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과 줄리엣', 여성만의 4대 희곡 [공연]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고전의 재해석

 

연극 ‘R&J’,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까지. 우리는 고전이라는 이유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를 몇 백 년 동안 곱씹는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 사랑을 나눈 인물이라는 건 알 테다. 이게 바로 고전의 힘이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1968)

하지만 이런 익숙함이 마냥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익숙하기에 새로움을 기대한다. 더 이상 관객들은 줄리엣과 로미오가 엇갈릴 때 비애를 느끼지 않는다. 익숙함과 뻔함은 한 끗 차이고, 고전을 어떻게 비틀어 새로운 페이소스를 창조하는지에 핵심이 담겼다. 고전의 진수를 뽑아내는 정극이라면 원작 텍스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겠지만, 리메이크는 말 그대로 리메이크다. 결국 관객들은 ‘어떻게 다시 만들었는지’의 ‘다시’에 기대하게 된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연극 ‘R&J’는 시공간을 뒤틀어 새로운 맥락 안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조했다. 특히 연극 ‘R&J’는 극중극의 형식을 빌려 이중 구조를 만들어 내, 정극적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이 극들 역시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스는 놓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독특한 시놉시스를 창작했다.

 

관객들이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과 연극 ‘R&J’에 재미를 느낀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음에도 비극적 결말을 맞아야 했다는 비애감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페이소스는 원작 희곡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작품성 충만한 원작 대신 리메이크 작품을 관람하는 이유는 새로움 때문이다. 공간이든 인물이든 시간이든, 무엇 하나는 새롭게 재창작된 고전을 원한다.

로미오와 줄... 아니, 줄리엣과 줄리엣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이 고전을 재해석하는 방법, 신박하다. 이 극에는 줄리엣과 사랑에 빠지는 로미오가 없다. 물론 사랑은 있다. 단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아닐 뿐,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진 고전적 로맨스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 로맨스를 어떻게 풀어낼지, 이들의 사랑에 어떤 장애물이 존재할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전의 익숙함은 훌륭하게 극복한 듯하다.

 

그리고 로미오가 빠진 자리에 줄리엣이 들어갔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전에서 놓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동시대성이다. 물론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모티프를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고, 여전히 ‘유토피아’에 대해 생각한다. 고전을 고전답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과거와 현재를 가리지 않는 유효성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유효한 어떤 질문과 주제를 던지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몇 백 년 동안 셰익스피어를 읽는 이유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두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이 아닌, 서로 다른 집안의 두 딸 ‘줄리엣’의 사랑이야기로 재창작한 <줄리엣과 줄리엣>은, 원작이 가지는 고유한 정서와 셰익스피어의 문학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고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보도자료 중)

이렇듯 셰익스피어는 아직도 유의미하지만, 17세기보다 21세기는 조금 더 크고 다양한 맥락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전을 재창작하는 과정에서 이 맥락을 무시해버리면 고전의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다.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17세기가 포괄하지 못했던 여성과 퀴어의 맥락을 아우른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서사, 동성애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 고전을 비튼다. 이러니 궁금할 수밖에.

여성의 로맨스

최근 뮤지컬 ‘해적’에서 두 여성 해적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두 여성의 사랑을 우정이나 인류애로 희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로맨스를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여성의 서사, 그리고 특히 여성의 로맨스에 지나치게 박했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스킨십을 스킨십으로 그리지 못한 채 우정이나 의리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아가씨’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맞서 싸우는 퀴어 영화는 아니다. ‘우리 사랑을 인정해주세요’가 아니라 ‘당연한 건데 뭐가 왜?’ 하는 식으로, 굳이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멀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라고 밝혔다. 이들이 어째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들이 왜 동성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노멀하게’ 받아들이도록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직까지 로맨스의 디폴트는 이성애다. 여전히 동성애는 ‘당연한 사랑’에 포함되기 힘든 게 현실이고, 그렇기에 더 많은 서사가 필요하다. 여성 간의 사랑을 당연하게 그리는 서사든, 둘 사이의 수많은 고난을 사랑으로 승화하는 뻔한 서사든, 일단 양적인 확대가 중요하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는 그 언어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나.

 

초연부터 호흡을 맞춘 한송희, 김희연, 조용경, 김하리, 장세환 배우뿐 아니라 이동준, 김연우 배우가 합류해 작년과 또 다른 ‘줄리엣과 줄리엣’이 펼쳐진다. 기존보다 드라마적 완성도도 높이고, 더욱 무대를 업그레이드 해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예정이다.

 

고전에 퀴어라니, 신선하고 또 신선하다. 사백 년 전 셰익스피어는 상상이나 했을까. 21세기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이런 문제작을 탄생시킬 줄.

시놉시스

 

16세기 베로나, 몬테규 집안과 캐플렛 집안이 원수지간이 되기 전의 평화로운 시기. 각 집안에는 이름이 같은 딸이 있었다.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

 

딸바보인 아빠 캐플렛과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오빠 티볼트의 보호 아래 자란 줄리엣 캐플렛. 그녀는 자신을 꽃처럼 아끼는 아빠와 오빠의 애정이 감사하지만 왜인지 모를 갑갑함을 느끼고 있다. 아직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열여섯의 줄리엣 캐플렛, 패리스 백작에게 청혼을 받지만 섣불리 수락하지 못한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줄리엣 몬테규. 그녀는 로잘린이라는 여인을 사랑하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의에 빠져있다.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동생 로미오가 위로해주지만 그녀의 마음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패리스 백작과 줄리엣 캐플렛을 위해 성대하게 열린 파티. 그리고 로잘린을 만나려 그 파티에 몰래 참석한 줄리엣 몬테규. 그 곳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같은 이름의 두 여인, 줄리엣과 줄리엣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공연정보

  1. 공연명: 줄리엣과 줄리엣
  2. 일시: 2019. 6. 14 ~ 7. 7 (평일 20시, 토요일 15, 19시, 일요일 15시)
  3. 장소: 콘텐츠 그라운드
  4. 주요 출연진: 이동준, 김희연, 한송희, 조용경, 김하리, 장세환, 김연우
  5. 원작: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6. 재창작: 한송희
  7. 연출: 이기쁨
  8. 관람료: 정가 40,000원 / A열 30,000원
  9. 소요시간: 100분 (인터미션 없음)

정지은 에디터

2019.06.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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