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은 잠깐 멈춤, 눈 호강 사진 보며 '심리방역'

[여행]by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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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100m 고원에 조성된 ‘안반데기’는 국내 최대 고랭지 배추밭이다. 추석 전까지 배추 수확이 한창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러지는데 바이러스는 참 모질고 끈덕지다. 방방곡곡 다니기가 만만치 않으니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자. 잠깐 여행을 멈추는 대신 숨통이 트일 사진이라도 들여다보며 ‘심리 방역’에 나서본다. 장쾌한 풍광 사진 몇 장 추렸다. 직접 구경하는 일은 훗날 해도 된다. 산천이 의구해서 풍경이 불변하니 급할 이유가 없다. 언제든 렌즈를 들이대면 그럭저럭 ‘작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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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데기’. 올해 비가 많이 왔지만 배추농사는 큰 문제가 없었단다.

강원 강릉 안반데기

고산준봉이 어깨를 견주고 망망한 동해까지 인접한 강원도에는 눈이 호강할 풍경이 수두룩하다. 조금 특별한 것도 있다. 강릉 왕산면 대기리의 해발 1100m 고원에 조성된 안반데기(안반덕)가 그렇다. 국내 최대 60만평 규모의 고랭지 배추밭이다. ‘하늘과 맞닿은 배추밭’으로도 통한다. ‘안반’은 떡메로 쌀을 치는 넓은 나무판, ‘데기’는 고원의 판판한 땅을 일컫는 ‘덕(더기)’의 강릉 사투리다.


배추밭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준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배추밭이 주는 놀라움이 크다. 사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출사지로 입소문이 난 것이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조성된 걷기 좋은 길(올림픽 아리바우길)도 여기를 지난다. 멋진 풍경을 누구에게라도 알리고 싶은 소박한 욕심의 발로다. 일대에는 바람개비처럼 생긴 거대한 풍력발전기까지 돌아간다. 초록의 ‘배추 융단’과 어우러져 이색적이니 ‘인증샷’ 배경으로 손색이 없다.


배추밭은 언제, 어떻게 조성됐을까. 1960년대 정부가 화전민들을 모아 개간했다. 1925년에 국유지가 됐다가 1995년에 다시 개인 소유가 됐다. 현재는 약 30가구 남짓한 인원이 배추 농사를 짓는다. 배추 수확시기는 보통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다. 올해 비가 많이 온 탓에 걱정이 컸는데 마을주민은 “여기는 문제 없다. 배수가 잘돼서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했다. 또 “배추 수확은 약 30% 진행된 상태다. 추석 전에는 수확이 다 끝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추 수확 후에는 호밀을 심기도 한다. 호밀이 자라면 다시 초록융단이 깔리니 이때 가도 풍경은 운치가 있다. 안반데기까지 자동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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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산 전망대에서 본 예당호. 봉수산은 국내 최대 저수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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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호는 민물낚시의 성지다. 곳곳의 수상좌대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

충남 예산 예당호

충남 예산 대흥면 뒤에 우뚝 솟은 봉수산(484m)에 오르면 예당호(예당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예당호는 국내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둘레가 약 40km, 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3.7배나 된다. 바다 같은 저수지다.


보통은 예당호를 이렇게 즐긴다. 차를 타고 지나며 물속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나무들이 연출하는 고상한 풍경을 음미한다. 해돋이와 해넘이가 곱고 계절에 따라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볼만하다. 응봉면 예당관광지 부근의 ‘예당호 출렁다리’도 건넌다. 길이 402m의 국내 최장 인도교인데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을 낼 수 있다. 가장자리에 조성된 산책로도 좋다. 미식가들은 어죽과 붕어찜을 찾는다. 물이 맑은 예당호에는 붕어·잉어·가물치 등 다양한 민물고기가 서식한다. 이를 잡아 요리해 내는 음식점이 일대에 많다. 어죽은 붕어를 푹 고은 육수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갖은 양념으로 간을 하고 민물새우, 면, 쌀을 넣어 푹 끓여낸다. 비리지 않고 칼칼하며 고소하다. 붕어찜 역시 특유의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물론 강태공에게는 이곳이 성지(聖地)와 다름없다.


그럼 예당호 전체를 구경할 수 없을까. 봉수산이 이런 곳이다. 광시면 마사리에서 임존성 아래까지 난 임도를 따라가면 정상부에 닿을 수 있다. 자동차가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성곽을 따라 약 15분쯤 걸어가면 전망대다. 바다 같은 저수지의 실체에 눈이 번쩍 뜨인다. 임존성도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다. 백제 최대의 석성으로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이었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660년, 흑치상지, 복신, 승려 도침 등이 백제 유민을 이끌고 여기서 3년간 결사 항전했다. 둘레 약 2.4km에 달했는데 지금은 일부가 복원됐다. 선선해지면 산책하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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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망망한 바다가 어우러져 장쾌한 풍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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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불을 밝힌 영도등대.

부산 태종대

부산 영도 해안 끄트머리의 태종대는 ‘고전적’ 관광지다. 제법 오래전부터 부산의 대표 여행지였다. 그런데 익숙해도 막상 가본 사람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영화 줄거리를 많이 듣다 보면 마치 그 영화를 다 본 것처럼 느껴지는 법. 일단 가서 보면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후련해진다.


태종대는 해안관광지다. 깎아지른 기암괴석과 해안절벽이 장관이다. 바다도 좋다. 부산의 바다는 동해의 장쾌함과 남해의 아름다움을 함께 가졌다. 특히 영도등대 주변이 백미다. 왜구에 끌려간 남편 기다리다 돌이 된 여인의 망부석, 신선과 선녀들이 그토록 게으름 부리며 놀았다던 신선바위가 여기에 있다. 해안절벽에 서서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면 자연의 큰 기운을 실감한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은 이 멋에 반해 여기에 과녁을 세우고 활 쏘기에 정진했단다. 영도등대는 1906년에 불을 밝혔다. 태종대는 해송 숲도 멋지다. 언제든 찾아 큰 숨 한번 들이켜면 먹먹한 가슴이 확 풀어진다.


태종대가 있는 영도에는 볼거리도 많다. 그 유명한 영도다리 앞에는 영도 출신의 가수 현인의 노래비가 있다. 피란민의 애환 담긴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러 1950~60년대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주로 터를 잡고 살았던 영선동에는 풍경 예쁘기로 소문난 절영해안산책로도 조성됐다. 영도 한가운데 솟은 봉래산(395m)에 오르면 부산 서쪽 송도해변부터 동쪽 해운대 일대까지 눈에 다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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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고석정 일대.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가 고석바위다.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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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정 일대 한탄강. 땅이 꺼져 만들어진 강인데다 용암까지 흘러내리며 독특한 지형이 형성됐다.

강원 철원 고석정

강 풍경이 멋진 곳도 많다. 한탄강은 북한 평강에서 발원해 강원도 철원을 지나 경기도 연천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해 서해까지 간다. 길이는 136km로 길지는 않다. 그런데 풍경이 볼만하다. 이유가 있다. 한탄강은 땅이 꺼져 만들어졌다. 대륙과 대륙이 충돌해 거대한 틈이 생겼다. 이 틈은 영겁의 세월이 흐르며 강이 됐다. 약 27만년 전에는 용암이 지나갔다. 평강 오리산에서 화산이 터졌는데 여기서 나온 용암이 강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래서 한탄강의 지형은 독특하다. 볼거리가 그만큼 많다.


고석정은 철원 동송읍 장흥리 일대 고석바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화강암 지형을 통틀어 일컫는다. 고석바위 앞 강변에 정자가 있는데 이게 고석정이다.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71년에 다시 지었다. 어쨌든 일대의 풍광이 장쾌하다. 강 한가운데 높이 약 20m의 암봉이 우뚝 서 있고 협곡 사이로 강이 흐른다. 신라시대 진평왕, 고려시대 충숙왕도 이 모습을 보려고 멀리서 애써 찾아왔단다. 숱한 시인묵객이 고석정을 찾아 풍류를 즐겼다.


고석바위는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과 관계가 있다. 고석바위에 그가 숨어 지내던 자그마한 굴이 있다. 임꺽정의 원래 이름은 임거정(林巨正)이었다. 관군이 오면 꺽지로 변해 물속으로 숨었다는 전설 때문에 임꺽정으로 불렸단다. 그만큼 민중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2020.09.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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