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톡
방송작가로, 기자로, KBS, 아리랑 TV, 공연 잡지에서 일했고, 지금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데뷔 초의 박은태는 뮤지컬계에서 드물지 않은 ‘남자 크리스틴’ 중 하나였다. 평균 이상의 보컬 능력과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아직 미숙한 부분들을 너그럽게 넘길 수 있게 해주는 가능성으로 반짝이는 젊음을 가진 신인 - 어제까지는 아무도 아닌 무명의 1인이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업계의 모두가 주목하는 ‘요즘 괜찮은 배우’가 되어 있는 라이징 스타들 중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애초에 뮤지컬 배우 지망생도 아니었고 당연히 뮤지컬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공부하다가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들이
긴 시간 동안 무대에서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일 없이, 매 작품마다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하는데도 어째서인지 하나의 뚜렷한 상으로는 잡히지 않는 신기한 배우가 있다. 낡은 관용구가 되어 빛이 바랜 감이 있는 ‘천의 얼굴’이라는 찬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알려주는 배우 전미도가 그중 한 사람이다. 야무지면서도 섬세한, 그리고 조금은 예민한 느낌의 얼굴은 어쩐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청순하면서도 강단 있는 여대생이나 천진하고 순수하지만 가슴 속에 들끓는 불꽃을 갈무리하고 있는 낭만주의 시대의 숙녀, 동유럽의 스산한 바람이 묻어나는
박지성을 사랑하고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인들이 한 번 이상 그의 경기를 보았을 것이라고 짐작 가능한 것과 달리, 한국이 낳은 프리마 발레리나, 국보급 무용가 강수진의 아름다운 발을 경애하는 이들 중 그녀의 춤을 직접 본 사람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마치 21세기에 안나 파블로바나 이사도라 던컨의 팬이 된 사람들처럼, 한국의 대중들은 무대의 감동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에피소드와 세계의 경탄, 그리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이는 발레라는 분야와 대중의 거리감 탓이기도 하지만, 강수진이 자신의 커리어 대부분
1999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손탁부인 역으로 데뷔한 이래 신영숙은 매해 서너 편씩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서울예술단에 적을 두면서 연기와 춤의 기본기도 탄탄하게 쌓아온 그녀가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믿음직스러운 쪽으로나 아쉬운 부분에 있어서나 아, 서울예술단 출신 배우로구나 하는 면이 있었다. 2006년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마지막으로 퇴단하기까지 예술단에서 그녀가 보여준 작품 중 특히 기억할만한 것은 <바리>와 <바람의 나라>일 것이다. 일반적인 창작뮤지컬에 비해 안무를 포함한 비주얼 요소
어떤 분야에서든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것 같다는 찬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동종업계의 경쟁자들보다 기술적으로 능숙하고 객관적인 능력치를 인정받을 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뭐랄까, 그 자리에 서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건 이런 것이라고 온몸으로 증명하듯 펄펄 날 때 지켜보던 이들이 경탄과 함께 입을 모아 쏟아내는 말이다. 열아홉 살 나이에 <렌트>의 미미 역으로 처음 무대에 선 이후로 정선아는 내내 그런 이야기를 듣는 배우였다. 뉴밀레니엄의 흥분이
죽음은 매일 아침 입 맞추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해 질 무렵 나란히 산책을 하던 사람들만 갈라놓는 것이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데이비드 보위의 부고가 잇달아 들려온 올해 초 머나먼 한반도에서 우리가 느낀 상실감이 그 증거다. 근 반세기 동안 세상 속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질문과 빛을 던지던 거인이 이제 닿을 수 없는 세계로, 더 이상 그로부터 새로운 무엇이 직접 태어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떠나갔다. 자연인 데이비드 보위는 자신이 살아온 비범한 삶과 달리 암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지금
무대에 서는 모든 직군이 그렇듯이 뮤지컬 배우 역시 적합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성악과 출신이나 아이돌 가수들이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인 것처럼 보여도 성악 전공자들은 오페라 연기와 딕션을 배우지 않고서는 졸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된 아이돌 스타들의 뮤지컬 진출은 연습생 시절부터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목표로 연기와 춤, 노래의 기본을 훈련받고 데뷔 후에는 스타성과 티켓파워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 그 흐름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윤도현은 그 중 어
벌써 7년이 지난 일이지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국 라이선스 초연을 앞두고 에스메랄다 역에 깜짝 캐스팅된 바다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방송 스케줄 때문에 밤 10시를 넘겨서 청담동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진행된 대화는 자정을 훌쩍 지나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많은 이들이 뮤지컬 배우로서 바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으로 에스메랄다를 손꼽고 <노트르담 드 파리>를 그녀의 뮤지컬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2003년, 화려한 아이돌 스타들이 도전하기에는 아직 작품도 시장도
뒤늦게 영화 <스물>을 보았다. 개봉 당시 김우빈과 김준호, 강하늘이 함께 등장하는 홍보물을 보면서 ‘강하늘이 또 영화를... 요즘 정말 잘나가나보다’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 <미생>의 성공 이후 <쎄씨봉>, <순수의 시대>, <스물>까지 세편의 작품이 연달아 개봉하면서 강하늘의 이름이 공지처럼 꾸준히 극장에 걸려있던 때였다(본인은 오랫동안 공들여 찍은 작품들인데 공교롭게도 개봉 시기가 맞물려서 겹치기로 오해받았다며 아쉬워했다). 결과적으로 세 작품 중 가장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스물>에서 강하늘은 뻔뻔하지만 풋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