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이 어색한 이유

[라이프]by 직썰

육아에 대한 가장 즐겨 사용되는 비유 중 하나는 바로 '자식 농사'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었다", "자식 농사가 가장 중요하다", "자식 농사가 곧 최고의 노후대비다" 등등. 문득 궁금해졌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을 가리켜 농사에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다.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이 어색

ⓒKCC SWITZEN 광고

첫째, 우리나라는 농업을 중시하는 나라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업은 천하의 근본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농업이 오래도록 중시되고 신성시돼온 전통을 볼 때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을 농사에 비유함은 곧,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때로 신성시되며 삶의 근본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오직 자식을 위해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부모님의 그 모습들이 낯설지 않다. 부모의 숭고한 희생은 곧 미덕이라고 여겨졌다.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이 어색

둘째, 농사라는 말 속에는 투자와 수확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 점에 착안한다면 자식 농사라는 말 속에는 자식의 성장과 성취를 통해 무엇인가를 거둬들이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곡식이 크고 잘 여물어 풍년이 들길 기원하듯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부모의 마음속에 싹트는 것은 자식 농사 잘 지은 결과에 대한 은근한 기대다. 자신이 못다 한 꿈을 자녀에게 무리하게 투영하는 경우가 그렇다. '자식 농사가 곧 최고의 재테크다', '자식 농사만한 노후대비가 없다' 등의 말이 나오게 되는 심리적 배경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문제는 곡식을 기를 때의 풍년을 판단하는 기준과 사람을 기를 때의 풍년을 판단하는 기준이 같을 수도 같아서도 안 된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곡식의 풍년을 가늠하는 기준은 비교적 일정하다. 경쟁력 있게 잘 자라 시장에서 값어치를 잘 쳐서 받을 수 있다면 그게 풍년이다. 돈 주고 살 사람들이 판단하기에 얼마나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가. 그 해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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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식 농사에서의 풍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곡식을 기를 때의 그것과 유사하다면 경쟁력 있게 잘 자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높은 값어치가 매겨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신체 건강하고 배운 바도 많고 성격도 올곧아 인맥도 두텁고 바깥에서 돈도 잘 벌어올 수 있는 그런 자녀가 곧 풍년이 든 자녀다. 궁극적으로 자녀가 부모 호강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그런데 사람이 꼭 돈이 돼야지만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돈이 사람보다 더 귀해 보이는 시대가 됐다 한들 사람의 가치를 따지는 기준마저 다 내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자식 농사라는 말을 쓸 때 첫 번째 의미 대신 두 번째 의미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그래서 분명 문제다. 투자한 만큼 만족스럽게 거두려면 '돈 주고 살 사람'들이 값어치 있게 여기도록 자녀를 길들여야 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던가. 그래서 종종 부모들은 자식에게 아래와 같은 원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이 어색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갖다 바친 게 얼마인데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

이렇게 되면 자녀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타고난 성격, 재능, 가치관이 다양하고 목표로 하는 바도, 가치 있게 평가받고 싶어 하는 바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무엇으로 삶의 만족을 얻고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 기준 또한 같을 리 없다. 부모 입장에서 투자한 대로 나오길 바라는 풍년을 자식에게 강요하면 안 되는 이유다.

 

자식 농사에서의 풍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식을 낳아 기르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결국 생각해본다. 본래 농사의 목적은 무언가를 뿌리고 뿌린 자가 넉넉히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자식 농사에서의 목적은 조금 달라야 한다고 말이다. 거둘 마음을 먹기보다는 처음 심고 틔운 그 모양 그대로 잘 커갈 수 있도록 지키고 놓아두는 것이 자식 농사에서는 더 중요한 미덕이 아닐까. 제 자라고 싶은 대로 두되 그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기쁘게 여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게 자식 농사 진짜 잘 짓는 비결은 아닐지. 부모도 덜 부담스럽고. 자녀들도 강요받지 않아 홀가분하고.

 

직썰 필진 허용회

2018.10.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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