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황에 이자 8만원이 어디냐" 은행이 미어터졌다

[비즈]by 조선비즈

하나은행 年5% 이자 특판 적금에 이틀동안 83만7000명 몰려

서민들 "은퇴자가 어디서 이돈 벌겠냐" "8만원이면 내 하루벌이"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하나은행 송파헬리오시티지점 앞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자녀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챙겨든 주부, 롱패딩으로 무장한 20대 청년 등. 은행 영업 시작을 40분 앞둔 시각이었다. 오전 9시 은행 문을 여는 시점에 줄을 선 사람은 60명이 넘었다. 모두 하나은행의 연(年) 이자 5%짜리 '하나더적금'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다섯 번째 차례로 기다리던 60대 남성은 "어제 오후 2시에도 왔었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 번호표조차 받지 못해서 오늘 또 왔다"고 했다. 50대 여성은 "휴대전화로 가입하는 건 할 줄 몰라 아침부터 은행에 왔다"며 "가족관계증명서가 있으면 다른 가족 것도 가능하다고 해서 자식들 것도 몇 개 했다"고 했다.

1년 '8만2000원'이 빚은 대란

'하나더적금'은 하나은행이 'KEB하나은행'에서 '하나은행'으로 사명(社名)을 바꾸면서 이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3~5일 사흘간 한정 판매하는 1년 만기 고금리 적금 상품이다. 연이율이 최고 5.01%. 저(低)금리 시대에 단숨에 화제가 됐고, 이틀 만에 83만7000명이 가입했다. 전국에서 입금된 첫 달분 적금 불입액만 총 2300억원이었다. 은행 관계자는 "'대박'보다 '대란'에 가까운 성적"이라고 했다.


예고된 상황이었다. 상품 출시 며칠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엔 "미리 하나은행 계좌를 개설해 두고 하나은행 앱이나 인터넷뱅킹으로 가입하라"는 팁이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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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낮 12시쯤 서울 송파구 하나은행 송파헬리오시티점이 ‘하나 더 적금’ 가입을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5일까지 판매하는 ‘하나 더 적금’은 연(年) 이자가 5%대인 1년 만기 정기적금 상품으로, 출시 이틀만에 약 83만명이 가입했다. /주완중 기자

3일 오전 한때 하나은행 앱 접속 대기 인원은 5만1000명이 넘었다. 로그인에만 154분을 대기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로그인 후에는 서버 과부하로 인한 오류가 계속됐다. 앱으로 수차례 가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직장인 김모(33)씨는 "적금 가입이 아이돌 가수나 미스트롯 콘서트 티켓 예매 수준으로 어렵다"며 결국 직장 인근 하나은행을 찾았다.


점심시간부터 접수를 마감하는 지점도 속출했다. 여의도금융센터 지점도 4일 정오 이후부턴 '신규 계좌 개설 업무가 불가하다'는 안내판을 내걸었다. 이미 장내엔 77명이 대기 중이었다. 대부분 인근에서 근무하는 젊은 직장인이었다.

1년 368만원 모으기가 '노후 희망'

엄청난 인기에도 사실 이 적금으로 벌 수 있는 최대 수익은 8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한 달 최대 납부 한도가 30만원인 데다, 만기도 1년이기 때문이다. 1년에 360만원을 넣어 받는 세후 이자는 8만2650원이다. 1년을 맡겨둘 때 이자가 5.01%인 만큼, 입금 회차가 거듭될수록 적용 이자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적금이 아닌 다른 업무로 하나은행 지점을 찾았다는 한 남성은 "이자 8만원 때문에 이 난리를 치느냐"며 "그렇게까지 애써 가입할 상품이 아니다"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적금 가입자들 반응은 달랐다. "요즘 같은 불경기, 저금리 시대에 8만원이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송파구 지점에서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한 은퇴 남성은 "은퇴해 직업도 없는 60대 노인이 어디 가서 편하게 10만원 돈을 벌겠느냐"고 했다.


도리어 한 달 30만원을 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서민의 목소리도 높았다.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10여년째 의류 자영업을 하고 있는 권모(57)씨는 "온종일 가게를 혼자 지켜봐야 한 달 남는 돈이 100만원도 안 된다"며 "월세 50만원 내고, 새 옷 몇 벌 떼오면 한 달에 30만원 남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평생 적금 말고 다른 투자는 몰랐다"며 "5% 이자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 꼭 360만원을 모아 노후 자금에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경남 창원시에서 혼자 10년째 작은 호프집을 운영 중인 김모(64)씨도 "몇 년째 지역 경기가 나빠 아르바이트생도 없이 혼자 근근이 하루 몇 만원 돈을 벌고 있다"며 "하루 벌이만큼 이자를 준다니 혹해 가입했는데, 고민이 있다면 매달 30만원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불황과 저금리가 겹친 시기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해프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은행관계자는 "대다수 서민은 부동산 투자 여력도 없고 금융기관의 파생상품은 이해하기도, 신뢰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1년 8만원을 안정적으로 벌 기회가 그만큼 드물다는 뜻"이라고 했다.


최은경 기자(gang@chosun.com), 조유미 기자

2020.02.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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