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갈 때까지 갔다

[라이프]by 베네핏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의 산문집을 통해 한 이야기이다. “자동차의 눈으로 보면 서울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도로로 이루어진 도시이겠지만 자전거의 눈으로 보면 서울은 한강을 모태로 양재천, 탄천, 불광천, 중랑천으로 이어진 하천도시다.”

 

자동차의 눈, 자전거의 눈, 소설가의 눈. 모두 멋진 말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서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불편한 도시가 맞다. 길목마다 자리 잡은 오르막길은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차고 내 자전거에는 언덕을 쉽사리 오르내릴 수 있는 장비 따위 달려 있지 않으니까. 게다가 인구밀도는 또 어찌 그리 높은지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밀릴 것 같지 않다. 헌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처럼 땅덩어리가 부족하니 아래로 꺼질 구멍을 찾아낸 도시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지하’로 내려갔다는 것. 우리가 여행지로 한 번씩 꼽아보는 그곳에서 지하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1. 지하에서 자전거를 타면 전기가 돌아간다? : London Underline

‘런던 언더라인(London Underline)’은 디자인 회사 겐슬러(Gensler)가 제안한 지하터널 재건 프로젝트이다. 지하철 터널이나 역, 창고 등 런던 주위의 사용하지 않는 지하 구조물을 자전거 도로나 산책로 등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골자로 이를 통해 도시의 정체 현상을 해결하고자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도로나 산책로를 넘어 작은 매장이나 커뮤니티 공간까지 같이 설계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생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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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디자인 회사 겐슬러가 선보인 ‘런던 언더라인' 프로젝트 가상 이미지

무엇보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 파브젠(Pavegen)의 기술을 이용해 자전거 이용자나 보행자들의 이동으로 발생한 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해 지하 공간운영에 필요로 하는 전력을 충당한다는 것. 그야말로 자체적으로 에너지 공급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지역사회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런던 내 터널 2개를 가정한 런던언더라인 프로젝트는 런던 플래닝 어워드에서 ‘Best Conceptual Project’ 상을 받으며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으며 지하보도 외에도 터널이나 환승역, 정수장 등 사용하지 않는 다른 지하 공간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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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스타트업 파브젠의 기술

2. 세계 최초의 지하공원 : The Lowline

비슷한 프로젝트가 미국 맨하탄 지하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들랭시 언더그라운드(Delancey Underground)’ 계획으로도 불리는 '로우라인(Lowline)’은 1948년 이후로 60년 넘게 사람들에게 잊힌 전차 터미널을 지하 공원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이다. 전차 서비스가 중단되며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이 터미널의 크기는 약 1,200여 평으로 맨하탄의 들랭시 거리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완공될 경우 여러 사람이 일상 속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로우라인 팀은 ‘원격 채광창(remote skylight)’ 기술을 통해 광합성에 충분한 빛 에너지를 공급해 지하에서도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이 빛이 비치는 동안 공간을 밝히기 위해 전기를 공급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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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지하공원 로우라인 완공 시 가상 이미지

이 모든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리는가? 로우라인팀은 자신들의 주장이 말에서 끝나지 않도록 2012년 들랭시 가에 위치한 버려진 창고를 하나를 빌려 시험판을 선보여 프로젝트의 컨셉을 완벽하게 증명해 보였다. 단 몇 주 동안이었지만 이 프로젝트는 뉴욕 사람들을 열광시키며 만여 명의 사람들의 방문객을 이끌어냈다. 세계 최초의 지하 공원인 로우라인은 2018년 완공 예정으로 완공 시 뉴욕에서 가장 녹지가 부족한 장소 중 하나에 공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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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랭시가에 위치한 창고를 빌려 직접 구현해본 RAAD studio의 remote skylight 기술

3. 1년 내내 신선한 채소가 자라는 : Growing Underground

지하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점에서 같은 컨셉을 선보이는 곳이 하나 더 있다. 다시 영국의 이야기다. 영국 런던 교외의 클램펌커먼역(Clapham Common tube station) 지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던 방공호가 하나 있었다. 약 8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방공호를 농장으로 만든 이들은 제로카본푸드(Zero Carbon Food)로 그 이름처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농업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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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를 개조하여 만든 지하농장의 모습

이들이 재배하는 농작물은 작은 무, 완두콩싹, 적겨자 잎, 바질, 허브 같은 샐러드에 사용하는 작은 녹색 채소 12종류로 완벽한 온도와 날씨 조절을 통해 1년 내내 가장 신선한 채소를 생산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수경재배법을 통해 기존 농업과 비교해 물 사용량을 70%까지 줄이고 LED 전구를 이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 재배방식에서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주문과 동시에 수확을 시작해 4시간 안에 런던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역에서 재배한 농작물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제로카본푸드의 농산물은 25마일 이상을 이동하지 않으며 음식물의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 배출과 에너지 낭비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들은 현재 도매상과 일부 레스토랑에만 공급하고 있는 농산물을 소매상으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며 버섯이나 토마토 같은 농산물도 재배할 계획을 하고 있다.

샐러드 등에 사용되는 초록 채소 12종이 날씨와 계절과 관계없이 런던 교외 지하에서 자라고 있다.

인류에게 주어진 자원은 유한하고 생명은 이어져야 한다면 택할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기. 지하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위의 사례들은 모두 버려진, 또는 숨겨진 공간에 새로운 목적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뿌리를 같이 한다. 우리나라 역시 태생적 한계와도 같은 작은 땅덩어리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꽤 오래전부터 지하 공간을 활용하고 개발해왔다.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혈관처럼 이어지는 도시의 지하철과 지하도로 그리고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지하상가가 그 증거다.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지은 것처럼 다른 행성까지 찾아 나서야 할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넘쳐나는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Images courtesy of gensler.com, helowline.org, growing-underground.com

 

에디터 이은수

2015.07.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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