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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김철수 부장을 철수님이라 불러보았다,
그랬다가… 님을 버린 기업들

by조선비즈

상사를 어떻게 부를까

창의적 분위기·소통 위해서 직급 대신 님이나 매니저로 불러


님이라 부르지 마오

영업이나 타부서와 소통 힘들고 위계 중시 한국에선 적용 어려워

직급 따라 책임 지는 옛날이 나아… KT·포스코 등 호칭 다시 '유턴'


님을 찾는 기업들

SKT·LG유플러스는 님으로 불러… 눈치 안보고 협업할 때 긍정적


올해부터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임직원 직급과 상관없이 호칭을 '님'으로 부르는 '호칭 파괴' 제도를 도입했다. SK하이닉스도 다음 달 일부 부서에 시범적으로 호칭을 통일하는 제도를 적용할 계획이다. '부장님' '차장님'과 같은 직급 호칭이 자연스러웠던 대기업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으로 창의적인 회사를 만들겠다'는 취지의 호칭 파괴 바람이 부는 것이다. 직급과 무관하게 '님'이나 '매니저'로 서로를 부르는 호칭 제도는 그동안 인터넷·게임 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주로 시행했다.


하지만 세대 간 위계가 존재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에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KT·포스코·한화케미칼은 호칭 파괴를 도입했다가 오히려 소통과 동기부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직급제를 부활시키고 '유(U)턴'했다.

부장님''대리님' 말고 모두 '님'으로

SK텔레콤·LG유플러스는 요즘 사장과 임원을 비롯한 전 직원이 서로를 부를 때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고 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나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을 지칭할 때도 '박정호님' '권영수님'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상품과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부서·팀 간 협업할 일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호칭 파괴'는 직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SK텔레콤 마케팅 부서 김모(32)씨는 "상품을 기획할 때 법무·디자인·유통망 등 20여개의 팀과 협업해야 한다"며 "상대방의 연차와 나이를 고려하지 않고 대등한 입장에서 자료를 요구하고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철수 부장을 철수님이라 불러보았다,

일러스트=이철원

SK하이닉스는 지난 2011년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다섯 단계 직위를 '사원·선임·책임·수석' 네 단계로 단순화한 데 이어 다음 달부터 경영 지원 부서를 중심으로 호칭을 하나로 통합하는 제도를 시범 운영한다. 통합 호칭을 '님'이라고 할지 '매니저'로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R&D(기술 개발)나 제조 부서와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직급 눈치 안 보고 긍정적인 대립을 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직위에 상관없이 호칭을 '님'으로 부르게 하는 제도는 2000년 국내 대기업 CJ가 처음 도입했다. 이후 구글·페이스북 등 창의적 아이디어를 위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아모레퍼시픽·코웨이·엔씨소프트·네이버 등도 잇따라 도입했다.

'U턴'한 기업들, "옛날이 좋았다"

하지만 호칭 파괴를 도입했다가 이를 폐지하고 기존 직급 체계로 돌아온 대기업들도 많다.


한화케미칼은 2012년 차장·과장·대리등 부장 이하 직원들의 호칭을 모두 '매니저'로 통일했지만, 3년 만인 지난 2015년 다시 변경 전 제도로 바꿨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다양한 토론이 가능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불명확한 직급 체계로 인해 오히려 다른 부서, 외부 기업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한화케미칼 영업팀 정모(32) 대리는 “석유화학 업계에서 잘 쓰지 않는 ‘매니저’라는 호칭은 외부 영업을 할 때 거래처에서 매우 생소해했다”고 말했다. 포스코 역시 2011년 매니저·팀 리더·그룹 리더로 단순화했던 직급을 지난해 기존 체계인 대리·과장·차장·부장 직급으로 되돌렸다. 포스코 관계자는 “직급에 따라 책임과 권한이 명확하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의사 결정도 빠르다”고 말했다.


KT도 지난 2009년 도입한 호칭 파괴 제도를 2014년 부활시켰다. 직급·호칭이었던 ‘매니저’를 없애고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5단계 직급과 호칭을 다시 도입했다. 직급이 있어야 직원들의 자부심이 높아지고 업무 성과에 기반한 보상이 가능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해 말 승진한 박모(33) 과장은 “직장인들에게 연봉과 승진만한 동기부여는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이무원 교수는 “스타트업(초기 창업 기업)이나 인터넷 기업에서는 서로 연령대가 비슷한 젊은 사원들이 많기에 호칭 파괴 제도가 자리를 잡지만, 연령대 분포가 다양한 대기업에서는 이런 제도가 쉽게 정착되기 어렵다”며 “호칭 파괴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창조적인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의사 결정과 평가·보상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기문 기자(rickymoon@chosun.com), 김혜주 인턴기자(고려대 미디어학부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