 오랫동안 기다린다. 선인장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나는 내 옆에 있는 선인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말을 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선인장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걸어갈 때에도 언제나 내 옆에 두 팔을 들고 서 있다. 늘 한결같은 모습인 것 같지만 선인장이 두 팔을 들고 있는 이유는 매번 달라 보인다. 나는 질문을 던지고, 오랫동안 선인장의 대꾸를 기다린다.

 

이제 답을 풀어보자. 라이너스의 엉뚱함을 안다면 쉽게 답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은 3번이었다.

 

글 | 김중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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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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