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찾아온 가을… 야생화 꽃길을 걷다

[여행]by 아주경제

태백 야생화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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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재를 기점으로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야생화 탐방코스

주춤해질까 싶었는데, 또다시 거세졌다. 좀처럼 꺾일 줄 모르는 기세가 마치 잡초를 닮았다. 뽑고 돌아서면 다시 무성하게 자라나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질기고도 무서운 생명력을 말이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있기 전, 강원 태백 야생화 트레킹에 나섰다. 이 오만한 감염병을 꺾고 오롯이 만끽하게 될 '그날의 꽃길'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던 그때를 지금은 사진으로나마 추억하기로 한다. 길을 걸으며 희미하게 그려지는 미래의 봄을 생각했던 그날엔 무더운 날씨도, 답답한 마스크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콩닥콩닥 가슴만 뛰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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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트레킹의 시작점 '두문동재'

4시간 트레킹이라고?

아침을 든든히 먹고, 시원한 생수 한 병을 챙겼다. 코로나가 끝나고 시작될 꽃길을 생각하며 걸어보겠노라 굳게 먹은 마음이 행여 흔들릴세라 얼른 발걸음을 뗐지만, 막상 트레킹의 시작점 두문동재에 서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오직 곳곳에 피어난 야생화를 만날 생각에 들떴던 마음은 "부지런히 걸어도 4시간 이상은 걸린다"는 일행의 말에 산산조각이 났다.


아무래도 생각을 잘못한 것만 같았다. '이 무더위에, 그것도 마스크를 쓰고 4시간 넘는 트레킹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이곳저곳에서 반기는 야생화의 반가운 손길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해도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단 말이지······.'


"마음이 바뀌었다"고 선언하고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본인이 야생화를 꼭 보겠노라 채근을 해댔으니 차마 입밖에 얘기도 꺼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르막이 별로 없고 경사가 완만해 트레킹 코스로 으뜸이지." 불안한 눈빛을 눈치챘는지, 일행은 우리가 걸어야 할 코스를 두고 좋은 말만 쏟아내기 바빴다. 그래, 걸어보자. 이 험한 세상도 살아가는데, 그깟 4시간 트레킹이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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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취에 나비가 날아들었다.

야생화 천국으로 향하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를 품은 태백산 금대봉(1418m)은 산악인들이 제대로 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기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일행처럼 가뿐한 야생화 트레킹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트레킹 시작점인 두문동재(1268m)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덕이다.


두문동재 감시초소가 있는 쪽이 금대봉(1418m)과 대덕산(1307m)으로 향하는 길이고, 건너편은 은대봉과 함백산으로 이어진다. 야생화로 유명한 이 일대는 '금대봉·대덕산 생태·경관 보전지역'이다. '자연생태자원의 보고'로도 불린다.


야생화가 만개하는 4월 셋째 주 금요일부터 9월 말까지 개방하는 이곳은 1일 출입인원도 3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사전예약은 필수란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이전부터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니, 왠지 더 안심됐다.


이곳은 대체 어떤 야생화와 식물이 자생하기에 '보고'로 불리고, 인원도 제한하는 걸까. 야생화 문외한임에도 절로 발걸음을 하게 하는 그곳, 시작점에 다다르니 궁금함은 커져만 갔고,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어 마음은 분주해졌다. 두문동재에서 시작해 금대봉과 분주령,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총 6.7㎞)를 걸었다. 다행히 '숲' 전문가도 함께해 이곳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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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어수리'

야생화, 무척 아름다운 모습을 품었구나

이곳에는 꿩의다리·기린초·터리풀·홀아비바람·앵초·노루오줌 등 이름도 생소한 특산식물이 곳곳에 자생한다. 대성쓴풀과 모데미풀, 한계령풀 등 이곳에서 처음 발견된 희귀식물도 빼놓고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 덮인 겨울을 제외하고는 세 계절 내내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덕에 '산상화원'이라고도 불린다.


봄에는 선괭이눈과 얼레지·갈퀴현호색·꿩의바람꽃·애기괭이밥과 피나물을, 여름에는 이름도 재미난 요강나물과 할미밀망·하늘나리·큰앵초·태백기린초·일월비비추·동자꽃을 각각 마주할 수 있다.


가을은 야생화 천국이다. 개쑥부쟁이·큰제비고깔·흰물봉선·넓은잎노랑투구꽃·물매화풀 등이 탐방객을 맞는다.


금대봉 야생화 산책만 하고자 한다면 왕복 2시간이면 원점 회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왕 걷기로 마음먹었던 검룡소까지는 둘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두문동재에서 금대봉, 고목나무샘, 분주령, 그리고 검룡소까지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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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이토록 소중하고, 귀한 일상이라니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 우리는 방문자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체온 측정을 했다. 행여 출입이 안 될까(출입이 안 됐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마음 졸였지만, 결국 무사히 야생화 탐방에 나섰다.


"이 꽃은 여우오줌이에요. 이건 오벌개미취고요, 또 이건 각시취······."


길을 안내하던 숲 해설가는 간간이 멈춰서 야생화와 주변 숲 경관에 대해 설명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손을 내미는 야생화는 이름도, 모양새도 생경했지만, 저마다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외면할 수 없을 만큼 퍽 매력적이었다.


시작점부터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길은 대부분 울창한 숲길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푹푹 찌기 시작한 한여름이었음에도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걸었고, 살갗을 간질이는 바람에 마스크를 쓰고도 별 탈 없이 목적지까지 완주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서 야생화 외에도 수많은 희귀 수목을 만날 수 있었다.


오후 1시를 훌쩍 넘긴 시각, 드디어 최종 목적지 검룡소 입구에 닿았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는 용이 되기 위해 금대봉까지 거슬러 올라왔다는 서해 이무기의 전설을 품고 있었다.


진초록 이끼 사이로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마치 작은 폭포를 연상케 했다. 땀을 식힌 후 용의 몸부림을 상상하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고요한 샘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민족의 젖줄인 한강의 시원을 만났다는 기쁨에서였을까, 4시간이 넘는 탐방이 드디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야생화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폭염을 뚫고 나섰던 트레킹은 아련한 추억으로 가슴 한쪽에 자리했다.


어여쁜 자태를 뽐내던 야생화와 우거진 신록, 시원한 바람······. 하루빨리 소중한 일상 속으로 돌아가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오늘도 힘겨운 일상을 살아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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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5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구문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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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무 앞에 서서 잠시 쉬어가는 여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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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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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줌'은 각처의 산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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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꽃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서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야생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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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손이풀(풍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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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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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피어난 송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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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고운 꽃며느리밥풀

글.사진 태백(강원)=기수정 문화팀 팀장 violet1701@ajunews.com


기수정 violet1701@ajunews.com

2020.09.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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