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이길 단서, 고래·코끼리에서 찾았다

[테크]by 조선비즈

고래, 세포증식·DNA수리 유전자, 몸집 작은 동물들보다 더 진화돼

"코끼리, 덩치 커지면 기능 않던 항암 유전자 깨어나" 연구 결과도

 

나이가 들면 체중 관리가 중요하다. 암은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주요 원인인데, 몸무게와 나이가 많으면 그만큼 세포분열도 늘어나 돌연변이가 생길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람에 국한된 이야기다. 인간보다 몸무게가 수십, 수백 배인 코끼리, 고래는 암에 덜 걸린다. 어떻게 자연의 덩치들은 암의 공포에서 비켜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이 고래와 코끼리의 유전자에서 암을 이겨낼 단서를 찾았다. 암 발생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덩치들의 지혜는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자 돌연변이 원천 차단하는 고래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마크 톨리스 교수가 이끈 국제 연구진은 지난 10일 '분자생물학과 진화'지에 "혹등고래의 유전자를 이루는 DNA를 해독해 암 억제 메커니즘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혹등고래는 몸무게가 30t에 이르며 수명도 45~50년으로 길다.


연구진은 1975년부터 미국 동부 해안에서 관찰을 해온 '솔트'란 암컷 혹등고래에서 피부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를 해독했다. 솔트의 유전자는 대왕고래, 북극고래 등 다른 고래 9종의 DNA 해독 결과와도 비교했다. 여기서 혹등고래는 세포 증식과 DNA 수리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다른 동물보다 더 많이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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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혜인

반면 DNA 전체로 보면 시간에 따른 돌연변이 발생 속도가 다른 동물보다 느렸다. 앞서 2016년 국립수산과학원의 박중연 연구관은 인간은 DNA에서 같은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약 60만개이지만, 밍크고래는 46만개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DNA에서 반복 부위는 돌연변이율이 높다. 결국 고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최대한 억제하는 동시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바로 수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킨 것이다.


197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의 리처드 페토 박사는 동물원이나 자연에서 죽은 코끼리를 부검해 암으로 죽은 경우가 5%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몸무게가 코끼리의 70분의 1에 불과한 인간은 그 비율이 11~25%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페토의 역설'이라고 했다.


지난해 시카고대 연구진은 코끼리의 몸집이 커지면서 기능을 하지 않던 항암 유전자가 깨어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미국 유타대 연구진은 사람이 한 벌 가진 항암 유전자를 코끼리는 20벌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덩치 큰 공룡도 화석에서 항암 유전자가 발견됐다.

번식 오래 하려고 항암 능력 진화

물론 같은 동물이라면 이론대로 몸집이 클수록 세포분열과 돌연변이가 늘어 암 발생이 증가한다. 영국 과학자들은 1990년대에 1만7000명이 넘는 공무원을 25년간 추적 조사해 키가 클수록 암이 더 잘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다른 동물끼리 비교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카를로 말리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15년 동물원에서 죽은 포유류 36종을 부검한 기록을 비교했다. 그러자 암으로 죽은 비율이 바위너구리 1%에서 코끼리 5%, 아프리카들개 8%에 이르기까지 몸무게나 수명에 따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론으로 따지면 몸집이 훨씬 크고 수명이 긴 코끼리는 암 사망 비율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야 했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몸집이 커지면서 암을 이기는 능력이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목적은 번식이다. 덩치가 클수록 임신 기간이 길다. 코끼리는 22개월이나 된다. 게다가 한 번에 한 마리만 낳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능한 한 오래 출산을 해야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결국 코끼리는 번식을 계속하기 위해 나이가 들어도 암에 걸리지 않도록 진화했다는 말이다. 고래도 오랫동안 번식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고래와 코끼리의 항암 유전자를 이용하면 인간을 치료할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애리조나 주립대 연구진은 고래 세포를 이용해 항암 물질을 시험해볼 계획이다. 이를테면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고래 단백질로 암세포 크기를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식이다. 고래가 암환자를 춤추게 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2019.05.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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