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준일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컬처]by 아주경제

90년대 초반 가요계에 선보인 파격적인 퍼포먼스

직원에게 모욕적인 말 들으며 비자갱신 거부당해

다름을 인정 못 하는 문화가 또 다른 양준일 만들어

90년대 음악방송을 틀어주는 유튜브 채널, 이른바 온라인 탑골공원을 통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양준일. 유튜브 영상 갈무리

'틀리다'와 '다르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했던 90년대 초반, 연예계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가수가 있다. 1991년에 '리베카'라는 곡을 발표한 미국 교포 출신 가수 양준일. 90년대 음악방송을 틀어주는 유튜브 채널, 이른바 온라인 탑골공원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 세상 밖으로 소환했다.


양씨는 30년 만에 선 무대에서 "다시 무대에 설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선 무대가 너무 떨린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흔들렸다. 한쪽으로 넘긴 긴 머리에 풀어 헤친 셔츠. 틀에 짜인 안무 대신 즉흥적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몸짓. 양씨가 불렀던 '리베카'와 '가나다라마바사'는 춤추기 좋은 박자에 힙합 요소를 가미한 '뉴 잭 스윙' 장르다. 발라드와 트로트가 주류였던 당시 가요 시장에서 양씨는 '다른' 음악을 선보였다.


2019년에 다다라서야 시대를 앞서갔다는 이유로 양준일의 이름 앞에는 '시간 여행자'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30년 전 그에게는 시간 여행자가 아닌 '이방인'이란 이름표가 따라왔다. 양아치와 장아찌도 구분하지 못했던 그는 혼자서 가사를 직접 써야만 했다. '다른' 음악을 하는 그의 활동이 동료 음악인들에게는 '틀린' 음악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서 "아무도 나를 위해 작사를 해주려던 사람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방송사는 그의 '다른' 언어도 문제 삼았다. 미국 교포 출신인 양씨는 라디오 방송에서 외국어를 자주 사용해 언어생활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영어를 금지하는 방송국이 왜 방송국 이름은 영어로 짓느냐"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던 이들에게 보낸 양씨의 신랄한 풍자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양씨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게 싫다"는 소리를 들으며 비자 갱신을 거부당해 한국을 떠나게 됐다.


그로부터 30년 뒤, 양씨는 화려하게 무대 위에 다시 섰다. 2019년에 불어닥친 양준일 열풍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전히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또 다른 양준일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집 앞 편의점에 들른 초등학생들의 대화에도 "걔는 나랑 틀려". 카페에 앉은 대학생들의 대화에서도 "우리랑은 틀려". TV 화면에서도 국회의원이 내 생각과 틀리다며 언성을 높인다.


다름을 바라보는 인식이 여전히 30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 뒷맛까지 씁쓸하다. 우리 시대 또 다른 양준일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31일 양준일은 데뷔 후 처음으로 약 30년 만에 팬 미팅을 연다. 행사에서 양씨를 만난다면 '다른' 음악을 한 당신, 참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홍승완 기자 veryhong@ajunews.com

2019.12.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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