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특별전: 영혼의 정원 展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샤갈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들 샤갈展

마르크 샤갈 특별전: 영혼의 정원 展

이름 자체가 신화가 되어버린 빈센트 반 고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샤갈의 인기도 만만치는 않다. 그의 몽환적이고 다채로운 색감과 신비로운 상징들, 인생역정의 이야기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 감동에는 서양미술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한 여자만을 향했던 대가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도 결부되어 있다. 그러한 인기 때문인지, 올해는 샤갈을 둘러싼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질 예정이다. 그의 특별전이 두 장소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순간이 머지 않은 것이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M컨템포러리의 <마르크 샤갈 특별전: 영혼의 정원(4.28~8.18)>이고, 연이어 6월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6.5~9.26)>을 내놓을 예정이다. 2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직선거리로 3.3km 떨어진 두 미술관이 동시에 선보일 샤갈의 성찬은 아마도 상업미술관과 공공미술관, 도전과 전통이라는 이슈를 제기할 것이며, 서로 비교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참고로, 강화도의 해든뮤지움에서 <샤갈 – 신비로운 색채의 마술사 展(3.1~11.10)>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동기간 샤갈 전시는 총 3건이다. 미술사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다).

 

M컨템포러리의 <영혼의 정원 展>을 오프닝 당일에 먼저 만났다. 샤갈의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10시 40분부터 이미 매표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발권은 정확히 11시에 시작되었는데, 새로 선발된듯한 직원들의 소소한 미숙함에 의하여 정시에 입장하고 싶던 작은 소망은 쉽사리 무너졌다. 미리 온 관람객들에게 조금 일찍 발권 해주고, 전시장 입구에서 대기시켰다가 정시에 입장시켰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지엽적인 문제의식은 이내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왜냐하면 이후에 전시장에서 접한 더욱 끔찍한 문제들이 사소한 불만쯤은 기억조차 나지 않도록 상쇄해버렸기 때문이다.

1. 작품

대중이 샤갈 특별전에서 기대하는 프로토타입, 즉 일정한 전형성이 있게 마련이다. 친구에게 고흐 전시의 티켓을 선물받았다면 이내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 하다 못해 「아이리스」를 떠올리듯, 샤갈 전에 초대 받았다면 당나귀와 사람이 너풀너풀 날아다니는 환상적인 분위기의 유화들을 떠올릴 것이다.

 

관람객의 이러한 기대는 발걸음을 전시로 옮기게 하는 요인이 됨과 동시에 그들을 실망시킬 수 있는 독이 되기도 한다. 관람객의 기대는 전시의 지향점 중 하나가 되어야 하나, 이는 전시 기획자가 그 전형성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기획자의 지식과 직관, 그리고 소속 기관의 지원을 총동원하여 훌륭한 작품들을 입수하고 배치하였을때, 그것이 관람객의 기대와 일치하면서 풍성한 예술적 경험으로 환류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전시의 성공은 반드시 그런식으로 관람객의 기대에 충족하는 것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라도 그것의 존재목적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전시는 성공할 수 있다. 여기서 ‘효과적으로’란, ‘근거와 함께, 설득력을 갖추고, (무엇보다도) 아름답게’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효과적으로’가 작동할 때, 관람객은 보고 싶었던 그림이 없었다는 슬픔을 잊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보석을 발견했다며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간다.

 

<영혼의 정원 展>은 이 ‘효과적으로’가 결여되어 있기에, 집에 돌아가는 관람객의 발걸음에 갑절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260여점의 샤갈 작품을 국내 최대 규모로 제시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그 작품의 약 90%는 판화이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아크릴화, 유화, 템페라 등 우리가 기대했던 채색화는 약 30여 점에도 못미치는 듯 하다. 1, 2부에서는 에칭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3부에서는 석판화가 주인공이다. 4부만이 유일한 채색화 구역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주인공인 판화들의 존재목적이 효과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출품된 판화들은 샤갈이 다양한 목적으로 작업했던 것들이 아니다. 특정 도서의 삽화나 판화집의 제작과 같은 단일한 목적성의 연작들을 여러 장 모아 놓은 모양새이다. 이 연작들은 5개 정도만 보아도 전체 목적성이 드러난다. 일반적인 안목만 갖춘 관람객이라도 ‘아, 이런 삽화를 통해서 독창적인 형태로 우화를 전달하려고 했구나’, ‘이 판화 작업은 소설의 주제를 전달하면서도 샤갈의 희망과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구나’ 식으로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러한 무채색의 연작들을 수 십 장씩 같은 구역에 걸어 놓으니 지루함이 밀려옴과 동시에 종국에는 이 전시 형태가 그저 작품수 260개를 채우기 위한 일종의 싸구려 물량공세 같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1부에서는 많은 작품을 걸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가로 두 줄로 작품을 배치하는 변칙을 저질렀는데, 이 이례적인 배치가 주최측의 ‘머릿 수 채우기 전략’을 더욱 강조해준다. 그나마 3부의 석판화들은 1, 2부의 책 삽화와 달리 독립적인 작품들인데, 한 권의 판화 모음집에 있던 작품들을 개별 액자로 재포장해 내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판화를 많이 출품하더라도 주제에 부합하는 양질의 작품들을 다양한 출처에서 가져왔어야 하고, 그게 어려웠다면 차라리 지금의 작품 수를 줄이고 공간 구획을 더욱 넓고 편안하게 설계했어야 한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작품 수만 많다고 마냥 박수쳐 주는 순진한 호구들이 아니다.

 

사실 개별 판화 작품 하나하나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좋은 작품들이다. 샤갈의 독특한 모티브와 표현 방식을 음영의 형태로 본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며,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원형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차마 피할 수 없는 지루함과 물량공세에서 오는 배신감으로 인하여 이 작품들을 평가절하하게 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평소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샤갈의 작품들을 1만 3천원이라는 입장료를 내고 보면서 왜 이런 불필요한 배신감과 반감을 느껴야 하나? 이 감정에 대해 관람객이 샤갈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2. 공간

전시장 자체가 좁은데다가 위에서 설명한 다량의 판화 작품을 우겨 넣는 전략으로 인하여 구획이 더욱 오밀조밀해졌다. 11시에 가서 망정이지 주말 14~16시 피크시간대를 선택했다면 <뒷통수의 정원 展>을 볼 뻔 했다. 2부 입구와 가까운 곳에 걸린 그 귀한 채색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정체되기 시작했는데, 추석 귀경길 고속도로 IC의 병목현상을 방불케 했다. 공간의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내 최대 규모’라는 천박한 마케팅 수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구획을 더욱 단순히 설정해야 한다.

 

공간 간의 유기적인 연계가 결여된 것도 문제다. 2부를 지나 3부로 넘어가야 하는데, 2부 출구쪽에는 ‘전시가 계속 이어집니다’ 같은 안내 표시 스티거나 화살표 조차 없어서 전시가 거기서 끝난 줄 알았다.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3부로 넘어가 보니 ‘여기도 전시 맞아?’ 같은 웅성거림이 곳곳에서 들린다. 3부의 공간은 특이하게도 상부가 높게 뚫린 구조인지라 분위기 자체가 다른 세션과는 전혀 다르며, 전시공간 답지 않게 스포트라이트 없이 전체적으로 환하다. 공간의 이러한 이질성도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여기서 호텔 예식장의 결혼식 사회자 멘트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데, 이 소음은 전시의 섬세한 감성을 건드리는 치명적 요인이므로 반드시 방음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출구는 3부 쪽에 2개가 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로 출구 표시가 없어서 그곳을 지키고 서 있는 애꿎은 스태프들만 질문 공세를 감내하고 있었다.

 

‘넛지’를 고려해서 공간을 재기획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별한 애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는 항상 가장 아둔한 사람의 입장을 상정하면서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

3. 무성의

대책 없는 무성의함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어색함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3부에 배치된 아치 판넬들은 그 제작 의도 자체가 의심스러우며, 유난히 밝은 조명 속에서 재료의 조잡함이 드러나 삼류 놀이동산의 포토존을 상기시킨다. 아마도 판화들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그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이런 구조물을 선택한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이 구조물로 인하여 판화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명백하게 강조된다. 심지어 이 판넬에 붙어 있는 작품 중 「노트르담과 에펠탑(1960)」은 설명판이 엉뚱한 작품에 달려있다.

 

전시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인 아뜰리에의 재현은 샤갈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 거기에 놓인 집기와 가구들은 샤갈이 살았던 시대와 지역의 맥락과는 전혀 무관하며, 마치 어느 시골 한의약방에서 폐점하면서 정리한 것을 들고 온 것 같다. 판화 관련 장비들도 종로 인쇄소 거리 한귀퉁이에서 주워온 것 같다. 판화 장비에 붙어 있던 미처 떼어내지 못한 ‘애플 社’의 사과 스티커는 실소 마저 자아낸다. 샤갈이 무덤에서 경악을 하며 뛰쳐 일어나 여기 있는 집기들을 다 뒤집어 엎어도 이해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 분의 성정상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3부의 책 삽화 코너에는 디지털 도판을 볼 수 있도록 아이패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통상 이런 전시에 키오스크용으로 놓는 아이패드는 특정 어플리케이션만 사용 가능하도록 통제해 놓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 있는 녀석은 IOS의 기본 갤러리 어플리케이션으로 도판을 보도록 해 놓았고, 터치를 통해 홈화면과 다른 모든 어플리케이션에 접근도 가능한 상태였다. 여기는 신사동 애플스토어의 시연 코너가 아니라 미술 전시장인데! 아마 나같은 사람이 메모장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어 놓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여기는 <샤갈의 에칭> 특별전…”

마르크 샤갈 특별전: 영혼의 정원 展

이번이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의 세 번째 전시이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잘 할 때도 되었다. 알 수 없는 저의와는 별개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 수익성이 낮은 미술관을 설립해서 예술 저변 확대에 기여한다는 점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전시는 곤란하다. 샤갈을 잘 아는 애호가들이 이번 전시로 샤갈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샤갈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들도 앞으로 샤갈과는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겠다며 이를 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샤갈을 적당히 대충 아는 교양인들은 이런 삼류 전시를 통해 샤갈과 절연할 가능성이 있다. 나부터도 당분간은 샤갈을 보고 싶지 않다. 무수한 에칭의 물량공세 속에서 그냥 지쳐버렸다.

 

미술관과 기획자에게 묻고 싶다. 작품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드러내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줘도 모자른 시간에 왜 오히려 작품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가? 이 전시의 기획자가 진정 미술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반응─비록 일개 딜레땅뜨의 소수의견일지라도─에 대하여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작품을 만든 것은 세상을 떠난 작가이지만, 그것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기획자의 몫이다. 작가가 없다면 기획자도 없고, 기획자가 없다면 우리도 작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온전하고, 풍요롭고, 다층적인 아름다움의 세계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작가와 관람객 간의 가교 역할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다시금 인식하고,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문제점들을 해결해주길 바란다.

 

이 미술관이 그저 투숙객들에게 선심쓰면서 티켓 한 장씩 나눠주려고 설립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주일 에디터 sgreens@hanmail.net

2018.05.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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