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디자이너 1명의 사표… 애플 시총 10조원 날아갔다

[이슈]by 조선비즈

27일(현지 시각) 애플은 주식시장 마감 직후 한 임원의 연말 사임 소식을 발표했다. 이후 열린 시간 외 거래 시장에서 애플 주가는 한때 1% 하락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시가총액 중 90억달러(약 10조원)가 사라진 것이다. 이 임원은 20여 년간 아이폰·아이패드 등 애플 주력 제품의 디자인을 총괄해온 조너선 아이브(52) 최고디자인책임자(CDO)다. 지난 2011년 10월 애플 설립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사망할 당시 애플 주가는 0.23% 떨어지는 데 그쳤다. 아이브의 영향력이 그만큼 큰 것이다.


◇부도 직전 애플을 세계 1위 IT 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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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는 잡스와 함께 애플 신화를 일군 동업자로 불린다. 잡스가 세상에 없던 제품을 생각해 내면, 아이브는 그것을 제품으로 구현했다. 잡스가 추구했던 '단순함의 미학'은 아이브의 스케치로 구체화한 셈이다.


그는 196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대학생 때까지 '컴맹'에 가까웠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고, 전자기기 디자인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1989년 접한 애플의 매킨토시 PC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아이브는 "나처럼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쓸 수 있게 만든 직관적 디자인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아이브는 1992년 애플의 디자이너가 됐다. 입사 초기엔 주목받지 못했다. 잡스가 1985년 회사를 떠난 이후 애플은 디자인보다 제품의 성능과 가격을 중시하는 회사로 변해 있었다. 제품 차별화에 실패해, 애플은 1990년대 중반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잡스가 1997년 CEO로 복귀하면서 아이브에게 기회가 왔다. 1998년 아이브의 첫 작품인 일체형 데스크톱 '아이맥'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투명 소재의 디자인은 회색 일색이던 기존 PC 시장을 뒤흔들었다. 1997년 10억달러 적자였던 애플은 1998년 4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두 번째 히트작은 2001년 내놓은 '아이팟'이었다. 아이브는 단추를 눌러 조작하는 기존 MP3플레이어와 달리 '휠(wheel·바퀴)'을 문지르거나 눌러 조작하는 참신한 제품으로 성공했다. 이후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 2015년 애플워치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7일 "애플 부활에 기여한 조니(아이브 애칭)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브는 2012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혁신은 잡스, 디자인은 아이브


잡스는 아이브를 가리켜 "내 영혼의 단짝"이라고 했다. 그만큼 아이브는 잡스의 생각을 잘 알았고, 잡스의 철학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데 능했다. 아이브와 잡스는 거의 매일 함께 산책하며 제품 디자인에 대해 대화했다. 회사에서는 둘의 이름 '잡스(Jobs)'와 '아이브(Ive)'를 합쳐 '자이브(Jives)'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디테일에 집착한 것까지 닮았다. 아이브는 제품 한 개를 디자인할 때마다 1000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달라지는 것은 쉽지만 더 나아지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말했다.


잡스는 아이브의 의견을 존중했다. 아이브는 아이팟을 디자인하며 제품 자체는 물론 충전 케이블과 이어폰까지 모두 흰색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당시까지 대부분 이어폰은 검은색이었고, 잡스도 제품 전체를 흰색으로 만드는 것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브는 "아이맥에 화려한 색을 입혔으니 아이팟의 색은 단순하게 하자"고 설득했고, 잡스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아이브는 잡스 사후 애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혔다. 한때 잡스를 이을 차기 CEO로 거론됐지만 그는 디자인 담당으로 일하겠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브는 올 연말 애플에서 나와 '러브프롬(LoveFrom)'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세운다. 블룸버그는 "러브프롬의 첫 고객은 애플"이라고 보도했다. 아이브는 "지금이야말로 (애플과의 결별이라는) 자연스럽고 원만한 변화가 일어날 시간"이라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2019.06.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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