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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와 울라이(F. Ulay)

사랑과 이별을
예술로 승화시킨 연인

by아트앤팁닷컴

사랑과 이별을 예술로 승화시킨 연인

우연히 친구가 보내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의자에 앉아있고 그 맞은편 의자에는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앉은채 그녀와 눈을 마주한다. 그러던 중 청바지와 자켓을 멋스럽게 입은 한 신사가 그녀 앞에 앉는다. 약간은 상기된 표정의 그 남자는 차림새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한 뒤에 그녀와 눈을 마주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원래 하던대로 그녀의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한다.

 

그 신사와 눈을 마주하게된 그녀.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공허하고도 겸허한 눈빛으로 그 행위를 계속 해오던 그녀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린다. 그녀의 앞에 앚아 있는 남자는 바로, 그녀의 옛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을 예술로 승화시킨 연인

영상 속 여자는 행위예술의 대모라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그리고 영상 속 남자는 그녀의 옛 연인이자 행위예술의 대부라 불리는 와 울라이(F. Ulay, 본명은 우베 라이지펜)다.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그들의 사랑은 예술로 시작해 예술로 끝이난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만난 이 둘은 '다른 사람들(The Others)'이라는 그룹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만리장성 양 끝에서 각자 걸어와 중간지점에서 포옹을 한 후 헤어지는 퍼포먼스를 마지막으로 이별을 하였다. 그리고 30여년 후 그녀의 MoMA 회고전 <The Artist is Present>라는 작품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것이다.

사랑과 이별을 예술로 승화시킨 연인

'Rest Energy', 1980

앞을 모르는 극한의 고통까지 자신을 몰아 넣는 자학적 행위예술을 주로 선보이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답게 울라이와도 살 떨리는 위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Rest Energy>라는 작품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가 각자 활과 화살을 쥐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한채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퍼포먼스다. 울라이가 쥔 화살의 촉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심장을 향해있어 둘의 균형이 무너질 경우 화살은 그녀의 가슴에 박히게 된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이런 퍼포먼스를 그들은 수년간 함께 해왔다.

사랑과 이별을 예술로 승화시킨 연인

'Two Headed Body', 1975

사랑과 이별을 예술로 승화시킨 연인

'Imponderabilia', 1977

이 작품은 볼로냐의 한 페스티벌에서 이뤄진 퍼포먼스다. 꼭 이 곳을 통과해야지만 다음 전시실로 넘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에 나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사람들은 모두들 이 곳을 마주하게 되면 일단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통로를 지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다.

 

남자 혹은 여자 어느 쪽으로 몸을 돌리느냐는 관객의 선택이다. 물론 이 퍼포먼스를 마주한 관객들은 불쾌함이 먼저 들겠지만, 그들의 놀라워하는 표정과 당혹스러워하는 몸동작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객인 우리들로서는 재밌는 작품이다. 6시간동안 진행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은 경찰들의 출동으로 3시간만에 마무리되었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발상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퍼포먼스가 되었다.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면서 우리는 '나체'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게된다. 그 부끄러움의 기원과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우리는 나체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위의 퍼포먼스는 인간의 이런 본연한 특성,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 특성을 주목한 작품이다. 아무렇지 않게 나체의 몸으로 서있는 저들보다 온 몸을 옷으로 둘러싼채 지나가고 있는 우리가 왜 더 당혹스러워하고 놀라워 하는 걸까. 그 이유야 당연하겠지만 그 당연한 이유와 결과 덕분에 우리는 이 작품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과 이별을 예술로 승화시킨 연인

'The Lovers', 1988

마지막 영상은 앞에서 언급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MoMA 회고전에서 <The Artist is Present>라는 퍼포먼스 중 울라이와 만나는 장면이다. 퍼포먼스의 금기를 깨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몸을 움직였지만 주위에 있던 관람객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은 울라이의 그녀를 향한 따뜻한 눈빛을 보았고 그녀의 진심어린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진심이 담기고 스토리가 담긴 예술. 바로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예술이 아닐까. 이 퍼포먼스 영상이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 각박한 사회 속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줄 그 무언가를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 속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마음을 가라앉혀 본다.


Written by LeeJ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