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임원이 KAI 항공정비 행사에 나타난 이유

[비즈]by 조선비즈

지난 17일 경남 사천에선 한국항공우주(047810)(KAI) 항공정비(MRO) 자회사 한국항공서비스(KAEMS)의 민항기 정비동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행사에는 손창완 공항공사 사장,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 등 항공업계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특히 대한한공 항공우주사업본부 소속 임원의 등장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제주항공(089590), 티웨이항공(091810)과 달리 대한항공은 KAEMS의 고객사가 아닌 데다, 대한항공과 KAI 사이에 접점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부가 전날(16일) 대한한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획을 공식화했고, 두 항공사가 정비 조직을 분리해 MRO 통합법인을 출범시킬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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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서비스는 지난 17일 경남 사천의 본사에서 신규 민항기 정비동 준공식을 개최했다. /김우영 기자

대한항공 측은 행사에 초대받아서 참석했을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대한항공의 항공기 자체 정비율은 국내 9개 항공사 중 가장 높습니다. KAEMS가 정비 자격증을 보유한 B737 등도 대한항공이 대부분 자체 정비하는 기종입니다. KAEMS와 대한항공 간 협력이 그동안 긴밀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 인사가 이날 행사에 참석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KAI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통합법인 설립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요.


마침 이날 현장을 찾은 대한항공 임원도 항공우주사업본부의 테크센터 소속이었습니다. 항공우주사업본부는 대한항공의 MRO를 전담하는 사업부입니다. 대한항공은 "MRO 통합법인은 근거 없는 얘기"라는 입장이지만, 업계 관계자는 "통합법인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MRO 파트너로 KAEMS를 눈여겨보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MRO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규모의 경제’입니다. 항공사 사장을 역임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들이 해외로 정비를 맡기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라며 "아무리 국내에 중정비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도, 동남아나 대만과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저렴한 MRO 업체를 찾아 몽골에 항공기를 맡기는 경우까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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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길우

이 관계자는 "B747 기준 항공기 80대 이상을 정비해야 BEP(손익분기점)를 겨우 넘길 수 있다"며 "그런데 지금 국내에선 정비 물량 절반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나머지도 항공사별로 자체 정비하기 때문에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국내 MRO 시장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인건비를 낮춰야한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국내 MRO 사업이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일단 덩치부터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글로벌 MRO 시장 규모는 약 89조원에 달합니다. 매년 연평균 3.5%의 성장세를 보이는데, 오는 2028년까지 132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MRO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지만 국내 MRO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합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이 전체 시장의 62%,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21%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국내 MRO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국내 항공사와 MRO 업체 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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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서비스주식회사(KAEMS) 소속 정비사들이 B737 항공기를 정비하고 있다. /김우영 기자

정부도 업계 의견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MRO 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MRO 시장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며 "국내 MRO 시장을 키우기 위해 대한항공의 MRO 사업 부문을 떼낸 뒤 다른 업체들이 참여하는 조인트벤처(JV) 방식을 구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한항공이 5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갖고, 나머지 지분에 대해 다른 기업들이 출자하는 방식이 여러 안 중에 하나로 거론됐다고 합니다.


다만 정부와 채권단 등은 MRO 사업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자칫 지역 정치 싸움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인천에 지역구를 둔 여야 국회의원들이 인천공항 배후부지에 MRO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나서자, 사천시는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MRO 사업은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돼야 하는데, 지금은 지역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려지고 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김우영 기자(young@chosunbiz.com)

2020.11.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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