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에 누가 정장 입어요? '신사복의 몰락'

[비즈]by 조선비즈

코로나19에 사라지는 신사복...10년간 3조원 증발

캐주얼화·재택근무 일상화로 수요 급감


"정장이요? 결혼식, 상갓집 갈 때나 입죠."


석유화학 회사에 다니는 이정훈 씨(39)는 트레이닝 슈트를 입고 근무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후 주 2일 회사에 출근했지만, 확진자가 급증한 후론 아예 재택근무제로 바뀌었다. 그는 "회사 갈 때 입던 재킷이나 코트도 입을 일이 없다. 트레이닝 슈트 몇 벌에 외출 시 입을 롱패딩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지난해 국내 전개를 중단한 이탈리아 신사복 까날리./까날리

출근복 자율화로 하향길을 걷던 신사 정장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12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자회사 신세계톰보이는 남성복 코모도의 영업을 중단하고 매장을 상반기 중 철수한다. 1986년 출범한 코모도는 한때 연 매출이 500억원대에 달했지만, 지난해 매출이 200억원 초반대로 쪼그라들었다. 회사 측은 "2011년 인수 후 지속적인 투자와 사업 재정비에도 적자가 지속돼 브랜드를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엔 삼성물산(028260)패션부문의 신사복 빨질레리, 한섬(020000)의 이탈리아 신사복 까날리, 태진인터내셔날의 루이까또즈 셔츠 등이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정장의 몰락'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지난해 미국 브룩스브라더스, 멘스웨어하우스 등 신사복 업체가 파산 신청을 했고, 일본 최대 신사복 기업인 아오야마 상사도 매출 부진으로 최근 점포 정리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와 관련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은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의 보급과 의류의 캐주얼화로 인해 정장의 시대가 끝나고 평상복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


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11년 6조8668억원이던 국내 남성정장 시장은 지난해 3조6556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패션 시장에서 남성정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24.8%에서 지난해 상반기 8.8%로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연합회는 "비즈니스 캐주얼의 성장과 함께 재택근무 일상화로 정장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며 남성정장 시장이 쇠퇴기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정장 수요가 감소하면서 정장용 구두 시장도 2019년 상반기 6010억원에서 지난해 상반기 3979억원으로 감소했다.



조선비즈

미국 시카고 중심가 매그니피센트 마일의 브룩스브라더스 매장. 1818년 출범한 브룩스브라더스는 링컨,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입은 신사복으로 유명하다./AP연합뉴스

백화점의 남성복 비중도 줄고 있다. 2010년만 해도 백화점 매출에서 남성복은 9.4%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5월에는 5.2%로 감소했다. 현대백화점은 2018년 기준 전국 80개였던 남성 정장 매장을 지난해 상반기 65개로 줄였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영등포점을 리뉴얼하며 정장·셔츠 매장을 20% 줄이고, 레이싱카, 플라이 모델 등 남성 고객이 선호하는 엔터테인먼트 매장으로 바꿨다. 이와 함께 14년 된 자체 셔츠 브랜드(PB) 헤르본을 철수했다.


비대면 쇼핑이 부상하면서 패션계의 온라인 전환이 빨라지고 있지만, 정장은 온라인에서 팔기도 어렵다. 연합회가 남성 소비자들에게 의류 구매 선호 유통채널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캐주얼과 스포츠의류의 온라인 선호도는 각각 12.1%, 12%였지만, 정장은 1.9%에 불과했다.


반면, 컨템포러리(명품보다 싼 수입 브랜드) 브랜드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현대백화점의 남성 컨템포러리 상품군 매출이 2018년 12%에서 지난해 20%까지 신장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복장 자율화 등에 더해 지난해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캐주얼 중심의 컨템포러리 의류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정장 매장 면적을 줄이는 대신 수입 컨템포러리와 명품 브랜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남성복 업체들은 정장을 줄이고 캐주얼 상품군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신사복 브랜드 갤럭시의 캐주얼 상품 비중을 70%까지 늘리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에게 인기가 좋은 컨템포러리 캐주얼 브랜드를 강화했다. 이 회사가 수입 전개하는 아미, 톰브라운, 메종키츠네 등은 지난해 매출이 20~60% 신장했다. 아미의 경우 11월 매출이 전년 대비 200% 뛰었다.



조선비즈

하트 로고로 유명한 아미 현대백화점 본점 매장./삼성물산 패션부문

삼성물산 관계자는 "정장 수요는 줄었지만, 수입 캐주얼 브랜드는 고가임에도 매출이 지속해서 신장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좋아하는 것에 돈을 투자하는 가치소비가 뚜렷해지는 추세"라고 했다.


코오롱FnC도 ‘캠브리지 멤버스’ 가을겨울(FW) 시즌에는 캐주얼 의류의 구성비를 전년 대비 1.5배 늘리고, 시리즈, 에피그램 등의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한 패션 대기업 관계자는 "정장은 제작이 까다로워서 오랜 업력을 가진 대기업만 할 수 있는 분야"라며 "장사가 안된다고 사업을 중단하면 회사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기에 쉽게 사업을 접을 수 없다. 그저 상황이 나아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김은영 기자(keys@chosunbiz.com)

2021.01.13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