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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

정말 기후를 조작해 무기로 쓸 수 있을까?

by아시아경제

정말 기후를 조작해 무기로 쓸 수 있

(사진=영화 '지오스톰' 스틸컷)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천재 군사 제갈량의 이미지를 가장 많이 투사시킨 장면은 바로 적벽대전에서 '동남풍(東南風)'을 불러오는 대목이다. 연의에서 제갈량이 남병산(南屛山)에 올라가 칠성단을 만들고 7일 밤낮으로 기도하며 동남풍을 빌자, 정말로 적벽의 풍향이 바뀌면서 주유의 화공책이 멋지게 성공한다.

 

이 적벽대전 이야기처럼 신선과 같은 뛰어난 초자연능력을 지닌 인물이 기후를 조작해 적은 군대로 대군을 이기는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영웅담의 대표적인 클리셰(Cliche)다. 이는 과거부터 현대까지 기상의 급작스런 변화가 개별 전투 및 전쟁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일단 전투 중 '비'가 한번 오느냐 마느냐에 따라서도 승패가 상당히 많이 좌우됐었다. 비 때문에 예상됐던 승패가 완전히 뒤집어진 전투로는 중세시대 프랑스와 영국간 '백년전쟁' 후반부에서 중대한 분기점이 되는 '아쟁쿠르(Agincourt) 전투'가 있다. 이 전투는 당시 완전 무장한 프랑스 기사단 3만여명이 퇴각하던 영국군 6000여명을 추격해 따라 잡아 벌어진 전투로 당연히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압살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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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쿠르 전투도. 1415년 벌어진 이 전투는 퇴각하는 영국군을 쫓은 프랑스 대군이 당연히 압승할 것이라 예상됐지만, 전투 중간 내린 소나기가 승패를 완전히 뒤바꾼 전투로 유명하다.(사진=위키피디아)

그러나 전투 과정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그치고 해가 뜨면서 프랑스군은 매우 불리한 여건에 빠지게 됐다. 일단 땅은 진창이 됐고, 떠오른 한낮의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싸워야하는 상황이 되자 혼란에 빠진 기사단은 무작정 돌진하기 시작했고, 영국 궁수들은 차분히 기사들을 향해 화살비를 날리면서 프랑스군은 압도적 전력을 가지고도 참패했다.

 

이 아쟁쿠르 전투의 경과와 비슷한 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충주 '탄금대 전투'다. 탄금대 전투에서도 초반 잘 싸우던 신립장군의 기병대는 갑자기 내린 비로 땅이 진창으로 바뀌어 기병대가 기동력을 잃으면서 조선군의 참패로 끝난다. 초반에는 신립의 기병대가 크게 활약하면서 숫적인 우세에도 고니시의 1군 역시 상당한 사상자를 냈다.

 

이외에도 영국군이 인도에서 벌였던 플라시전투나 나폴레옹의 천하가 완전히 끝장난 워털루전투 등 세계사에 길이 남는 전투들의 승패에도 비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고대부터 비를 부르거나 기후를 변화시켜 군용무기로 이용하고자 하는 꿈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영화 '지오스톰' 처럼 기상조절프로그램이 이상변화를 일으켜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SF 영화까지 나왔다. 미국에서 은밀히 기후조절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나오는 등 실제적인 기후무기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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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로 요오드 결정체 등 응결핵을 뿌려 기상을 변화시키는 인공강우 실행 모습(사진=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

이런 구체적 음모론이 가능해진 것은 1946년, 미국에서 인공강우 기술이 개발된 이후였다. 인공강우 실험의 첫번째 성공은 1946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연구소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구름속으로 드라이아이스를 살포한 실험이었다. 이듬해 드라이아이스보다 요오드화은(Agl)이 인공강우용 구름씨 물질로 더욱 적당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공강우 항공실험은 박차를 가하게됐다. 그래서 1950년, 미국에서 기상조절학회(Weather Modification Association)가 창설됐고 이후 인공강우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미국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세계 열강들은 앞다퉈 인공강우 기술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 인공강우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고,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들도 앞다퉈 인공강우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때는 맑은 하늘을 위해 인공강우용 로켓을 1000개 넘게 발사하기도 했다. 아예 비구름이 베이징 상공에 생겨나지 못하도록 미리 막아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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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오스톰'에 등장하는 기후조작용 위성(사진=영화 '지오스톰' 장면 캡쳐)

다만 잦은 인공강우로 타 지역의 비구름 형성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각 지방정부끼리 분쟁 요소가 되기도 한다. 향후 인공강우 기술이 발전하면, 근거리 적국의 가뭄을 유도하기 위해 잦은 인공강우를 일으켜 전략무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인위적으로 태풍을 일으키거나, 지진을 일으키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고 상용화 될지 모른다는 음모론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재해를 일으킬만한 기술은 특별히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단순히 인공강우만 해도 이것이 일으킨 국지적 기후 변동과 이것이 누적돼 생겨날 세계 기후변동이 미칠 악영향이 어떻게 자국으로 고스란히 돌아올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바람과 벼락을 내리쳐 적군을 물리치는 '도사'나 '마법사'의 모습은 아직까진 무협지나 판타지 속에서 찾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