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위로하다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위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찾사, '사계' 中

6,7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은 가히 눈이 부실 정도였다.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의 가파른 발전으로 해가 다르게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여기까지가 학창시절 사회 시간에 내가 배운 전부였다. 하지만 영화 '위로공단'에서 본 그 시절에 대한 묘사는 사뭇 달랐다.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밤낮없이 재봉틀을 돌리느라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그 동안 들이마신 먼지 때문에 폐결핵에 걸리곤 하던 여성노동자들의 아픔이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 중에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은 극히 소수였다.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더 나아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었다. 번 돈의 대부분은 집에 부쳐 생활비에 보탰다.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건 별로 없었다. 고용주들의 탐욕으로 인해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았고, 먼지가 매캐하게 잔뜩 낀 작업환경에서 일했고, 언어적, 육체적 폭력은 기본에 때로는 성폭행까지 당했다.

'위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기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옆사람과 대화조차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그녀들은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악덕 고용주에 맞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상상을 뛰어넘는 보복과 가차없는 해고. 심지어는 노동조합의 대의원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똥물을 뿌려대기까지 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1978년 동일방직 똥물테러 사건을 처음 알았다. 한 노동자는 아예 똥물이 든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기까지 했단다. 이 충격적이고 역겨운 사건을 사회 교과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라는 짙고 짙은 그늘은 경제성장이라는 눈부신 빛에 가려 그 형상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생계 뿐 아니라 건강까지도 위협했다. 중화학공업 시대가 도래한 후 속속들이 들어선 반도체 공장들. 이 역시 노동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암에 걸렸다고 한다. 여성으로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칼을 전부 잘라내며, 그들이 흘린 소리없는 눈물이 스크린을 넘어 내 가슴까지 적시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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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닙니다."

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단순노동은 기계들이 대체했다. 100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던 동일방직 역시 현재는 40명 가량의 직원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의 작업 환경도 좀 나아지는 듯 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했다. 재봉틀 앞에서 콜센터 전화기 앞으로, 공장 테이블에서 빌딩 숲 속 할당된 작은 책상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이 받는 대접은 다를 게 없고, 여전히 그들 중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마트 캐셔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손님들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 않고 바닥에 던지는 카드를 주워 계산하고, 휴게실이 따로 없어 먼지구덩이 창고에서 밥을 먹는다. 콜센터 직원들은 혹 해고당할까봐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욕설이 난무한 전화를 꾸역꾸역 울면서 받는다. 스튜어디스들은 12시간, 체감상 그 4배인 48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일하며, 손님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그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 및 정규직 전환을 위해 거리로 나선다. 붉은 머리띠를 매고 서울 광장에 모인 그들, 그리고 그 옆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에서 즐겁게 얼음 위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대조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어렵다며 인터뷰 도중 눈시울을 붉히던 한 노동자가 단 위에 올라 마이크를 쥔다. 그녀의 손이 눈에 보이게 떨리고 있다. 그 손에서 나는 아직도 그녀 안에 숨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팍팍한 생계에 휩쓸려 채 빛도 못 보고 져 버린 그 순수함을 보았다. 덜덜 떨리면서도 힘줄이 튀어나오도록 마이크를 꽉 쥐고 있던 그 두 손은 그토록 순수하고 간절했다.

'위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장님처럼,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대한민국 서열 맨 끝자락에 서서, 여성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아파해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고충을 모르거나, 혹은 알더라도 무관심했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랬다.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나 이 영화가 더더욱 인상깊게 다가왔던 이유는 인터뷰 중간중간 삽입된 상징적인 이미지 덕택이리라. 가장 많이 등장했던 이미지는 꽃, 무언가로 얼굴 혹은 눈을 동여맨 소녀들, 그리고 하늘을 가득 덮은 까마귀떼들이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청춘들이 눈이 가려지고 입이 틀어막혀 세상과 단절되고, 악덕 업주들의 까마귀처럼 시커먼 탐욕에 희생되는 모습이 이미지화를 통해 더더욱 처절하게 다가왔다.

 

이제 곧 학생 신분을 벗고 사회 초년생으로 한 발 내딛을 내게 이 영화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각성을 시켜주었다. 나처럼 이 영화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깨닫고 지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여성노동자들이 살 만한 세상이 어서 왔으면, 그들이 답답하게 숨을 조이던 모든 가림막들을 벗어던지고 떳떳하게 목소리를 내고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명수진 에디터 esj950304@naver.com

2017.10.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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