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들:풍문조작단' 가짜 뉴스의 유포 과정만큼 안타까운 영화

[컬처]by 알려줌

<광대들: 풍문조작단> (Jesters: The Game Changers, 2019)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 표지 및 이하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조선의 제7대 임금 '세조'와 '세조'를 왕위에 올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한명회'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 평가를 받았다. '조선 왕조의 기반을 마무리했다'는 공통적인 평가는 있으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빼앗은 폭군이자 패륜아'로, 조선의 근간이 된 법전,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피를 감수하면서까지 전제군주제 국가인 조선의 왕권 강화에 힘을 쓴 능력자'라는 상반된 주장이 등장했던 것.


대중문화계에서도 두 인물의 당시 평가에 맞춰진 작품들이 등장했다. 1984년에 방영됐던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의 '설중매' 편에서는, '세조'(남성우)와 '한명회'(정진)를 좀 더 미화하려는 시각이 그려졌다. 그래야 '12.12 군사 반란'으로 일어선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정당성'이 더 부여될 수 있었기 때문. 1994년 방영된 KBS 월화드라마 <한명회>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왕과 비>는 최대한 '실록'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한명회>에서는 '수양대군의 앞잡이'라는 캐릭터에서 더 나아가 '한명회'(이덕화)에 초점을 맞추기까지 했다.

<왕과 비> 속 '세조'(임동진)가 임종하는 장면에서, 내레이션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까지 했다. "역사는 '수양대군'을 가리켜 왕위찬탈자로 적고 있다. 그러나 '세종 대왕'의 적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아들이 '수양대군'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중략) 종실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 임금인 '단종'보다는 강력한 '수양대군'이 보위에 오르는 것이 왕조의 안정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 조카의 보위를 훔쳤다는 이 도덕적 결함이, 임금으로서의 빛나는 수많은 치적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을 역사의 그늘 속에 파묻어버렸으니."


2010년대에 들어서는 '세조'의 '치세'보다, '쿠데타를 이끈 인물들'과 '말년은 후회에 가득했다'라는 두 시선을 중심으로 '세조'를 묘사했다. '퓨전사극'이지만, 2011년에 방영한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나온 '세조'(김영철)의 모습은, 김영철이 연기해서인지 마치 <태조 왕건>의 '궁예'를 보는 듯했다. '세령'(문채원)의 아버지로는 온화한 매력을 보여주면서도, '지킬 앤 하이드'처럼 양면적인 모습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절대 권력을 얻기 위한 모습을 잘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계유정난'도 권력을 잡으려는 '세조'의 야심을 더욱 응축시킨 연출이 들어갔다.

영화 <관상>(2013년)에서도 '압도적 등장 장면'으로 알려진 '수양대군' 역의 이정재,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로 연기를 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명회'를 보여준 김의성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 역시 '세조'의 '치세' 보다는 '쿠데타를 이끈 인물들'과 '말년은 후회에 찼다'라는 이미지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광대들: 풍문조작단> 역시 그런 흐름은 이어졌다. 집권 말기에 극심한 피부병으로 인해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의 '세조'(박희순)를 보여줬고, '한명회'(손현주)는 '세조' 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인물로 소개됐다.


이렇게 '세조'와 '한명회'를 다룬 작품은 많았고, 그 캐릭터가 주연이건 조연이건 간에 기본적인 인물의 설정은 위에 언급한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건들면 <나랏말싸미>(2019년)의 경우처럼 될 수 있는 '세종'의 업적과 더불어, '레드 오션'이라 할 수 있는 '이 시기'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언론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주호 감독은 "나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광대 중 한 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면서 '궁극적인 소명'에 대해 생각해봤다"라며, 작품의 제작 의도를 강조했다.

그래서 왜 이 작품이 '세조'와 '한명회'를 선택했는지, 너무나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전 정권의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설정과 묘사를 어렴풋이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광대들이 '한명회'의 지시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를 하는 모습은 지금도 온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이슈를 떠올리게 했다. '사육신'의 행적을 다룬 남효온의 소설 <육신전>을 막기 위한 '검열' 과정은, '세월호 참사' 당시 진상규명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가 된 문화예술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큰 틀에서 다른 두 편의 작품이 머리에 아른거렸다. 하나는 <왕의 남자>(2005년)다. 환관 '김처선'(장항선) 덕분에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을 비롯한 광대패들이 '연산군'(정진영)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이 작품 역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한 줄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며, '장생', '공길', 그리고 '연산군'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물의 감정과 갈등의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두 번째는 <나우 유 씨 미> 시리즈다. 케이퍼 무비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트릭'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슷하다.

'세조실록'에 기재된 다양한 '기이 현상'들을 소재로, "만약 '광대패'들이 이 현상들을 조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왕의 남자>와 <나우 유 씨 미>의 스토리라인을 섞어가며 만들어졌다. <왕의 남자>처럼 '웃음'과 '해학'으로 시작해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 위한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부족한 지점이 많았다. 이 영화가 코미디, 정치 풍자물, 진지한 역사물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정치색을 띠어서 이 상업 영화가 좋았다" 혹은 "나쁘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관객에게 어떻게 작품의 메시지가 잘 전달이 되는가"에서 아쉽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기이한 현상을 '영화'처럼 연출하고, 이로 인해 '가짜 뉴스'가 생성되고, 백성들의 말을 통해 유포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짜 뉴스의 생성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 생성 및 유포 과정을 영화로 담으려는 시도 역시 현실의 '가짜 뉴스'처럼 공감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광대들이 기이한 현상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1939년) 속 '위대한 마법사'가 사용하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아무리 '팩션 코미디 영화'라지만, 카메라, 스크린, 텅스텐 조명 등의 당시 없던 특수효과를 마치 '옛것'으로 둔갑 시켜 보여준 것은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효과를 이용해 '회맹'에 참여한 왕과 신하들을 꾸짖는 장면은, 분명 '작품의 클라이맥스'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쌓아 올렸던 갈등의 감정선이 대폭 파괴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웃음 포인트라고 설정한 것들도, '현재 시대'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촌스러움'이 느껴졌다. 강인한 외모와 다르게 조그만 일에도 놀라는 소심한 캐릭터 '홍칠'(고창석)이 뭐만 하면 오줌을 지리는 장면이나, 마지막 '쿠키 영상'처럼 보여주는 이국주의 등장 장면 등이 대표적이었다.


2019/08/13 CGV 용산아이파크몰

글 : 양미르 에디터

2019.09.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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