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상품의 경계에 낀 아이돌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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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이돌이기 전에 사람이에요."



지난 해 ‘SF9’의 멤버 ‘로운’이 영상통화로 진행되는 팬싸인회에서 팬들과 장난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눴던 대화가 악의적으로 캡쳐된 후 로운은 인터넷상에서 몇몇 네티즌들에 의해 비난을 받았다. 문제가 된 발언은 위의 인용한 문장과 더불어 “혹시나 애교면 살짝 거절해도 됩니까”라는 말이었다. 해당 논란은 당시 로운이 결코 팬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으며 서로 장난을 치던 와중에 벌어진 것이고, 실제로 캡쳐된 영상 후에 애교를 ‘했다’는 등의 맥락이 밝혀지며 일단락되었다.



비슷한 논란은 결코 드물지 않다. ‘아이돌로서 해야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것이다. 아이돌이 ‘아이돌로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자율적 취향의 영역이 된 아이돌, 소비의 주체가 된 팬


아이돌이 그 사전적 의미처럼 팬들의 우상이던 시대는 끝났다. 3대 팬덤이니 5대 팬덤이니 하던 명칭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내로라 하는 아이돌들이 쟁쟁히 겨루고 있고, ‘아이돌 수명 5년’이라는 말도 이제는 적용시킬 수 없을 정도로 1세대부터 4세대까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많은 그룹들이 활발히 활동중이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팬문화에 큰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충성스러운 한 그룹만의 팬이 아니라 ‘잡덕(여러 그룹을 좋아하는 팬)’이 가능해진 것이다. 동시에 두세 그룹을 좋아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이러한 변화에는 ‘올팬(그룹 내 모든 멤버를 좋아하는 팬)’이 아니라 ‘개인팬(그룹 내 특정 멤버를 좋아하는 팬)’ 역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맥락을 빼놓을 수 없다.



“평생 함께할 거”라는 약속은 철 지난 것이 되었다. 이제 팬들은 아이돌에게 쉽게 ‘충성’하지 않는다. 온 열정을 다해 좋아하지만, 그 결은 이전과 조금 다르다. 몬스타엑스를 좋아하면서도 얼마든지 다른 아이돌들을 눈여겨 보아도 된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구호도 힘을 잃고 있다. 내가 잠재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다른 아이돌들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에서, 더 좋아하는 그룹이 생긴다면 기존의 그룹을 언제까지고 붙잡고 있을 순 없다. 나의 취향의 자율성이 커진 만큼 휴덕과 탈덕도 용이해졌다.



아이돌이 더 이상 팬이 충성을 다해야 하는 우상적 존재가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바꾸어도 되는 ‘자율적 취향의 영역’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아이돌 ‘시장’이라는 개념이 팬들 사이에 퍼졌다. ‘아이돌 시장’이라는 개념이 외부적인 시선에서 주로 명명하던 것이었다면, 지금의 아이돌 팬들은 스스로가 아이돌 시장 내의 소비자임을 적극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내가 나의 마땅한 권리’로 선택하고, 그에 필요한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아이돌이 생산해내는 서비스를 향유하는 것이다. 권리를 가진 소비의 주체로서 선 것이다.


이전에 각종 미디어에 의해 이전 세대 팬들에게 씌워진 ‘광적’ 팬이라는 폭력적인 프레임을 지금의 팬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반박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다. 어떤 가수가 나와 맞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질리게 된다면, 얼마든지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좋아하지 않아도 같은 집단 내에서 (이전 만큼의) 비난을 당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내가 향유하는 아이돌의 서비스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나 마땅한 권리로 개선 사항을 요구한다. 팬들의 적극적 참여와 함께 지난 아이돌 문화는 많은 부분 발전해왔다. ‘내 가수’의 노동 환경, 노동 조건에 그 누구보다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팬이며, 아이돌 문화 내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각성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하는 것 역시 팬이다.



그러나 아이돌 팬들을 주체적인 소비자이자 적극적인 문화 참여자로 만들어낸, ‘내가 지불한 만큼의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마땅한 요구는 종종 길을 잃는다. 바로 이 서비스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이돌조차 그리고 그 팬들조차 암묵적으로 합의된 바가 없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너무도 빠르게 확장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지불하는 서비스의 대상은 무엇이며,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무엇이 보고 싶어서 그들에게 돈과 시간을 쏟는가?



앞서 언급한 로운과 같은 논란은, 일부 팬들이 생각하는 아이돌로서 해야하는 일, 즉 내가 바라고 지불하는 아이돌의 서비스에 ‘팬싸인회에서 팬이 요구하는 애교에 응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또 다른 팬들에게는 그러한 애교의 수행이 아이돌의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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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nb 뉴스'



지금의 팬들은 아이돌을 무대나 매스미디어에 송출되는 모습들 만으로 만나지 않는다. 현재 아이돌 시장에서 거의 피 중요한 것은 팬들에 대한 가수의 ‘진정성’이다. 케이팝 속의 진정성이란 ‘진심 어린’, 혹은 ‘성실하고 진실됨’을 뜻한다. 팬들에게 진심을 다해 열심히, 성실히 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이규탁, 2020 : 50쪽). ‘얼마나 진정성 있게 팬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가’. 범법 행위를 제외하고 이런저런 실력 논란보다 아이돌에게 가장 치명적인 논란은 ‘팬 기만’이다. 자신을 향한 팬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팬을 하대하는 것은 팬들을 실망시키는 가장 주된 요인 중 하나이다.



현재 아이돌 시장은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그야말로 ‘소통 전쟁’이다. 이때 공식적인 소통은 크게 다음과 같은 경로로 이뤄진다. 첫째, 실시간 라이브 방송. 둘째, 유니버스, 버블, 팬카페, 트위터 등의 플랫폼을 통한 SNS 소통. 셋째, 팬싸인회 및 공식 스케줄에서 팬들을 마주하는 자리(음악방송 방청 등). 팬과 양방향에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이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 소통이라는, 현재의 아이돌들에게 특징적이며 필수적인 덕목은 그 개념이 불명확하다. 그리고 팬들에게조차 명확하지 않다. 팬들이 궁금해하는 ‘공적 스케줄’에 관한 질문을 주고 받는 것일까,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일까.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면 그 이야기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아이돌에게 팬으로서 정당한 요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요청은 어디까지일까. 어떠어떠한 무대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부터 즉각적인 애교 요청까지 그 범위는 너무나도 넓다.



바로 이 범위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이들이 수행하기를 요구받는 역할은 진정성 담론과 맞물려 너무도 무제한적이고 무비판적으로으로 확장되고 있다.



실시간 소통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이들에 대해 일부 팬들의 강요적인 요구, 심한 경우 협박성을 띤 요구들이 아이돌에 대한 어떠한 보호도 없이 즉각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예컨대, “타투하면 탈덕할 거야” 등의 댓글이 아이돌의 브이라이브에 실시간으로 뜨며, 아이돌은 이것을 읽는다. 아이돌이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 때, 혹은 했을 때에 탈덕은 팬의 몫이다. 그러나 주체적인 소비자가 된 팬의 결정이 아이돌에게 직접 가닿았을 때 그것은 협박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돌들은 팬의 요구를 따르지 않기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돌에게 부과되는 역할이 또 하나 암묵적으로 추가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먹여살려야지’, 그건 진정한 친구가 아니야.”




“아니야, 그건. 나는 팬분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지마. 나를 어떠한 친구라고 봐야지, 길을 같이 가는 수평관계라고 봐야지. ‘내가 먹여살려야지’, 그건 진정한 친구가 아니야.”


- 2020년 10월 16일 영상통화 팬싸인회 도중 ‘SF9 로운’의 말



그것에 앞서 명확히 해야할 것이 있다. 팬은 아이돌을 ‘벌어 먹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의 상품으로서 선택하고 지불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아이돌이라는 상품을 것이 아니라, 이 아이돌이 생산해낸 서비스를 사는 것이다.



지난 해 ‘더보이즈’의 ‘선우’는 팬들 앞에서 식사를 하며 일상적인 소통을 하는 취지의 브이앱을 진행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 시킨 배달 음식을 열며 식사를 시작했다. 이 때 한 팬이 ‘‘누나 잘 먹겠습니다(라고) 해야지” 라는 댓글을 달자, 그는 “제가 산 건데 왜 누나 잘 먹겠습니다(라고) 해야 되죠?”라는 발언을 했고, 이는 논란이 되었다. 해당 발언의 비판에는 ‘선우가 번 돈은 팬 덕분’이라는 논리가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근래 그 어떤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자와 나의 소비를 이만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경우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쉽게 말해, 내가 어떤 작가의 전시회가 마음에 들어 여러 번 돈을 내서 찾아 갔다고 그 화가가 나의 덕분에 돈을 번다고 이야기하는가? 내가 어떤 작가의 책이 좋아 여러 판본으로 수십 만원 어치를 샀다 해서 그 작가가 나 덕분에 ‘먹고 산다’고 하는가? 만약 그 작가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인스타에 올렸을 때, 그것을 두고 내 덕분에 먹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고, 그래서는 안된다. 근본적으로 나의 돈은 그 아이돌의 서비스에 지불된 것이다. 내가 그의 팬싸인회에 가기 위해 100만원어치 앨범을 샀다면, 그것은 아이돌이 발매한 앨범에 대해 지불한 것이지 아이돌을 산 것이 아니다. 둘째로 이 창작물과 서비스는 나와 아이돌 사이에 일대일로 주고받은 것이 아니다. 즉, 내가 그의 팬싸인회에 가기 위해 100만원을 썼다면 그것은 내가 그의 손에 100만원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팬싸인회의 개최와 앨범의 제작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해당 이벤트를 기획에 참여했던 모든 과정에 대한 것이다. 기획사, 스타일링 팀, 현장 스탭 등 아이돌의 뒤에 숨겨진 ‘팀’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정녕 아이돌의 서비스를 온전한 경제적 재화라고 본다면, 그에 맞는 합당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결국 나의 모든 요구는 아이돌이라는 인간을 향해 직접적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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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이돌은 스스로 인권이 위협받는다 느끼면서도 ‘그것이 아이돌의 일’이라는 기적의 논리 앞에 인권을 부르짖을 수 상황이다. 이것은 ’아이돌’이라는 현상이 다른 어떤 문화들보다 유일하며,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융성하고 있기에 ‘아이돌의 일’에 대한 고찰과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돌 문화는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며 다채로운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스로 자신의 정당한 위치를 찾아 나가는 팬이 있다. 아이돌들, 그리고 오랜 시간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적 소비자로서 일어서 온 아이돌 팬들은 반드시 이 논의를 이끌어나갈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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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규탁, <갈등하는 케이, 팝>, 스리체어스, 2020.



2021.04.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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