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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도산 안창호 미국서 추방되기까지…모함한 투서자의 실체는

by연합뉴스

생애 3번째 방미행적 주목…이민국 감시속 독립운동 위해 끈질긴 노력

미 정부기록보존소서 '안창호 파일' 찾아내…엔젤섬 이민국 서류도 다수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을 볼셰비스트(공산주의자)로 모함해 미국에서 추방시키려고 한 투서가 미국 이민국에 접수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도산 선생의 세 번째 방미 행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장태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교(US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소장 겸임)가 최초로 공개한 미 캘리포니아 샌브루노 정보기록보존소의 '안창호 파일'에는 도산 선생이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적대세력의 모함과 미 이민당국의 감시 속에서도 재미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조직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한 흔적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산 선생은 총 세 차례 미국을 왕래하며 13년간 미국에 거주했다.

 

첫 번째는 1902∼1907년으로 리버사이드에서 최초의 한인공동체인 '파차파 캠프'를 건설하던 시기다.

 

이어 두 번째 1911∼1919년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조직 활동을 왕성하게 벌인 기간이었고, 마지막 1924∼1926년에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와 시카고 등 중부, 워싱턴DC 등 동부 일원까지 미 전역을 누비며 동포들을 감화시켰고 민족 정신을 일깨웠다.

 

도산 선생은 1924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로 입국해 1926년 2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S.S.소노마호를 타고 출발한 것으로 돼 있다.

 

안창호 선생이 도착하기 하루 전인 1924년 12월 15일 '콩 왕'과 '찰스 홍 이'라는 이름으로 미 이민국에 투서가 접수됐다.

 

'안창호는 볼셰비스트이니 미국 입국을 불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민국 담당자에게 투서가 전달되기 이전에 입국한 안창호 선생은 이듬해인 1925년 6월 3일 시카고 이민국에서 미국 입국 경위에 대해 직접 심문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안창호 파일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도산 안창호 미국서 추방되기까지…모함

'도산은 볼셰비스트' 모함한 투서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도산 안창호 선생을 '볼셰비스트'로 모함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투서 원본. 1924년 12월15일 '콩 왕'과 '찰스 홍 이'라는 이름의 서명이 붙은 이 투서는 미 노동부 산하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 접수됐다. UC리버사이드 장태한 교수가 파차파 캠프 이주 한인의 입국 경로를 추적하던 중 북캘리포니아 샌브루노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발굴했다. [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제공]

'볼셰비스트 안창호' 투서에는 어떤 내용이…그들은 무엇을 노렸나

장 교수는 "이 투서는 총 4장의 장문인데 영어 문법이 정확하지 않아 뜻을 번역하기가 약간 힘들었다"고 말했다.

 

투서에는 "안창호가 상하이를 출발해 하와이를 거쳐 곧 미국에 도착할 예정인데 그는 볼셰비스트, 즉 사회주의자이니 그를 유심히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볼셰비스트 정책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으며…(중략)…볼셰비스트 정책을 널리 전파하려고 하는 안창호는 속히 중국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라고 촉구하는 내용도 있다.

 

장 교수는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소재 알링턴호텔 전용편지지의 맨 뒷장에 나오는 연명 서명 '콩 왕(Kong Wong)'과 '찰스 홍 이(Charles Hong Lee)'에 관한 자료를 수 개월 동안 추적했다고 한다.

 

장 교수는 "대한인국민회와 대립관계에 있었던 대한인동지회, 즉 이승만 추종세력이 투서를 보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이민국 관계자가 '흥사단은 나쁜 일을 하는 단체'라고 말했다고 전한 기록도 남아있다.

 

또 1924년 서재필 선생이 "워싱턴에 있는 한인 지도자가 도산을 공산주의자로 모함했다"고 증언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안창호 추방'의 단초가 되는 미 이민국 투서 내용은 당시 대한인국민회, 흥사단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세력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발견자인 장 교수의 해석이다.

이민국 심문에 당당했던 도산 선생 "나에게 적은 없다"

안창호 파일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1925년 6월 3일 J.B 브래키 이민국 검사관이 시카고 이민국에서 안창호 선생을 상대로 벌인 직접 심문이다.

 

장 교수가 공개한 심문서 전문에는 당시 이민국 조사에서 당당했던 도산 선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도산 안창호 미국서 추방되기까지…모함

도산 선생 심문한 미 이민국 조서(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미국 시카고 이민국의 1925년 6월 9일 자 안창호 선생 심문기록. J.B 브래키 이민국 검사관이 시카고 이민국에서 도산 선생을 상대로 직접 조사를 벌인 기록이다. 안창호 선생의 자필 서명이 남아있다. [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제공]

도산 선생은 '어떤 자격으로 미국 입국이 허락됐나'라는 질문에 "상해에서 발행한 섹션 6의 여행자 증서를 소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상해에서 직업은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회원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이후 미국에서의 행적을 소상히 털어놨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탁튼, 새크라멘토, 다뉴바, 리들리, 샌프란시스코, 리버사이드, 그리고 베이커스피드. 캘리포니아에서 시카고로 향하던 중 덴버에 잠시 체류후 시카고에 도착했다. 시카고에서 필라델피아, 뉴욕, 코네티컷주 뉴헤븐, 보스턴, 폴 리버스. 뉴저지의 패터슨, 다시 뉴욕에 갔다가 시카고에 도착했다."

 

도산 선생은 미 전역을 누비며 재미 한인 독립운동의 기틀을 닦았다.

 

브래키 검사관은 그 전 해에 접수된 투서의 내용에 근거한 듯한 심문을 이어갔다.

 

도산 선생을 상대로 '당신은 소련 정부 또는 러시아에 관심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당시는 볼셰비키 혁명(1917년) 직후였고 투서에는 도산을 볼셰비스트로 모함했기 때문이다.

 

도산은 "나는 직간접적으로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또 '미국 정부가 과격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나'라고 물었지만 "절대 아니오. 그럴 이유가 없다"고 담담하게 답한다.

 

도산 선생은 "내가 아는 한 (미국에) 나에게 적은 없고 나의 행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도산 선생이 원래 8개월 체류 비자로 입국했다가 6개월 연장 신청을 했으며 1926년 2월까지 체류 연장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 심문은 이민국에 접수된 투서로 조사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장 교수는 해석했다.

도산 안창호 미국서 추방되기까지…모함

안창호 선생 조사 기록 붙은 이민국 문서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조사했다는 기록이 붙어있는 미 노동부 산하 샌프란시스코 이민국 검사관 서명 문서. 존 A.로빈슨 이민국 검사관이 '안창호(AHN CHANG HO)'란 중국 이름의 S.S.소노마 승선을 체크했다는 기록이 적시돼 있다. [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제공]

배에 타는 순간까지 확인한 이민국…그리고 가족과의 생이별

샌프란시스코 엔젤섬 이민국의 1925년 6월 26일 문서는 안창호 선생의 체류 연장 신청에 대해 언급했다.

 

이민국은 "안창호는 미국 전역을 여행했는데 콩 왕과 찰스 홍 이가 제출한 투서(1925년 12월 15일 접수) 내용을 부인했다. 현재로서는 그 투서 내용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안창호 선생은 6개월 더 체류할 수 있었지만 투서로 사회주의자인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고는 추방 대상자로 분류가 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3월 초의 강제 출국은 그 연장선이다.

 

이민국은 1926년 2월 6일 문서에서 "안창호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배에 타는 것을 확인하라"고 적었다.

 

이어 1926년 2월 23일 문서에는 "안창호가 S.S. 소노마를 타고 떠난 것을 확인했는데 사진과 대조해서 확인했다"고 적혀있다.

 

도산 선생은 그러나 배가 고장나서 돌아왔다가 그해 3월 2일 다시 소노마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항에서 출항했다.

 

당시 신한민보에는 안창호 선생과 부인 이혜련 여사의 마지막 송별 모습도 묘사됐다.

 

이 여사의 "평안히 가십시오"가 마지막 대화였고 도산 선생 부부는 영영 다시는 보지 못할 생이별을 했다.

 

당시 기록에는 안창호 선생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하와이에 6시간만 머무르고 바로 호주로 추방된 것으로 돼 있다.

 

관련 자료에는 안창호 선생이 호주로 갈 의사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안창호 선생의 호주 추방은 그 전해 이민국 검사관의 조사, 그리고 세 번째 미국 방문 첫 해 이민국에 접수된 투서가 그간의 행적을 입증할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산 안창호 미국서 추방되기까지…모함

도산 강제추방 짐작할 미 이민국 문서(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1926년 2월 6일 작성된 미 이민국 문서. 안창호 선생의 오스트레일리아 추방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S.S소노마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제공]

안창호 선생은 이후 1925년 3월 25일 호주에 도착했고 5월 20일에는 상하이로 향했다. 이후 안창호 선생은 1932년 가족이 있는 미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그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거사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한국으로 송환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35년 2월 가출옥하지만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됐고 그해 12월 병보석으로 나왔으나 경성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1938년 3월 10일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도산 안창호 미국서 추방되기까지…모함

1920년대 도산 선생[연합뉴스 자료사진]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