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은 여자,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다.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예쁘지 않은 여자, 사랑받기 위해 노

우리가 모두 사랑을 꿈꾼다.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이 형태의 차이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가 모두 사랑을 꿈꾼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의 신이 되는 것과 같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 외에는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신이 되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군중 속 묻혀 있을 때 아무런 특징도 없었던 사람이 누군가한테는 환희를 느끼게 할 수 있다니, 누가 감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 군중 속에서 한 인간은 정말 별거 아닌데, 사랑에 빠진 순간 한 인간은 정말 특별하기 그지없다. 전 생애와 비교하면 그 순간은 찰나지만,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감동은 영원하다. 짧은 인간의 삶을 감동적으로 만드는 것도 인간의 실존적 불안의 단면에는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사랑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인류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니, 옛날에는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소개팅이 잡히면 예선 통과야."
"너 정도면 합격점이지."

사랑에 자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어느 시점부터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나는 남자친구 이전에 인간관계 자체가 숙제였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못했다. 어렴풋이 주변 사람들이 "대학교 가서 예뻐지면 남자친구도 생길 거야."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걸 믿었다.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연애의 자격'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외모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왔고,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오면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편하게 지내는 남자애와 술김에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나는 자연스럽게 '아무래도 연애하기는 힘든'타입이었고, 그 남자애들뿐만 아니라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내 숏컷이나 뿔테안경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몇 번이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긴 머리 패션 가발을 써본다거나, 대학교 2학년 때 친구에게 소개팅을 부탁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후자 같은 경우에는 아직도 이불을 차고 있는 기억 중 하나다. 왜냐하면, 그 상대 남자애가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소개팅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전과 이후에도 내가 소개팅을 몇 번 주선했는데, 내가 상처받은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 정도면 합격점이지, 소개팅이 잡히면 예선 통과야. 너는 예쁘니까, 너는 잘생겼으니까.... 연애를 잘 할 수 있을 거야. 씁쓸하게도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팅이 망해서 이불을 찼다는 표현을 썼는데,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불을 찬다는 건 내가 잘못한 게 있어야 하는데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내 나이 또래답게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소개를 주선해준 친구가 씁쓸함을 표현하고 위로했지만, 왠지 그럴수록 더더욱 내가 잘못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부끄럽다가 시간이 지나니 왠지 화가 났다. 그때는 사랑받기 위해서 내가 아닌 것을 걸쳐야 한다면 사랑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꾸미려고 하면 꾸밀 수 있지만, 내가 뭐하러 그런 것들을 해야겠는가? 그런 나한테 2016년인가 처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타이틀을 보자마자 말 그대로 빠져들고 말았다. 얼마나 이 영화의 타이틀과 실험에 기대했냐면, 작가의 블로그를 추적해서 DVD를 구할 길이 없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실제로 2년인가 걸려서 기어코 2017년 다다름 영화제까지 쫓아가 얻어내 몇 번이나 돌려보게 된 다큐멘터리가 바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다.

예쁘지 않은 여자, 사랑받기 위해 노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시놉시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아름’은 애인을 만들기 위해 예뻐지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은 여느 다이어트 도전기처럼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예뻐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변함이 없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서슴없이 외모평가를 던진다. “솔직히 보기 좋지 않은”, “호감가는 외모는 아니”라는 평가를 그녀는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으며, 무엇이 예쁜 건지, 어떤 노력을 해야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지는지 실험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고시생 옷차림으로 조용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도, ‘섹시’하고 짧은 옷을 입은 한국계 미국인 같은 모습을 하고, 히피 스타일로 담배를 물고 나른한 눈빛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떠냐”고 질문을 던진다. 버튼을 누르듯 바뀌는 그녀의 가장무도회에 사람들은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평가를 바꾼다. 어느날 가장무도회를 끝낸 아름은,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가장’하는 것을 멈추기로 한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다희
출처 : http://hrffseoul.org/ko/film/1936

말 그대로 보기 힘든 다큐멘터리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감독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는 말들은 소름 돋을 정도로 익숙했다. 폭력이라는 규정이 없었으면 폭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말들이었다. 다큐의 주인공 박강아름 감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규정당하고 고통받은 현실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컨셉에 맞춰 옷을 바꿔 입고 그 반응을 지켜봤다. 그리고 실제로 주변 반응은 달라졌다. '가장무도회'를 시작하고 나서 반응이 달라진 소개팅 남자가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소위 '추녀'에서 '미녀'로 변한 영화들이나 만화처럼 그 과정이 유쾌하지도 않고, 더 후반부의 내용도 그렇다. 여러 가장무도회를 걸친 그녀는 더 카메라를 들기를 멈춘다. 아직도 그녀가 관둔 이유에 관해 설명한 부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를 상처 입혔던 말들, 내가 고발하려고 했던 그 말들이 정말로 나를 괴롭게 해서 더 찍기가 어려웠어." 영상이 끊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제 그녀는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여전히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외모지상주의를 향한 유쾌한 복수'가 되길 바랬던 그녀의 마지막 인터뷰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예쁘지 않은 여자, 사랑받기 위해 노

하지만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마지막 그녀의 남편에게 자신에 관해 물어본다. 남편은 졸린 목소리로, '당신은 참치야.'라고 이야기한다. 나한테는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그가 그런 단어를 쓴 것에 대해 우리가 자세히 알 수는 없어도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그만의 언어로 설명하려 했다. 머리가 어쩌고, 몸무게가 어쩌고 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받길 바랬던 박강아름의 실험은 가장무도회의 바비나 미미로서가 아니라 박강아름 감독 그 자체로서 성공한 셈이다. 사랑의 여지를 남긴 다큐멘터리는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외모지상주의의 돌부리가 사랑으로 가는 길에 수도 없이 깔려 있었지만,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른 셈이다.

 

예쁘건, 덜 예쁘건을 떠나 수많은 억압을 받는 여자들에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아름다움은 폭력으로 작용한다. 아직도 내 친구들은 계속 꾸미면서 자기가 예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넷에서 핑크색 유두를 만들기 위해 틴트를 바른다는 글을 읽은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 속에서 나도 마찬가지로 알게 모르게 고통받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몸과 아름다움에 대한 콘크리트 같은 기준으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고, 모든 상처는 인식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강아름씨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삶에는 또 다른 예외가 존재한다. 사랑은 더더욱 그렇다. 사실 나는 내 분석가 선생님과 함께 이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사회의 걸림돌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사랑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고 말했다. 사랑과 외모의 연결을 끊기는 어려워도, 그렇지 않은 사랑도 존재한다. 사랑뿐만 아니라 규정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그게 우리 삶의 신비로운 점이 아니겠는가? 심심한 위로와 애정을 담아, 스스로가 외모적으로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든 사람이 늘 자신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손진주 에디터 gate95@naver.com

2017.12.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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