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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다

by아시아경제

연천 주상절리 여정-세월이 빚은 '연천의 속살' 주상절리와 1500년 풍파 견딘 고구려 성벽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연천 임진강 일대 화산지형 중 백미로 꼽히는 동이리 주상절리는 강줄기를 따라 높이 40∼50m의 직벽이 약 1.5㎞나 뻗어 있어 그 위용이 대단하다. 연두빛을 토해내는 버드나무와 주상절리가 그려내는 임진강 봄풍경이 싱그럽다.(사진 위 큰사진) 연천 주상절리 중 가장 아름다운 재인폭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아우라지 베개용암, 내륙에선 보기 드물게 수평으로 형성된 은대리수평절리(밑 사진 왼쪽부터)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전설 한 토막으로 여정을 시작합니다. 경기도 연천에 줄을 잘 타는 재인(才人)이 있었습니다. 사내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주색을 밝히는 고을 원님이 명했습니다. 폭포 위 벼랑에서 줄을 타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의 계략입니다. 엄명에 사내는 벼랑에서 줄을 타는 동안 누군가가 줄을 끊어버렸고 폭포수 아래로 떨어져 죽었습니다. 낙담한 아내는 수청을 들라는 원님 코를 물어뜯어 버리고 폭포 위에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코를 물었기에 폭포가 있는 마을은 코문리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고문리로 변했습니다. 연천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형이자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재인폭포 이야기입니다. 칼로 자른 듯 쭉쭉 뻗은 용암기둥 위로 봄기운이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의 주름치마를 닮은 주상절리를 따라 폭포수가 한스럽게도 우렁찬 소리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재인폭포가 있는 한탄강은 화산이 만든 협곡입니다. 연천은 한반도 '지질교과서'로 불립니다. 억겁(億劫)의 자연이 빚어낸 신비한 조각품인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뿐인가요. 누대에 걸친 긴장의 땅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한국전쟁도 겪었습니다. 지금도 북한군 초소가 지척이고 민간인 통제선의 팽팽한 긴장감은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상흔과 긴장 속에서도 자연이 빚은 절경은 오롯이 살아있습니다.

 

연천 여정은 한탄강과 임진강을 끼고 형성된 주상절리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50만년쯤 전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북녘 땅인 평강군 추가령 계곡 물길을 따라 넘쳐흘렀다.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재인폭포

용암으로 막힌 물은 화산암의 틈새를 가르며 새로운 길을 찾았다. 물살의 힘이 무른 현무암을 깎아 내면서 한탄강과 임진강은 주상절리의 웅장한 협곡을 갖게 됐다.

 

한탄강 최고의 주상절리는 재인폭포다. 여느 폭포와 달리 도로 옆에 푹 꺼져있다. 그래서 폭포를 보려면 내려가야 한다. 연천군에서 설치한 유리바닥 전망대가 아찔하다. 그 옆으로 철로 만든 계단이 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폭포와 폭포를 둘러싼 반원형의 주상절리가 웅장하게 다가온다.

 

하얀 물줄기와 비취색 소(沼)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가 거대한 동굴처럼 파인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세월의 무늬가 새겨진 절벽 위로 줄을 타던 전설 속 재인이 얼마나 떨렸을지 아찔하다.

 

재인폭포는 원래 평지였던 곳이 갑자기 움푹 내려앉으며 폭포를 이루게 됐다. 폭포는 지금도 보이지 않게 변화하고 있다. 물살이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를 조금씩 침식시켜 폭포를 조금씩 뒤로 물러앉게 한다. 현재 위치는 강변에서 350m 정도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재인폭포를 떠난 한탄강은 미산면 동이리에서 임진강을 만난다. 연천 임진강 일대 화산지형 중 백미로 꼽히는 것이 동이리 주상절리가 있다.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다. 강가에 서면 입이 쩍 벌어진다. 강줄기를 따라 높이 40~50m의 직벽이 약 1.5㎞나 뻗어 있어 그 위용이 대단하다. 절벽 앞면은 칼로 두부를 잘라낸 듯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연둣빛을 토해내는 버드나무와 주상절리가 임진강에 봄을 그려낸다. 강돌이 드넓게 펼쳐진 임진강변은 주상절리를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아우라지 베개용암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주상절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연천읍과 전곡읍을 잇는 차탄천 은대리 용바위 주변 주상절리도 장관이다. 왕림교에서 내려다보면 수십m 높이의 장대한 협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직각이 아닌 수평으로 된 은대리 수평절리는 볼수록 이채롭다. 수평절리를 뚫고 생명을 담은 봄꽃이 검붉은 수평절리와 묘한 대조를 이룬 풍경은 아름답다.

 

차탄천에는 주상절리 협곡을 따라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상류인 차탄교에서 중류에 있는 용소, 하류 용바위까지 이어지는 5㎞ 남짓한 도보길이다. 용암이 빚은 주상절리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오랜 세월을 견뎌낸 이 땅의 기묘한 풍광에 가슴이 뛴다.

 

전곡읍 신답리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한탄강 유역 중에서 둥근 베개모양 구조가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다. 대개 바다에서 형성되기에 내륙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질이다. 천연기념물(제542호)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연천은 긴장의 땅이기도 하다. 가장 앞선 흔적은 1500년전 임진강을 끼고 벌어진 전투다. 임진강변에 남아 있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瓠蘆古壘)성, 당포성, 은대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6, 7세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찼던 최전방 전투요새였던 이 성들은 지금 조용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호로고루성에서 내려다본 임진강과 주상절리

고구려 세 개의 성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호로고루성이다. 호로강에 있는 높은 성루라는 뜻. 연천에 흐르는 임진강은 삼국시대에는 호로하(瓠蘆河)라 불렸다.

 

호로고루성은 임진강 주상절리 위에 성을 쌓았다. 두 변은 절벽이라 성벽을 쌓지 않았고, 탁 트인 밑변 쪽에만 현무암으로 성벽을 만들었다. 강을 건너는 백제ㆍ신라군을 감시하기에는 딱 좋은 위치다. 하지만 세월은 가고 나라도 사라졌다.

 

인근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왕릉도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시간의 고리를 잇는 이가 바로 경순왕이다. 경주 땅을 벗어난 신라의 왕릉은 이곳이 유일하다.

 

왕건에게 나라를 물려준 경순왕은 978년 개경에서 죽자 운구 행렬이 경주로 향했다. 반란을 우려한 고려 정부는 "왕릉은 개경 10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행렬을 세웠다. 그곳이 바로 임진강 고랑포 포구다. 왕릉은 완전히 잊혔다가 769년이 지난 1747년 다시 발견됐다.

 

왕릉 뒤편 50m의 거리에 남방한계선 철조망이 세워져 있다. 이렇게 억겁의 세월과 삼국시대, 조선조까지 그 숨 막히는 역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땅도 드물다.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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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가다 문산나들목으로 나가 37번 국도를 따라가면 전곡읍이다. 읍에서 3번 국도로 갈아타고 경원선 철로와 나란히 달리면 연천읍과 대광리를 거쳐 재인폭포로 이어진다.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면 의정부 나들목으로 나가 동두천을 지나 3번 국도를 따라가면 전곡읍과 연천읍에 닿는다.

 

축제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세계 최대 구석기축제인 제25회 연천구석기축제가 5월3일부터 7일까지 '너도 나도 전국리안'이란 테마로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열린다. 한반도 구석기문화를 포함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구석기문화를 두루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학습형 축제로 이름났다. 축제의 백미는 대형 화덕에서 구워 먹는 구석기 바비큐다. 매운 연기를 참아가며 참나무 숯불에 구워 먹는 바비큐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영국, 독일, 스페인, 케냐 등 10개국 25명의 해외 전문가가 참여해 다양한 세계의 선사체험도 선보인다. 구석기 활쏘기, 구석기 체험존, 동굴벽화 그리기 등 구석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이벤트가 펼쳐진다. 축제추진위원회 (031-839-2562).

 

먹거리

한탄강 관광지에 있는 한탄강 강변매운탕은 장어구이와 매운탕을 맛나게 내놓는다. 불탄소가든도 참게와 메기, 빠가사리 등을 넣어 끓여낸 매운탕이 유명하다. 전곡에 있는 만향비빔국수도 많이 찾는 집이다.

 

볼거리

억겁이 빚은 조각, 세월의 江을 건너

연천의 유적지라면 숭의전이다.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 왕조인 고려의 왕들을 모셨던 사당이다. 고려 왕 4명과 포은 정몽주를 비롯해 고려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안보관광지도 많다. 북한 초소와 1.6km떨어진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 숭전OP, 1.21 무장공비 침투로 등이다. 이외에도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석기의 양면을 가공한 아슐리안 주먹도기가 발견된 전곡리 선사유적지, 한탄강관광지(사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연천=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