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우에노 주리가 보고 싶어지는 날들이 있다. 그녀의 말괄량이 연기가 필요할 때, 그건 세상이 건조하게 느껴질 때다. 영화는 지극히 일본적인 연출과 내용으로 진행된다. 일본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영화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우드잡, 스윙걸즈. 그리고 이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평범함

평범함, 스무 살 때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14박 15일이라는 시간 동안 올레길을 걸으며 나를 관통했던 고민의 화두는 '평범함'이었다. 모든 분야에 적당히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출 난 것이 없는 사람. 공부도 이쯤, 농구도 이쯤, 책 읽는 것도 이쯤,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보다는 여러 분야에 평균치가 될까 말까 한 관심이 있는 나, 그래서 슬펐다. 그런 평범한 내가 미웠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면 특별해지자고 마음먹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여행에서 가졌던 마음가짐은, 그 장소에 놓고 온 듯 잊어버리고 만다.

평범함으로 어필하기

평범함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줬던 책과 프로그램이 있다. 만화책 의룡에 나오는 아사다 류타로와 키리시마 군지. 교수선거권을 두고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만화책에서 군지는 자신의 평범함을 어필한다. 천재인 아사다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을 보통사람인 자신은 알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가진 평범함이 빛날 것이다.” 키리시마 군지는 주인공인 아사다의 정반대 편에서 권력투쟁을 하는 대척점에 서 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로 보였고, 나는 그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공감을 했다. 그가 말하는 평범함이라는 것이 가지는 힘을 믿었고. 그러기를 바랐다. 나도 평범했기에.

 

무한도전에서 진행했던 선택2014. 정형돈은 자신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평범함이라는 무기를 선택했다. "이 사회의 절대다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 평범한 사람들이 한 사람의 카리스마, 한 사람의 현란한 말솜씨가 아닌 절대다수가 세상을 바꿀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김태호PD는 강연에서 정형돈을 이야기할 때 무한도전 멤버들이 다 개성이 강하다 보니 그가 가진 평범함 자체도 개성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사회에서 평범함은 오히려 굉장히 큰 무기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공감대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함에 대한 시선

평범함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진 이유는 이 영화가 평범함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내가 위에서 이야기했던 평범함이라는 건 큰 무기이고, 장점이다! 라는 주제의식을 함유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보다는 ‘평범함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보자.’ 정도의 가벼운 시선을 보여준다.

 

스즈메는 어중간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뛰어난 맛의 라면보다는 어중간한 맛의 라면을, 어중간한 숫자와 어중간한 단어를 좋아한다. 매일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느 날 그녀는 평범함에 위기의식을 느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스파이 선배의 가르침을 받는 스즈메

“모두에게 잊혀 죽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 이대로라면 나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위기의식은 그녀가 스파이에 지원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 어마어마한 일을 할 줄 알았지만 정작 스파이에게 주어진 미션은 스즈메가 가장 잘해왔던 평범하게 살기다. 스파이가 된 그녀는 평범하게 살기를 강요받지만, 이는 오히려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인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던 어중간하게 살기를 오히려 가장 어렵게 만든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도 여러 뒷모습이 있다. 평상시대로 어중간하게 달리자, 라고 되뇌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평소처럼 달리지 못하게 된다 마치 숨 쉬는 것을 강요당하면 어색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가능한 한 평범하게 살기를 강요하는 스파이 선배들은 가르친다. “종업원이 기억하지 못할 메뉴를 골라봐.” 스즈메는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메뉴를 본 적은 처음인데?

평범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화려한 쿠자쿠와 평범한 스즈메의 단면

그녀는 아무것도 달라짐 없는 일상 속에서도 그 스파이가 '되었다는 것' 만으로 두근거려 하고 설레 한다. 나는 여기서 박웅현 작가가 ‘책은 도끼다’에서 이야기했던 낯설게 보기, 시인의 다르게 보기를 본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말했던 일상에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본다.

 

스즈메는 '평범하게 살기'를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자 주변 사람들이 먼저 인식하기 시작한다. 스즈메의 '평범함'이 일상생활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남편은 항상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었느냐고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지만, 스즈메의 달라진 태도에 좋은 일 있느냐고 물어본다. 또, 항상 존경해 마지않아 닮고 싶었던 쿠자쿠에게도 너에 비하면 내 인생은 시시하다- 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으로 살기

스즈메는 스파이의 일원이 되면서 남과 비교하며 사는 삶을 그만두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내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된 순간부터 쿠자쿠가 어떻게 살든,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내 삶이 얼마나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가가 우선이 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스즈메는 매일 먹이를 주던 거북이를 놓아주게 되는데 그럼으로써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스즈메에게, 타인의 부탁의 상징물인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주체적으로 그만둠으로써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스파이 선배들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갔지만, 여전히 평범한 삶을 사는 스즈메는 전과 똑같아 보이지만 삶의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가 끝나가자 우에노 주리가 말을 건넨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에서 바라보기. 나만의 템포를 가지고 살아가기. 그것만으로 우리는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시선에서 거북이는 분명 느리다. 하지만 거북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거북이의 속도는 충분하다. 그것이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평범함 속에 주어진 우리만의 속도를 찾는다면 그것만으로 우리는 평범함의 또 다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신승욱 에디터 01_hwp@naver.com

2018.03.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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