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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태국의 '알프스 마을' 도이퉁

by연합뉴스

마약 밭에서 희망의 커피농장으로 변신하다

태국의 '알프스 마을' 도이퉁

도이퉁 커피

태국 치앙라이주(州)의 도이퉁은 한때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추진한 대대적인 농촌개발 프로젝트가 도이퉁의 풍광과 주민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스위스풍 마을로 변모한 그곳에서는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아라미카 커피와 마카다미아, 도자기 등이 생산되고 있다.

 

도이퉁(Doi Tung)은 태국 최북단 치앙라이주(州)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산이다. 해발 1천390m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는 미얀마 샨 주(州) 따치레익, 남쪽으로는 태국 치앙라이가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차로 1시간 거리에 태국과 캄보디아를 가르는 메콩 강이 있다.

 

행정구역 명칭은 치앙라이주 '마에 파 루엉'(Mae Fah Luang) 지구. 150㎢ 크기의 마에 파 루엉 지구 대부분은 산악지대다. 산비탈에는 샨, 아카, 라후 등 6개의 소수민족 주민 1만여 명이 산다.

 

치앙라이 국제공항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아 꼬박 1시간. 완만한 도로의 경사가 점차 가팔라지고 도로변 풍경이 논밭에서 울창한 숲으로 바뀌면 도이퉁 입구다.

 

통상 태국 하면 아름다운 바닷가 리조트나 밤 문화가 화려한 해변 도시, 골프장의 푸른 잔디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도이퉁은 이런 일반적인 태국의 관광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곳이다. 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노점상의 호객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휘황찬란한 불빛도 없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시골 마을은 그래서 적막하기 그지없고 어쩌면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짙푸른 녹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광과 숲이 걸러낸 맑은 공기에 취해 온전한 '힐링'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제2위 마약 생산지 '오명' 벗다

태국-미얀마-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 국경이 만나는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에 속한 도이퉁.

 

이곳은 사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볼품없는 벌거숭이 민둥산이었고, 태국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거주이전의 제약을 받았던 이 지역 소수민족 주민의 삶은 피폐했다.

 

생계가 막막했던 고산지대 소수민족은 생존을 위해 벌목을 하고 숲에 불을 놓았다. 산은 황톳빛 맨살을 드러낸 채 신음했다.

 

도이퉁의 소수민족은 이렇게 개간한 땅에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심어 생계를 꾸렸고 일부는 자신들이 만든 마약에 중독됐다. 골든 트라이앵글이 세계 2위 마약 생산지라는 오명을 얻는 데 일조했던 셈이다.

 

도이퉁의 변화는 1988년 푸미폰 전 국왕(2016년 10월 서거)의 어머니인 스리나카린트라(1900∼1995) 대비(大妃)의 주도로 시작됐다.

 

당시 90세로 말년을 보낼 적절한 장소를 찾던 대비는 도이퉁에 정착하기로 하고 '개발 프로젝트'(DTDP)를 가동했다.

 

고산족에게 국적과 함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교육, 보건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농촌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생활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다시 숲을 원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알프스 마을 벤치마킹한 '마에 파 루엉 정원'

태국의 '알프스 마을' 도이퉁

마에 파 루엉 정원 [마에 파 루엉 재단 제공=연합뉴스]

그 모델은 자신이 일생의 상당 기간을 보낸 알프스 산맥의 스위스 마을이었다.

 

태국 산골에 스위스풍의 멋들어진 저택 '로열 빌라'(Royal Villa)와 사철 아름다운 수목으로 가득한 10에이커(약 1만2천 평) 크기의 거대한 '마에 파 루엉 정원'(하늘이 내린 대비의 정원)이 생긴 이유다.

 

개발 프로젝트 이전에 이 지역 최대 양귀비밭이었다는 정원과 대비가 말년을 보낸 언덕 위의 로열 빌라를 거닐면 마치 알프스 산자락에 와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또 도이퉁 곳곳의 카페에서는 이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아라비카 커피의 진한 향과 고소한 마카다미아도 음미할 수 있다. 산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와 버섯으로 만든 태국 북부식 요리도 도이퉁에서 즐길 수 있는 별미다.

 

과거 양귀비를 재배하거나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에 무기를 팔아 생계를 꾸렸던 소수민족 주민들이 산비탈의 농장에서 생산한 유기농 커피와 마카다미아는 '도이퉁' 브랜드로 태국 전역에서 판매되며 일본 등지로도 수출돼 명성을 얻고 있다.

 

도이퉁 개발 프로젝트는 단순히 농업에 그치지 않았다. 제조업으로 눈을 돌린 프로젝트 사무소는 이 지역에서 나는 황토와 백토를 원료로 도자기를 굽고, 소수민족 여성들이 물레와 베틀을 돌려 생산한 옷감과 뽕나무에서 추출한 종이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다.

 

이곳에서 생산된 소박한 도자기와 생활용품은 세계적인 가구 기업인 이케아(IKEA)와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MUJI)을 통해서도 전 세계에 판매된다.

해외로 수출되는 도이퉁 개발 프로젝트

태국의 '알프스 마을' 도이퉁

가내공업센터에서 물레 돌리는 소수민족 여성

도이퉁 입구의 '가내공업센터'에선 소수민족 주민들이 주름진 손으로 직접 물레를 돌리고 도자기를 굽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소수민족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한 도이퉁 개발 프로젝트는 오랜 내전을 겪은 이웃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도 이식되고 있다.

 

도이퉁의 자연과 고산족의 일상을 경험했다면 '영감(靈感)의 방'(Hall of Inspiration)을 찾아 오늘의 도이퉁을 있게 한 스리나카린트라 대비 등 마히돈 왕가의 역사와 조우해 볼 만하다.

 

평민 출신으로 결혼을 통해 왕족이 된 후에도 평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애썼던 대비. 그런 대비를 향해 태국 국민이 보낸 '고귀하게 태어나지 않았지만 삶을 통해 고귀해졌다'는 찬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이퉁 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차로 10여 분 거리인 태국-미얀마 국경선 방문이다.

태국의 '알프스 마을' 도이퉁

국경 너머의 미얀마 군사 시설

도이퉁보다 해발 고도가 약간 높은 도이창의 머브 군기지 인근의 국경 초소에 올라서서 허술한 목책 너머로 미얀마 깃발을 내건 군사시설과 산속에 군데군데 자리를 잡은 마을들을 내려다보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