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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은곰상 트로피를 팝니다.
자식들이 사흘 동안 굶었습니다”

by직썰

“은곰상 트로피를 팝니다. 자식들이

ⓒswr.de

2017년 1월, 한 남자는 최고의 배우들만 받는다는 베를린 은곰상을 내다 팔았다. 그것도 영화와는 거리가 먼 동네 술집 주인에게 말이다. 그가 매긴 트로피 가격은 4천 유로, 한국 돈으로 약 529만 원입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은곰상 트로피를 팝니다. 자식들이 사흘 동안 먹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진 낡은 차, 몇 안 되는 가재도구도 모두 내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이 트로피가 마지막입니다.”

2013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나지프 무직, 그는 트로피를 판 지 1년 1개월 만에 죽었다. 사인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그는 당뇨를 오래 앓았고, 지난 몇 년간 생활고에 시달렸고, 죽기 몇 개월 전부터 굶주렸다. 다섯 가족이 사는 집은 쓰레기 더미 옆에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문의 영예’인 은곰상 트로피였지만 나지프에게는 다섯 가족의 가난을 달래 줄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마저도 그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보스니아 출신의 나지프 무직, 그는 지난 2월 18일 아침, 자신의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48세라고 알려졌지만, 누구도 그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의 나고 자란 땅은 내전의 나라, 보스니아다. 수도 사라예보에서 남쪽으로 125km 떨어진 스바토바크에 살았다. 앞니가 여러 개 빠진 나지프는 인슐린에 의존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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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프 가족이 사는 집, 그 앞에 쌓인 고철. ⓒswr.de

나지프의 직업은 고철장수였다. 매일 굶지 않으려 고철을 주웠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재구성 다큐멘터리 ‘아이언 피커의 일생(An Episode in the Life of an Iron Picker)’의 배우가 됐다.

 

나지프는 ‘자신’을 ‘연기’했다. 영화는 가난한 발칸 국가에서 그의 가족을 탈출시키려고 하는 고물 수집가의 이야기다. 임신한 그의 아내 세나다는 어느 날 큰 고통을 느낀다. 진단 결과 이미 5개월 전 유산돼 죽은 태아를 뱃속에 지닌 상태였다. 긴급 수술이 필요했지만 의사들은 의료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500유로를 요구했다. 나지프는 돈이 없다고 애원했지만 의사들은 수술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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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프 무직. ⓒwelt.de

베를린영화제가 나지프에게 은곰상을 수여한 건 의외의 선택이 아니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유럽의 가난한 난민들의 상황을 주시해야만 하는 정치적 이유가 컸다. 전년도 수상자게오르크 프리드리히에게 은곰상이 예술적 인정이었다면, 나지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인정이었다. 레드카펫에 선 나지프와 아내 세나다는 “앞으로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삶은 놀라우리만큼 그대로였다.

 

수상 직후인 2013년 11월, 나지프는 독일 베를린에 망명 신청을 했다. 베를린 영화제 관계자들도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등 그의 망명 신청을 도왔다. 베를린 난민 쉼터에 머물던 나지프는 “독일에서 지낼 수만 있다면 은곰상도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지프 가족의 망명 신청은 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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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프 무직의 가족. ⓒwelt.de

나지프 가족은 다시 보스니아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고철장수의 삶으로 돌아갔다. 고철을 모아서 손에 쥐는 돈은 하루 3.50유로, 한국 돈으로 4600원이다. 버티다 못한 나지프는 결국 가진 것을 몽땅 팔았다. 은곰상 트로피는 끝까지 남겨두었으나, 결국 팔 수밖에 없었다. 트로피를 판 돈 중 일부로 베를린행 버스표를 샀다. 다시 한번 벼랑 끝에 내몰린 자신의 삶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궁핍한 난민으로서의 삶’의 속살을 전 세계인 앞에서 가감 없이 보여줬던 나지프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트로피와 돈을 맞바꾼 예술인’ 앞에서 익숙한 기억을 떠올린다.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한 가수 이랑이다. 그는 무대에 올라 상을 받자마자 객석을 상대로 트로피 경매를 부쳤다.

“지난달 수입이 42만 원이더라. 음원 수입이 아니라 전체 수입이다. 이번 달엔 고맙게도 96만 원이다. 그래서 여기서 상금을 주면 좋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지금 이 트로피를 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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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누군가는 ‘예술인 퍼포먼스’로 치부했지만, 그에게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였다. 이랑은 종종 그리고 자주 예술인으로서의 삶의 팍팍함을 드러냈다.

“잡지 인터뷰나 촬영도 겉으로는 멋들어져 보이나, 페이가 없다. 차비도 없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것은 정말 문제이다. 나는 잡지에 개 잘 나온 사진들만 남기고 굶어서 죽을 수도 있다.” - 2017년 2월 27일 이랑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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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고은 작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쪽지. ⓒ민중의소리

잊지 말아야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2011년 생활고로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다. 그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달라’는 쪽지를 이웃집 대문에 남긴 채 죽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으면서, 며칠째 굶은 상태였다.

 

그의 후배는 선배 최고은의 죽음 앞에서 모든 서러움과 화를 터트렸다. ‘아마 자신의 첫 시나리오 계약 후 엄청난 꿈에 부풀어 올랐을 테지만 경제적으로 돌아온 건 계약금 중 극히 일부가 고작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베를린 일간지 ‘베를리너 차이퉁(berliner zeitung)’가 쓴 나자프 무직의 부고 기사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은곰상 트로피를 팝니다. 자식들이

ⓒwelt.de

“나지프 무직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한 손에 영화 포스터를, 다른 한 손에는 은곰상 트로피를 들고서 그의 예술가적인 삶을 지지해달라고 구걸했을 것이다. 당신은 그가 다시 한 번 레드 카펫에 오르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랬다면 그는 다시 한번 단 하루 간 ‘영웅’이 됐을 거다. 그러나 영웅으로 사는 하루가 저물고 나면, 그 후는 어떻게 되는가?”

예술을 창조하는 우리의 영웅들의 내일은 어떤가.

 

글. 민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