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감성’ 하던 젊은이들의 문화 갈증 해소처

[컬처]by 베네핏

현대전자, 회현지하상가

“몇 년 동안 못 구한 걸 찾았다고 절을 한 사람도 있었다고.”

극장 밖에서 영화를 향유하는 사람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토렌트 등 다운로드를 이용하는 사람, DVD를 모조리 구매하거나 대여하는 사람, 둘의 비중이 적당히 섞이되 ‘어머, 이건 소장해야 해’ 하는 것들만 구매하는 사람. 문화콘텐츠의 가치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내 주머니 사정이 어떤지에 따라 다르긴 해도, 일단 ‘구할’ 수는 있다. 전엔 그런 것도 없었다. 갖거나 혹은 없거나였다. 바로 그 시절에 현대전자가 있었다.
‘한 감성’ 하던 젊은이들의 문화 갈

우리나라 최초의 레이저디스크 상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우종우 대표, 문화에 대한 그의 사랑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어린 시절, 젊은이들이 여가를 즐길 공간은 극장, 음악감상실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비싼 극장 대신 저렴하게 이용하던 동시 상영관의 추억이 아직도 그에겐 생생하다. 학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보러 간 동시 상영관의 마지막 상영은 제멋대로 편집되어 줄거리를 파악하는 일조차 어려웠지만, 그에게 흥미와 기대를 주기엔 충분했다.

어른이 된 그는 전자부품을 수입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진공관, 트랜지스터 수입 일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운명처럼 레이저디스크(LaserDisc: LD)를 만난다. 화질과 음질이 떨리고 불 안정한 비디오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신선한 충격에 빠진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1979년, 지금의 회현지하상가 자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레이저디스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레이저디스크는 비디오와 DVD 사이에 등장했던 영상 디스크다. 크기가 큰 이유는 아직 기술이 덜 발전되기 전이었기 때문이고 소수의 마니아가 끊임없이 찾아주는 덕에 아직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다. LP는 그 연식이 100년이 넘었으나, 레이저디스크가 생산된 건 30년도 채 안 된다. 최초로 미국에서 레이저디스크로 출시된 영화는 1978년에 출시된 죠스(Jaws)다. 1990년대 중반부터 DVD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국 기준으로 지난 2000년, 공식적인 생산이 중단되었다.

한창때엔 회현지하상가 내에만 현대전자와 같은 상점이 서른 곳은 되었다. 청계천에도 유사 매장들이 가득했다. 현대전자 또한 다섯 평이 조금 안 되는 공간에 직원만 서너 명이 있었지만,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하루에 100장 정도를 팔았다니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인기다. 하지만 2005년 즈음부터는 기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이 본격화되면서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작은 화면으로, 무료로 영상을 보는 문화가 익숙해지고, 오리지널 영상디스크와 플레이어를 향유하는 층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중년들은 집에서 기계 갖춰서 빵빵하게 보는데, 요즘 사람들은 요만한 이어폰 귀에 꽂고 그러잖아.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걸로 만족할지 모르지. 아저씨처럼 이렇게 전통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이 다 없어졌어, 나 혼자야(웃음).” 사실상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 “장사 안되어도 계속 하실 거죠?” 하는 단골들 때문에 쉽게 일을 접을 생각을 하기는 어려운 우대표다.
‘한 감성’ 하던 젊은이들의 문화 갈

1. 현대전자의 냉장고에 빼곡히 붙어있는 옛 작품들의 포스터들 2. 알프레드 히치콕의 ‘dial M for Murder’ 레이저디스크 버전 3. 일반 DVD 매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작품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현대전자의 내부

좋은 콘텐츠를 알아보고, 공유하다.

지금 레이저디스크가 지닌 가치는 무엇일까. 우 대표에 따르면, 레이저디스크로 출시된 영화가 만 가지라면, DVD는 이제 절반 정도 출시된 상태다. 007 영화가 20편 나왔다면, LD는 20장이 다 나왔는데 DVD는 아직 다 출시되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시간을 붙잡고 싶은 어르신들은 LD를 바로 오늘, 지금 사서 본다. 당시엔 한 장에 십만 원, 팔만 원하던 LD를 지금은 만 원에 팔기도 하니 소비자로선 더 나은 상황이기도 하다.

우 대표는 1950년대 영화들이 참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게 자동화되고 빠르게 흐르는 지금은 영화관에 다녀와도 ‘대체 내가 뭘 봤나’ 한다고. 그러고 보니 속도감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빠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기가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당시 영화들은 템포가 느렸고, 그 덕에 그레고리 펙, 마릴린 먼로와 같은 훌륭한 배우의 잔상도 많이 남는다니 말이다. 한편, 1960~70년대 군사 독재 시절에는 문화예술에 관한 규제가 많아 좋은 영화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했었다. 그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우 대표는 끊임없이 손수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와의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전자의 특별함은 레이저디스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칸 영화제 수상작 등 작품성 높은 영화들을 이곳에서 DVD로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엔 흥행하진 않았어도, 대중적으로는 고리타분할지 몰라도 작품성이 뛰어난 수작들을 보고 싶은 손님들을 위한 우 대표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35년에 접어든 그의 경력은 뛰어난 작품을 알아보고 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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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상인 위 나는 고객

현대전자를 일종의 성지(?)로 여기는 사람들은 누굴까. 20년 전쯤, 장당 10만 원에 육박했던 레이저디스크는 교복 입은 학생들에겐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별과 같았다. 급기야 학생들은 사장님과 협상을 했단다. ‘카피해주면 내 친구 10명 데리고 올게요’라는 조건으로. 20장을 했을 때는 이득이 되는 상황이니 윈-윈인 셈 치고 카피를 떠준 때도 있었다고. ‘LD 뜬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없던 시절이지만 좋아하는 것만은 놓칠 수 없었던, 우종우 대표와 꼭 닮은 학생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현대전자 앞을 지난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병석이에요.”하는 아저씨(?)들을 매번 알아보긴 어려워도, 옛이야기가 시작되고 함께 추억에 젖어드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들 중엔 일류 만화가가 된 사람도 더러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디즈니가 귀했던 시절의 유일한 통로니, 이들에겐 현대전자가 일종의 학교였을 테다.

“007이 25개 정도 되는데 취미인 사람들은 중간에 빠진 걸 못 구하면 잠을 못 자. 바둑 배울 때 체크 옷만 봐도 바둑 돌이 보이는 거랑 똑같지. 돈이 많다고 해도 취미가 없는 사람은 이거 안 사. 봉급쟁이라도 부인 몰래 한 달에 10~20만 원 겨우겨우 모아놓고 사는 게 취미야. 나한테도 소중한 사람들이지”.

지금도 현대전자를 찾는 이들은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젊은 연극영화과 학생들은 교수가 추천한 영화를 찾아오고 방송, 시나리오 작가들도 많이 찾는다. 나이 든 사람들은 과거에 본 영화에 대한 향수로 들른다. 한 번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현대전자를 들렀는데, 프랑스보다 더 판이 많은 곳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떤 젊은이는 몇 년 동안 못 구한 걸 여기서 구했다며 우 대표를 향해 절을 한 적도 있다.

우 대표보다도 더 많은 판과 지식을 갖춘 손님들도 있다. 외국영화가 한국판으로 넘어오면서 어떤 장면이 편집되었는지 알 정도로 유식한 전 외교관도 있었고, 대단한 양의 판을 가지고 있다고 정평이 난 전영록씨도 그의 가게를 들렀다. 단골이 원하는 판을 못 구하는 경우가 있으면 “내가 옆에다 자리 깐다. 가게 할 거야.”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니, 어쩌면 현대전자의 오늘은 집요하게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풍요롭진 못했을지도 모른다.

1979년 현대전자를 연 이후 우 대표는 정규 휴일 말고는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여는 시각, 닫는 시각을 지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아플 때는 어떻게 하시느냐고 물으니 그런 적도 한 번 없단다. 어쩐지 일흔이 넘은 그의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부터 음악과 영화를 사랑했던 마음에 지겨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나 보다. 늘 좋은 작품들과 함께한다는 자부심, 누군가가 간절히 찾았던 판을 구해줄 때의 보람이 그의 매일매일을 즐겁게, 또 이곳 지하상가를 지키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한 감성’ 하던 젊은이들의 문화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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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1가 50-10 회현지하상가 다열 6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5번 출구, 회현역 7번 출구) 전화번호: 02-778-1250

위 글은 서울시설공단에서 발행하는 지하도 상가 매거진 G:HA[지:하] 2호 <지하상가로 떠나는 시간여행>편을 편집하여 게재한 글입니다.

에디터 오수희
2015.08.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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