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천국 인도, 넷플릭스는 왜 힘 못쓰지?

[비즈]by 조선비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급성장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광팬인 인도 대학생 아제이 라오(22)씨는 신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러 가기 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이전 작품 5편을 사흘에 걸쳐 '복습'했다. 그가 영화 5편을 보는 데 쓴 돈은 '0'원. 라오씨가 이용하는 인도 통신사 지오(Jio)가 영화 스트리밍 앱을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공짜 앱뿐 아니라 유료 앱도 한 달 이용료가 30루피(약 500원) 수준이어서 두세 개 앱을 돌아가면서 이용한다"며 "인도 발리우드(Bollywood·뭄바이의 옛 지명인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인도의 영화 산업을 일컫는 말) 영화부터 크리켓 경기까지 볼 게 너무 많아 시간이 모자랄 정도"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일주일 평균 8시간 이상 영화 등 비디오를 보는 '영화광'의 나라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글로벌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도에서 이용할 수 있는 OTT 개수만 35개가 넘을 정도로 춘추전국시대다. 시장조사 업체 미디어 파트너스 아시아는 지난해 7000억달러 규모였던 인도 OTT 시장은 2023년까지 2조4000억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세계시장 1위인 넷플릭스가 인도에서는 토종 서비스에 밀려 힘을 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와 크리켓에 미친 인도… 글로벌 동영상 서비스 격전지 되다

인도가 OTT 천국이 된 배경에는 스마트폰 보급과 저렴한 통신 요금이 있다. 인도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인도 내 인터넷 이용 인구는 6억421만명이다. 이는 6개월 전보다 9000만명 증가한 수치다. 유선 인터넷 인프라가 취약한 인도는 이를 건너뛰고 바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 시대로 진입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2016년 있었던 '지오 임팩트'다. 아시아 최고 갑부인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그룹 회장이 세운 통신사 지오는 2·3세대(G) 통신 설비는 생략하고 바로 LTE(롱텀 에볼루션), 즉 4G망만 인도 전역에 깔았다. 이 때문에 월 149루피(약 2400원)에 하루 모바일 데이터 1.5기가바이트(GB), 무제한 음성 통화가 가능해졌다. 지오가 반년 만에 가입자 1억명을 돌파하며 흥행하자 경쟁사들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요금이 저렴하다 보니 대부분 사람이 휴대폰 번호를 두 개 이상씩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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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아마존을 제치고 인도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위인 토종 업체 핫스타.

인도 OTT 업체들은 이러한 저렴한 인터넷 인프라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인도인들은 20만~30만원인 한 달 월급으로 스마트폰을 사고 매월 통신 요금까지 내야 한다. 이 때문에 OTT 서비스도 저렴하거나 돈을 안 받는 것이 이들에게는 '상식'이 됐다. 시장점유율 29%로 인도 시장 1위인 핫스타(Hotstar)는 연간 이용권 가격이 365루피(약 6000원)다. 점유율 23%로 2위인 지오티비는 가입자에게 7000편이 넘는 영화와 1만편이 넘는 드라마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인도 1위 통신사 에어텔도 에어텔TV라는 자체 OTT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핫스타는 21세기폭스의 인도 자회사인 스타인디아가 2015년 출시한 OTT 서비스다. 발리우드 영화 등 현지 콘텐츠는 물론이고 인도 최고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 중계를 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인도 사람들은 흔히 "영화와 크리켓은 우리에게 종교와 같다"고 말한다. 핫스타는 이 두 '종교'를 모두 다 잡은 것이다. 지난 3월 인도 프리미어 리그(IPL) 개막 직후 3주간 2억6700만명이 핫스타 앱을 이용했다. 지난해 IPL 결승전 당시에는 핫스타 접속자가 1030만명에 달하기도 했다. 시드라트 샤크데르 핫스타 전무는 "올해 목표는 이용자 3억명을 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인도에서 맥 못 추는 넷플릭스·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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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 강자인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나란히 2016년 인도 시장에 상륙했다. 아마존이 서비스하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2년간 인도 오리지널 시리즈 20개를 출시했다. 인도 배우가 출연하고 인도 감독이 만든 콘텐츠다. 아마존이 진출한 국가 중 가장 많은 오리지널 시리즈 숫자다. 넷플릭스도 지난해부터 오리지널 시리즈를 속속 내놓고 있다. 동명(同名)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범죄 스릴러 '신성한 게임'을 시작으로 크리켓·여성 인권·범죄 등 최근 인도 젊은이들이 관심 갖는 분야를 주제로 한 영화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각각 점유율 5%와 10%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바로 인도 시장에 맞지 않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월정액 요금은 500루피(약 8200원)부터 시작한다. 한국·미국 등과 비슷한 가격이지만 연평균 국민소득 2000달러 정도에 불과한 인도에서 이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먹힐 리 만무하다. 또한 핫스타를 비롯한 인도 토종 OTT가 10개 넘는 인도 내 언어를 지원하는 반면 넷플릭스 같은 해외 서비스는 아직 영어 콘텐츠가 대다수다. 뉴델리에 사는 주부 아누쉬카 굽타(42)씨는 "한 달에 500루피를 내고 외국 영화만 볼 수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은 그나마 한결 낫다. 쇼핑 무료 배송·음악·비디오 서비스를 한데 묶은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1년 999루피(약 1만63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최근 2년 새 인도 중산층 사이에서 온라인 쇼핑이 급격하게 인기를 끌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다.

넷플릭스 반값 요금제 먹힐까

비싼 요금제로 인도에서 체면을 구긴 넷플릭스는 인도 시장 한정으로 한 달에 250루피(약 4100원)짜리 모바일 전용 '반값 요금제'를 출시했다. 또한 인도 최대 이동통신사인 에어텔과 제휴해 고가 통신 요금제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넷플릭스 1년 무료 이용권을 주는 등 현지 업체와 손잡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대로 인도 토종 업체들은 시장 지위를 굳건히 하기 위해 해외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핫스타는 디즈니와 계약을 맺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 8도 핫스타가 독점 상영한다.


뉴델리=장형태 특파원(shape@chosun.com)

2019.04.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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