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무너져도 보관할 방법은 있다

[라이프]by 베네핏

냉장고.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저온으로 신선하게 보관하는 장치로 한국에서는 1965년 주식회사 금성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고 위키백과는 말한다. 그런데 이 유용한 냉장고 속에서 변사체가 되어 나가는 음식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네덜란드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디자이너 류지현은 냉장고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믿음에 신선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정말 냉장고는 음식물을 보관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녀는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 대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음식 보관법을 몸소 구현해 보았다. ‘Save food from the fridge’라는 프로젝트 디자인을 통해서 말이다. 그 실한 이야기를 들여다 봤다.

냉장고가 무너져도 보관할 방법은 있다

일명 지식의 선반 (knowledge shelves)으로 불리는 나무 선반 위에는 각기 다양한 식재료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들이 놓여있는 원리는 음식물 본래의 성질에 정확히 부합한다.

냉장고가 무너져도 보관할 방법은 있다

먼저 당근과 파 같은 뿌리 식물의 이야기. 뿌리 식물은 원래 땅속에서 선 채로 자라던 식물이라 냉장고 속 야채칸 안에 눕혀지면 금세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해진다. 류지현이 고안한 디자인은 약간 물기가 있는 모래 속에 이들을 세워서 보관하는 것. 낮은 온도도 중요하지만 높은 습도 역시 필요한 이들을 수분기 있는 모래 속에 수직으로 꽂아 보관하는 일은 이들이 자라던 환경을 그대로 유지해 그 신선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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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위 과일과 채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생물학적 ‘과일’인 가지와 애호박, 토마토, 파프리카. 이들은 낮은 보관 온도를 선호하는 일반적인 과일이나 채소와 달리 높은 온도에서 더 오래 살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습도도 높아야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히려 더 빨리 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나무 선반 위에 올려놓고 간간이 물을 뿌려주는 것이 최선의 보관법이 된다. 물론 이 디자인 선반은 아래에 물이 놓여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좀 더 높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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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달걀. 육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달걀 표면에 자리한 수만 개의 숨구멍은 냉장고 안의 모든 냄새를 빨아들인다. 후라이로 만들어 김치볶음밥 위에 올리기 전부터 달걀에서 김치 냄새가 나기도 하는 건 바로 이 때문. 하지만 상온에서 달걀을 따로 보관할 수 있는 틀이 있다면 더는 냄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혹시 신선도 문제가 불안한가? 그렇다면 틀의 가운데 놓인 투명한 유리컵에 담긴 물속에 달걀을 한 번 넣어보시길. 아래로 가라앉는다면 그것은 달걀이 충분히 신선하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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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감자와 사과가 있다. 감자는 맛있다. 어디에 넣어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감자를 한 번에 많이, 여러 알 사두고 먹는다. 문제는 박스든 봉투든 다 먹기 전에 꼭 한두 알은 초록 싹을 틔우고야 만다는 사실. 무슨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관찰일기 쓸 것도 아닌데 싹이 나면 어떡하나. 싹이 난 부분만 잘라내서 먹기도 어쩐지 불안하고. 그래서 류지현이 제안하는 보관법은 이따금 주부용 잡지에서 소개되기도 하는 사과 한 알의 비밀이다. 사과는 익으면 익을수록 과일이나 채소의 성장을 촉진하는 에틸렌 가스를 방출한다. 신기하게도 이 에틸렌 가스는 감자에서 싹이 나는 현상을 막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선반은 판막이로 빛을 차단한 암실에 감자를 보관하고 그 위에 사과를 올릴 수 있는 구멍이 나 있다.

 

‘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 속 나무 선반들은 판매용인 아닌 디자인 작품이다. 디자이너 류지현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냉장고를 더는 사용하지 말자는 건 아닐 것이다(feat. ‘냉장고를 부탁해'). 분명한 사실 몇 가지를 상기시킬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모든 건 언젠간 상한다는 사실, 상하면 먹지 못한다는 사실, 무분별한 소비와 저장이 우리의 엥겔지수를 서서히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Images courtesy of savefoodfromthefridge.com

 

에디터 이은수 

2015.09.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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