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답'지 않은 상상력으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괴물을 만든 작가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초등학생 때, 학교 컴퓨터 시간엔 20분에서 1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곤 했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컴퓨터도 부모님 눈치를 보며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은 그야말로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우리는 종종 옹기종기 모여 구글에 잔인한 영상이나 사진을 찾아보곤 했다. 그런 괴담이나 고어물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문방구에는 항상 손바닥만 한 괴담 집을 팔았고, 무서운 게 딱 좋아! 같은 이름을 단 만화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이들은 연예인보다 빨간 마스크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무섭거나 징그러운 것들을 꽤 잘 보는 편이었다. 그땐 지금보다 겁이 없었다. 바퀴벌레가 나타나도 맨손으로 잡곤 했을 정도니까. 더욱 더 징그럽고 무서운 것들을 보는 게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담력 시험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괜히 지기 싫다는 오기도 있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고,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서로의 같은 점보다 차이점에 주목할 때가 되자 나는 그런 것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징그럽거나 무서운 것들을 잘 버텨내는 건 ‘여자답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공포물에 대한 경쟁 아닌 경쟁은 곧 남자애들만의 전유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징그럽거나 무서운 것을 잘 보는 게 ‘여자답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사회에는 아름답고 밝고 부드러운 것과 좀 더 가까우며 무섭거나, 징그럽거나, 추한 것은, 그런 것을 선호하는 것은 ‘여자답지’ 않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무섭거나 징그러운 것을 선호하는 여성에게는 곧장 ‘특이하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이른바 ‘썸’사이인 여성과 남성이 공포영화를 함께 보러 가서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여성이 남성의 품에 안기는 모습은 로맨틱 코미디의 낡은 표현이 되었을 정도로 당연한 모습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여자답지’ 않은 상상력으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괴물 중 하나를 탄생시킨 작가가 있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셀리다. 메리 셀리는 <정치적 정의에 관한 고찰>로 유명한 윌리엄 고드윈과 <여권의 옹호>로 유명한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 즉 유명한 혁명적 사상가 드윈 부부의 딸이다. 더불어 그의 남편은 시인이었다. 메리 셀 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할 당시, 영국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 정신에 고취된 낭만주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메리 셀리의 부모님과 남편 역시 혁명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전에 심취해 있었던 듯하다. 실제로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상주의자적 모습은 메리 셀리의 남편, 퍼시 셀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주변인들의 명성과 학문적 학고함에도 불구하고 메리 셀리는 자신만의 철학을 세운 듯하다. ‘프랑켄슈타인’에는 이상주의적인 빅터의사상에 대한 거리감뿐만 아니라 죽음과 생명에 대한 통찰, 자아의 문제 등이 심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유의 깊은 문학적 통찰에도 불구하고,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내면을 다룬 문학이라기보다는 유희를 위한 글로써 받아들여졌다. 여성 작가에 대한 뿌리 깊은 선입견 때문에 그녀의 작품이 학계에서나 문학계에서나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물론이고, 프랑켄슈타인이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남편과 아버지와 관련된 하나의 부속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 낮은 가치 평가에 대한 영향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닌, 그 괴물을 탄생시킨 과학자의 이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그 ‘괴물’을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서 고뇌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머리에 못이 달린 캐릭터로 인식하고 있다. 나 역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존재를 처음 안 것은 문학 고전으로서가 아니라 만화영화 ‘두치와 뿌꾸’에 나오는 캐릭터를 통해서다.

물론 이와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통해 원본 작품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커진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원본의 가치는 퇴색되고 캐릭터만 남아 알려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W 셀리의 고유한 철학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는 상상의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그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내가 암흑의 세계에 찬란한 빛을 비춰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새로운 종이 탄생하면 나를 창조자이자 생명의 원천으로 받들어 섬길 것이고, 훌륭하고 행복한 생명체들이 나를 소리 높여 찬양할 것이었다. 나만큼 후손으로부터 완벽한 감사를 요구할 수 있는 아버지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러한 생각을 좇으면서 만일 내가 죽은 육체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죽음과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는(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을 품게 되었다. - p.53
내가 태어난 날을 저주한다!”라고 나는 비참하게 외쳐야 했습니다. “저주받은 창조자! 왜 당신 스스로 혐오스러워서 외면할 끔찍한 괴물을 만들었는가. 애정이 깊은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따서 인간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나의 모습은 당신네 인간의 추잡한 쓰레기들만 모아놓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더욱더 불쾌해하지 않는가. - p.108

위는 프랑켄슈타인의 본문이다. 앞에 나와 있는 것은 ‘괴물’의 창조자 빅터프랑켄슈타인의 독백이며, 아래는 ‘괴물’의 시점에서 쓰인 글이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켄슈타인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생명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을 엿볼 수 있으며, 우리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다시금 고뇌해보도록 한다. 더불어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누가 괴물인가?’라는 질문도 던져볼 수 있다. 끔찍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가, 자신 마음대로 생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한 존재를 고통에 처하게 만든 사람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이를 메리 샐리의 환경에 적용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 당시 ‘계몽’을 외치며 타인을 새로 태어나게 하겠다고 외치면서도 당시 활발해진 인종적 교류로 접할 수 있었던 흑인이나 동양인들을 멸시하고 타자화 했던 영국 지식인층이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오만한 모습과 닮았다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메리 셀리는 고도의 문학적 비유를 통해 당시 유토피아적 이상에 심취해있던 남편이나 아버지의 학문과는 차이점을 둘 수 있는 자신만의 사상적인 토대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여성이기 때문에 성공에 실패한 경우, 메리 셀리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지워지거나 과소평가 받은 경우가 많다. 이제는 그런 암흑 속에서 여성들을, 여성 작가나 화가들의 작품들을 꺼내보아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우선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친근한 괴물의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권묘정 에디터

2019.09.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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