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여행...충북 괴산 구곡(九曲) 이야기

[여행]by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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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갈론구곡. 여느 구곡에 비해 덜 알려진 덕분에 사위가 호젓하다./ 괴산군 제공

충북 괴산 청천면에 화양구곡(華陽九曲)이 있다. 화양천이 흐르는, 물이 맑고 풍경이 수려한 계곡이다. 반석 위로 계류가 시원하게 흐르고 주변으로 산책로도 잘 나있다. 숲도 좋다. 그래서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는 이들이 꽤 있다. 그런데 왜 ‘계곡’이 아니고 ‘구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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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 제4곡 금사담. 바위에 보이는 건물이 우암 송시열이 말년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는 암서재다./ 괴산군 제공

구곡을 굳이 풀이하면 ‘아홉 개의 굽이치는 풍광’이다. 계곡에 붙었으니 계류가 바위나 산을 끼고 돌아 나가는 모양을 상상해도 좋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희(주자·1130~1200)는 현재의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여기 머물며 성리학을 완성한다. 이때 이런 경치 아홉 곳을 찾아 ‘무이구곡’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를 칭송하는 ‘무이구곡가’도 지었다. 구곡은 여기서 비롯됐다.


주목할 것은 구(九)보다 곡(曲)이다. 주희는 왜 ‘굽이치는 것’에 이토록 마음을 썼을까. 무이산은 중국의 명산이다. 30여 개의 봉우리가 솟았고 기암절벽과 계곡, 여울과 샘이 곳곳에 부려져 있다. 산 자체가 자연이다. 스케일이 방대하다. 따져보자. 거대한 산은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미동이 없다. 크게 굽이치며 흐르는 물은 변화무상하다. 물처럼 생기있게 움직이지만 산같이 변함없는 것이 그에게는 세상의 이치였고 진리였다. 산과 물의 본성이 극도로 드러나는 곳이 곡이다. 자연에 동화하고 궁극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탁월한 도구이자 최적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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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 제6곡 능운대. 구름을 찌를 듯한 큰 바위다./ 괴산군 제공

조선으로 전해진 구곡은 성리학에 정진하던 선비들에게 학문적 이상향으로 자리매김했다. 팔도에 속속 구곡이 생겼다. 조선 전기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의 제자들이 많았던 경북 안동을 비롯해 소백산 일대와 충청도 속리산 주변에도 그랬다. 화양구곡도 이렇게 탄생했다. 조선후기 성리학의 대가이자 노론의 거목 우암 송시열(1607~1689)은 권력에서 밀려난 후 이 계곡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은 스승을 기려 무이구곡처럼 화양계곡에서 구곡을 찾았다. 제1곡 경천벽을 필두로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를 포함해 제9곡 파곶까지 기암과 맑은 소(沼)를 엄선하고 각각에 예술적, 학문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화양구곡은 잘 보존됐다. 구곡의 형태가 지금도 또렷하니 이들의 풍류를 지금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름난 몇 곳을 짚어 보면 제4곡인 금사담은 우암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던 암서재가 있어 유명하다. 맑은 웅덩이 아래 금빛 모래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고 붙은 이름인데 주변 풍경이 수려해 흐드러진 풍류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암서재에서는 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제9곡인 파천은 구곡 중 백미로 꼽힌다. 우암 사후 발간된 지리지 ‘화양지’는 화양계곡 최고의 절경이 파천이라고 소개한다. 물줄기가 너른 반석을 훑으며 흐르고 계곡도 넓다. 시원한 풍광에 눈이 즐겁고 흐르는 물 소리에 귀가 즐겁다. 어쨌든 화양구곡은 산책길도 잘 나 있다. 약 3.1km에 걸쳐 너른 반석과 기암,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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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구곡. 퇴계가 경치에 반해 9개월을 돌아다니며 구곡을 정하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괴산군 제공

괴산에는 화양구곡말고도 구곡이 참 많다. 그만큼 풍경 좋고 적요한 골짜기가 많다는 방증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은 자신의 지리서 ‘택리지’에서 화양구곡과 함께 선유구곡을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라고 소개한다. 청천면의 선유구곡은 화양구곡과 약 7km 떨어져 있다. 퇴계의 마음을 훔친 비경을 간직한 곳으로 알려졌다. 그는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경치에 반해 9개월을 돌아다닌 끝에 구곡을 정하고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단다.


글씨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애를 태웠던 풍경은 여전히 오롯하다. 구곡은 제1곡인 선유동문을 시작으로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을 지나 제9곡인 은선암까지 약 2km에 걸쳐 이어진다. 화양구곡이 남성적이라면 선유구곡은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특히 제5곡 와룡폭(포)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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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곡구곡 제2곡 소금강.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 아름답다고 붙은 이름이다./ 괴산군 제공

칠성면 쌍곡마을에서 제수리재에 이르는 약 10.5㎞의 구간에는 쌍곡구곡도 있다. 제1곡 호롱소, 소금강, 병암(떡바위), 문수암,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장암(마당바위)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보배산, 칠보산, 군자산, 비학산이 골짜기를 에둘렀다. 기암, 노송,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다. 퇴계는 물론이고 조선 중기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1536~1593)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아름다운 산수를 예찬했다고 전한다. 구곡 가운데 제2곡 소금강이 백미로 꼽힌다. 이름처럼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 압권이다. 또 제1곡 호롱소는 계곡물이 90도 각도로 떨어지며 소를 이루는 것이 볼만하다. 근처 절벽의 큰 바위가 호롱불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제7곡인 쌍곡폭포는 수줍은 촌색시를 닮은 단아한 자태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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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론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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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강국민여가캠핑장/ 괴산군 제공

칠성면의 갈론구곡은 조금 덜 알려진 곳이다. 그만큼 사위가 호젓하다. 한국관광공사 등이 최근 언택트(비대면)관광지 100선을 꼽아 발표했는데 괴산에서 유일하게 갈론구곡이 포함됐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는 덜 알려졌지만 향후 멋진 관광지가 될 가능성을 고려해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갈론마을을 지나 2~3㎞ 계곡을 따라 거슬러 가면 눈이 놀랄 비경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를 비롯해 장암석실, 갈천정, 옥류벽, 금병, 구암, 고송유수재, 칠학동천, 선국암 등이 구곡을 형성한다. 특히 제9곡인 선국암은 신선이 바둑을 두던 자리란다. 바둑판 바위 네 귀퉁이에 ‘사노동경(四老同庚)’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동갑내기인 4명의 노인이 바둑을 즐겼다는 의미다.


이제 결론. 구곡은 풍경이 좋고 물이 맑으니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피하기 좋다. 그런데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자연을 보며 삶을 반추하고 몸과 마음가짐을 수양하려했던 선인들의 미덕을 엿볼 수 있다. 달뜨는 마음을 절제하며 고상하게 즐긴 풍류도 상상할 수 있다. 오랜만의 계곡 물놀이에 흥청거리기 보다 이런 의미 곱씹으며 마음을 살핀다면 특별한 추억이 생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추가하면 괴산읍 인근 괴강 변의 괴강국민여가캠핑장은 구곡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손색이 없다.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오토캠핑사이트, 캐러밴사이트, 대형텐트사이트가 갖춰져 있다. 화양구곡, 선유구곡, 쌍곡구곡, 갈론구곡과 멀지 않고 강변을 따라 자전거길도 조성돼 있다. 괴산의 걷기 명소인 ‘산막이옛길’과 ‘충청도 양반길’도 가깝다.


김성환 기자 kshwan@asiatoday.co.kr

2020.07.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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