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녹두꽃'의 몰입을 깼던 그 장면

[컬처]by 직썰
뜨거웠던 '녹두꽃'의 몰입을 깼던 그

1894년 전라도 고부는 횃불로 뒤덮였다. 그것은 봉기였고, 혁명의 시작이었다. 농민들은 탐욕스러운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섰다. 동학 접주를 맡는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을 중심으로 규합한 농민들은 관아로 쳐들어갔다. 겁이 난 조병갑은 달아났다. 전봉준은 이 기세를 몰아 전주까지 밀고 갈 계획이었으나 황석주(최원영)는 이쯤에서 멈추길 바랐다. 부패한 군수를 몰아냈으니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봉기가 시작되자마자 분기할 조짐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조정은 재빨리 움직였다. 민란을 수습하기 위해 새로운 군수로 박원명(김하균)을 서둘러 부임시켰다. 전봉준을 만난 박원명은 “재주도 없는 사람이 신관 사또의 중책을 맡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라며 몸을 낮췄고, 곧바로 저잣거리로 나가 농민들에게 절하며 성난 민심을 달랬다. 조병갑의 횡포 아래 고통받았던 농민들은 새로운 군수의 상반된 태도에 춤을 추며 만세를 불렀다. 이것으로 봉기는 성공한 것일까.

“동학이 무엇입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한울님이 있고, 해서 사람이라면 문무양반부터 칠반천인에 이르기까지 다 같이 평등하고 고귀한 존재, 그런 존재가 착취와 수탈에 말라 죽어가는 데 이를 외면하고 조정에 선처나 바라자는 겁니까?”

 

“허면 자네에게 동학은 무엇인가? 고귀한 믿음인가, 아니면 한풀이를 위한 무기인가?”

 

“믿음이고 무기입니다. 이 더러운 세상이 가고 인즉천의 세상이 오리란 믿음, 세상을 뒤집기에 그보다 강한 무기가 또 있습니까?”
뜨거웠던 '녹두꽃'의 몰입을 깼던 그

한편,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전무송)은 전봉준을 찾아와 봉기의 성과를 치하했다. 그러면서 ‘속히 사태를 수습하고 도인들의 안위를 도모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더 큰 뜻을 품고 있었던 전봉준은 “봉기를 접으란 말씀입니까?”라고 되물었고, 최시형은 날이 갈수록 동학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으니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주인(최제우)의 명예를 회복하고 동학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세상을 제대로 뒤집어엎을 꿈을 꾸고 있던 전봉준은 ‘동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문답을 통해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 새로운 군수가 임명됐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꿨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착취와 수탈은 또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조정을 신뢰하기 어려울뿐더러 고부에서 벌어진 전횡은 오랜 세월 반복됐던 문제였다. 게다가 어디 고부뿐이겠는가. 무엇보다 군수 한 명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군수와 결탁해 세금을 착복하고, 뇌물을 받아 챙기고, 고리대금으로 부를 축적한 이방 백가(박혁권) 같은 인물들이 재기를 위해 꿈틀대고 있었다. 백가는 얼자 백이강(조정석)의 보호를 받아 민란의 소용돌이에서도 목숨을 부지했고, 적자 백이현(윤시현) 덕분에 이웃 관아로 옮겨져 몸을 치료하고 다시 고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고부는 봉기 이전의 시기로 되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뜨거웠던 '녹두꽃'의 몰입을 깼던 그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인 이복형제, 백이강과 백이현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각기 농민군과 토벌군으로 나뉘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야 했던 휴먼 스토리가 펼쳐질 예정이다. SBS <뿌리깊은 나무>, <비밀의 문 - 의궤 살인사건>, <육룡이 나르샤>를 연출한 신경수 PD와 KBS2 <정도전>을 집필한 정현민 작가가 힘을 합친 만큼 시작부터 기대를 모았다. 시청률도 1회 8.6%, 2회 11.5%로 경쾌한 출발을 보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시청자들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전봉준 역을 맡은 최무성은 단단하고 선이 굵은 연기로 중심점을 잡아줬다. 백이강 역의 조정석은 독사 같은 사내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해 냈다. 악역으로 시작했지만, 섬세한 연기로 이후 변화의 여지까지 남겨둬 흥미로움을 자아냈다. 또, 백가 역의 박혁권, 백이현 역의 윤시윤, 전주여각을 이끄는 상인 송자인 역의 한예리, 전주여각의 행수 최덕기 역의 김상호 등 누구 하나 흠잡을 곳 없었다.

 

그러나 눈살을 찌푸리는 장면도 있었다. 옥에 티라고 할까. 바로 이현이 아버지인 백가를 구출해서 도망가는 장면이었는데, <녹두꽃>은 그 장면에 과도한 비장미를 덕지덕지 발라놓았다. 백가가 어떤 인물인가. 농민들의 피를 빨아먹던 자였다. 수령들의 탐욕을 이용해 자신의 배 속을 채웠고, 농민들의 삶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구나 방곡령을 통해 사사로운 이익을 취했다. 간사하고 포악한 자였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고, 자식에게 살인을 교사할 만큼 뻔뻔했다.

뜨거웠던 '녹두꽃'의 몰입을 깼던 그

그런 자도 아버지라고, 그런 자도 살려야겠는지라 이현은 백가를 둘러업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이현에게는 효를 다해야 할 부모였다. 백성의 고혈을 착취해 모은 금덩어리를 손에 쥐여주며 과거를 위한 뇌물로 쓰라던 아버지의 은혜를 잊지 못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질곡 진 삶을 살았던 백가였으니까. 그러나 동학농민군의 죽음에나 어울릴 법한 비장한 음악을 깔아 억지 감동을 자아낼 필요까지 있었을까. 그리 공을 들여 연출해야 할 가치 있는 장면이었을까.

 

무엇보다 백가는 (조병갑과 함께) 고부민란의 원흉이라 할 인물이었고, 그를 처단하는 것이야말로 농민들의 바람이었지 않은가. 적잖이 몰입을 방해하는 의아한 장면이었다. 시청자들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녹두꽃>은 3회 6.5%, 4회 8.6%로 탄력을 받지 못하고 침체된 양상을 보였다.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와 어색한 사투리 사용 등에 대한 지적도 있었지만, 주제를 흐리는 세심치 못한 연출도 한몫했을 것이다.

 

다만, 신경수 PD와 정현민 작가의 전작들을 고려하면 작품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현이라는 복합적인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과했던 것으로 이해해야 할 듯싶다. 앞으로 <녹두꽃>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달콤한 꿀만 있진 않을 것이다. 전봉준의 대사 “대의보다 복수에 집착하는 군중에게 혁명은 실패로 복수하는 법이거든”에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집약돼 있다. 실패로 귀결됐던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녹두꽃>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직썰 필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2019.05.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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