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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발 안 씻는 남편과 같이 살 수 있을까…소설 '홀딩,턴'

by연합뉴스

서유미 작가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 어떻게 변해가는지 궁금했죠"

발 안 씻는 남편과 같이 살 수 있을

서유미 작가 [위즈덤하우스 제공]

"지인들에게 이혼하고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더니 빈번하게 나온 게 발 얘기였어요. 사소하지만 참기 힘든 문제로 '발 안 씻는 것'을 꼽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살을 붙이고 한 공간에 사는 건 다른 문제인 거죠. 이 소설은 그 다름에 관한 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 장편소설 '홀딩, 턴'(위즈덤하우스)을 출간한 서유미(43) 작가는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주제인 사랑과 이별, 이혼에 관해 이렇게 얘기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지원'은 5년째 결혼 생활을 한 남편 '영진'과 여러 생활 방식과 성격 차이로 끊임없이 다투다 결국 이혼까지 결심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렇게 한때 사랑의 눈부심을 경험하고 서로의 삶을 평생 함께하기로 한 부부가 실제로 함께 살며 어떤 점에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지, 그 과정에서 사랑의 빛은 어떻게 꺼져가는지 그린다.

 

지원과 영진은 현실 속 사랑에 더이상 판타지를 기대하지 않게 된 30대에 우연히 댄스 동호회에 가입했다 만나게 된다. 지원은 영진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영진은 처음부터 지원을 마음에 뒀다. 영진의 구애에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던 지원은 회사 일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영진이 건네준 MP3 플레이어를 듣게 되고 그 안의 선곡 리스트에 마음을 빼앗긴다. 알고 보니 친구의 도움을 받은 선곡이었지만, 어쨌든 이를 계기로 사랑에 빠진 지원은 영진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영진은 모범적이고 착실한 남자이지만, 평소에 기분이 상한 일을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뒀다가 화가 나면 한꺼번에 폭발시켜 지원을 당황하게 한다. 그는 화를 자주 내지만 금세 풀고 웃는 지원에게 "종잡을 수 없는 기분파"라고 몰아붙인다. 지원은 특별히 깔끔을 떠는 사람이 아니지만, 냄새에 예민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편두통에 시달리며 퇴근한 지원은 현관문을 열었을 때 훅 끼치는 집안의 악취와 영진의 발 냄새를 참지 못하고 내뱉는다.

 

"들어오자마자 발 씻으라니까. 안 씻었지?"/"씻었어."/"씻었는데 이런 냄새가 난단 말이야?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냐? 왜 들어오자마자 짜증을 내고 그래?"/"오빠가 약속을 안 지키니까 그렇지. 바로 씻는다며. 왜 거짓말을 해."/"그래, 거짓말했다. 안 씻었고 안 씻을 거야. 이제 됐냐?" (127쪽)

 

그야말로 흔한 현실 부부의 대화다.

 

"결혼 생활 내내 지원은 누군가를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가, 생각했다. 한 사람은 수천 개의 갈래로 나뉘고 수많은 변수로 이루어진다. 그나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해도 그 앎 때문에 오히려 관계 속에서 자주 길을 잃고 좌절하게 된다.…(중략)…지원은 영진의 발에서 그의 마음을 보았다. 호감을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꽃을 사서 건넬 때처럼 사소한 일에 계속 핑계를 대고 미루는 행동 속에 자신을 무시하고 이 관계를 우습게 보는 심리가 녹아 있다고 생각했다." (130∼131쪽)

 

소설에 그려진 결혼 생활의 이런 단면은 실제로 많은 기혼자가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발을 씻는 문제가 언뜻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막상 겪어 보면 결코 사소한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다.

 

작가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불륜이나 외부 사건의 영향이 아니라 철저히 두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변하는 과정을 담고 싶었어요. 사소한 것이지만, 고질적인 것이어서 결국 파국으로 가게 되죠. 재작년에 인터넷에 연재할 때 '이혼 권장소설이냐'는 얘기도 들었는데, 사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쓰진 않았고 조금 자유로운 선택을 얘기한 거예요. 과거엔 '힘들어도 참고 살아라'였다면 현대 부부들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들이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그땐 상대방을 더 넓게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작가의 마음은 소설 말미에 잘 녹아 있다.

 

"지원은 잠이 안 올 때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 무리해서 집을 사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영진이 아이를 원했을 때 낳았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잔소리쟁이가 아니었다면….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게 하는 게 지원이고 지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영진이 영진인 것처럼." (231쪽)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