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여행지-봄]펭귄마을, 발을 딛는 순간 1970∼80년대로 돌아가는 추억 놀이터

[여행]by 아주경제

불이 난 빈 집 치우고 텃밭 가꾼 데서 시작, 연평균 방문객 100만 명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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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마을 입구

서울에 있는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 20분쯤 가면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차 후 시내버스를 타고 약 17분 후 내려서 630m쯤 걸으면 펭귄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펭귄마을은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다.


양림동 전체 넓이는 0.68㎢, 인구는 2019년 현재 7689명이다. 양림동 안에 있는 펭귄마을은 공식적인 행정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넓이나 인구 수 등은 집계가 안 됐다.


펭귄마을은 양림동 행정복지센터 뒤쪽 ‘펭귄 주막’ 주변 골목에 주민들이 스스로 조성한 문화공간이다. 펭귄 주막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데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2013년 어느 날 빈 집에 불이 나 전소됐다. 빈 집에는 쓰레기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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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마을

현재 마을 촌장인 김동균 씨는 빈 집에 쌓여 있던 오래된 물건들과 잡동사니들로 취미 삼아 이곳저곳을 장식했다. 이에 주민들도 스스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옛 물건들을 내놓고 김동균 씨와 함께 마을을 가꿨다. 이는 펭귄마을 탄생의 원동력이 됐다.


김동균 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빈 집을 깨끗이 치우고 예쁘게 꾸민 후 텃밭을 가꿨다.


이 텃밭에서 재배한 갖가지 농작물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됐다. 주민들은 이 텃밭의 이름을 ‘펭귄텃밭’으로 정했고 이후 이 마을은 ‘펭귄마을’로 불리게 됐다.


‘펭귄마을’이라는 이름은 40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힘들게 걸어 ‘펭귄아재’로 불리는 이 마을 한 노인(70세)의 걷는 모습이 펭귄과 비슷한 것에서 유래한다. 펭귄마을에는 4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노인들이다.


2014년부터 펭귄마을 벽에 시계, 액자 등의 폐생활용품을 설치해 골목길을 조성했다. 2017년에는 ‘도시재생 정크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들에 의해 펭귄마을에 창작 예술거리가 조성됐다.


현재는 공예특화거리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이고 연평균 방문객이 외국인을 포함해 100만 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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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마을

펭귄마을 입구는 양림동 커뮤니티센터 옆 골목길에 있다. 이 골목길은 1970~80년대의 과거로 가는 비밀 통로다. 작고 좁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모두 그 시절 살았던 사람들이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들로 장식


이 골목길에 발을 딛는 순간 2019년, 2013년, 1994년, 1988년, 1978년으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펭귄마을은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는 추억을, 청년 이하 세대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펭귄마을을 장식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들이라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펭귄마을만의 매력이다.


펭귄마을 입구에는 가스통을 재활용한 펭귄이 있다. 이 펭귄을 보는 순간부터 펭귄마을에서의 시간여행은 시작된다. 펭귄마을에 들어가면 맨 먼저 낡고 허름한 담벼락을 보게 된다. 거무죽죽하게 얼룩진 콘크리트 담장엔 검정색 스프레이를 뿌려 적은 그 시절 이삿짐센터 광고와 마을 지도, 여러 가지 색깔의 분필로 적은 낙서들이 가득하다.


몇 발자국 더 가면 양은냄비, 프라이팬, 소쿠리들이 담벼락에 달라붙어 빛나고 있다. 담벼락을 지나면 한 특별한 정원에 도착한다. 이 정원에는 작은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정원에는 테니스 라켓이나 라디오 등도 있다. 꽃밭 사이에 키(추수가 끝나고 곡식을 선별하거나 수확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농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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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마을

펭귄마을 담벼락에는 ‘그 때 그 시절 살아있음에 감사하자’고 새겨져 있다. 펭귄마을 골목들은 옛 물건들이 가득해 수십 년의 시간을 압축한 추억의 전시장이다.


중년의 신사가 빛바랜 옛 영화 포스터를 한참 동안 보고 있고 평생 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노부부가 손때 묻은 신랑신부 조각 앞에서 지난 세월을 반추한다. 아이들은 신기한 물건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들떠 있고 젊은 사람들은 바쁘게 사진을 찍는다. 펭귄마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펭귄마을이 아니더라도 양림동은 다양한 근·현대 건축물과 100년이 넘는 거목들이 즐비하다.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은 양림동에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웠다. 양림동은 ‘광주의 예루살렘’, ‘서양촌’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당시 만들어진 기독교 유적들과 우리의 전통문화 유적들은 양림동에 오롯이 남아있다.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홀’은 1925년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한 전라도 지역 선교의 개척가인 유진벨(Rev. Eugene Bell, 1868~1925, 한국어 이름: 배유지)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예배당으로 이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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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마을

전체적으로 중앙을 기점으로 대칭을 이루고 곳곳에 원형·첨두아치 형상 창문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규모는 작지만 장식적인 요소가 많고 건축 기법이 우수하다.


‘오웬기념각’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클레멘트 C. 오웬(Clement C.Owen: 1867~1909. 한국명 오원 또는 오기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William)을 기념하기 위해 스와인하트(Martin Luther Swinehart, 한국명 서로득) 선교사가 1911년 건축하기 시작했다. 1914년 완공됐다.


◆양림동, 다양한 근·현대 건축물과 100년 넘는 거목들 즐비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생전에 할아버지의 기념각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었던 오웬의 뜻을 받들어 그가 죽은 후 미국의 친지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건립됐다.


오웬은 목사이자 의사였다. 당시 양림동을 찾은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의대를 졸업했다. 지난 1900년대 양림동의 서양촌 외국인들 중 1명으로서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했다. 1909년 4월 폐렴으로 사망하기까지 순천시, 고흥군, 보성군 등 15개 지방을 맡아 선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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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마을 정원

오웬기념각은 서양인들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은 서양식 건물이다. 회색 벽돌을 네델란드식으로 쌓았다. 내부에 나무기둥을 세워 목재 지붕틀을 받쳤다. 당시 우리나라 풍습도 반영됐다.


오웬기념각은 출입문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서쪽, 다른 하나는 북쪽에 있다. 오웬기념각 건축 당시 우리나라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사회적 관습이 존재해 한 공간에 남녀가 같이 있을 수 없었다. 설계 당시 남녀가 같이 모여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동일한 출입문을 양쪽에 배치해 남녀가 별도로 출입하게 한 것. 오웬기념각 내부는 무대를 중심으로 가림막을 쳐서 남녀가 서로 볼 수 없도록 했다.


부속건물을 포함해 연면적은 434㎡이다. 대리석으로 된 현판에는 ‘IN MEMORY OF WILLAM L. AND CLEMENT C. OWEN. 吳基冕及其祖聿廉之紀念閣’이라고 쓰여 있다. 건축사적으로나 개화기 초 서양 선교사들의 선교활동과 관련해 의미가 깊은 건물이다. 학교법인 광주기독병원교육재단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오웬기념각은 1998년 5월 7일 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기독간호대학교 안에 있고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미국인 선교사 윌슨(Wilson, 한국명 우일선)이 거주했던 사택으로 양림산 기슭에 건립된 2층 회색 벽돌 건물이다. 1920년대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광주광역시에 현존하는 서양식 주택 건물들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벽은 두께 55mm의 회색 벽돌로 네덜란드식으로 쌓았다. 내부는 회반죽으로 마감하고 고막이 부분에는 화강석을 쌓았다.


이 건물의 평면은 정사각형이다. 1층에는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이 있다. 2층에는 침실이 있다. 지하층에는 창고와 보일러실이 있다. 현관은 한국의 전통적 방위 개념을 받아들여 동향으로 했다.


넓고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도 있어 분위기가 이국적이다. 정원에는 호랑가시나무와 흑호두나무, 은단풍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우일선 등 양림동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수십 명이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에 도착한다. 100m 정도 내려가면 ○○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우일선과 그의 가족은 이 주택에서 살면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86년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유지재단에 선교활동 장소로 사용하라는 조건으로 싼 값에 팔았다. 광주시는 1989년 3월 20일 대지 3114㎡ 중 건물 바닥면적 99㎡를 포함한 건물 주위의 360㎡을 지방기념물 제15호로 지정하고 건물을 보수했다.


가끔 정원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야경과 함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택 앞에 100m 정도의 돌담길이 있는데 월례행사로 '열정의 백미'라는 벼룩시장이 열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광효 기자 leekhyo@ajunews.com


이광효 leekhyo@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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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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