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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도시바 메모리는 과연
30조원의 가치가 있을까

by조선비즈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몸값'이 최대 30조원까지 뛰어올랐습니다. 현지 외신을 통해 대만 폭스콘이 1차 입찰에서 30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베팅한 것으로 알려져 반도체 업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인수가액이 3배 가까이 뛰어오른 셈입니다. 전 세계 반도체 인수합병(M&A) 역사상 이렇게 짧은 기간에 몸값을 부풀린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도시바는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의 약 20% 수준을 점유하고 있는 메모리 업계 터줏대감입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상용화한 기업이며, 아직도 삼성전자 (2,131,000원▲ 69,000 3.35%), SK하이닉스 (52,200원▼ 200 -0.38%)등 거대 메모리 기업으로부터 매년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기술 사용료를 거둬들일 정도로 원천 기술력을 자랑합니다.

 

도시바를 3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쏟아부어 인수할 가치가 있을까요. 도시바의 몸값이 10조원에서 30조원으로 뛰어오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도시바의 미래 가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보다는 기술 유출을 둘러싼 각국 정부와 기업의 눈치 싸움, 중국의 메모리 산업 진출에 대한 공포심이 온갖 루머와 뒤섞여 있는 혼전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도시바 메모리는 과연 30조원의 가치

도시바는 지난달 29일 메모리 반도체 사업 매각을 위한 1차 입찰을 마감할 예정이다./ 블룸버그 제공

도시바 쟁탈전 과열 양상...현지 언론서는 '찬밥'

일본 현지의 IT 전문 매체들은 도시바 메모리에 대한 시각이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도시바가 영위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산업이 결과적으로는 시스템 반도체처럼 창의적인 기술보다는 생산성으로 승부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어차피 중국계 기업들이 독식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실제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의 지분 20%만을 매각한다는 결정을 했을 때 가장 앞장서서 비판의 수위를 높였던 것도 일본 언론입니다. 지지통신, 닛케이신문을 비롯해 다이아몬드지, 현대비즈니스 등 대표적인 경제주간지들도 메모리 사업을 100%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현대비즈니스는 업계 고위 관계자의 기고를 실어 '도시바 메모리의 경쟁력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 하락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빨리 팔아치우는 것이 낫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시바 메모리 입찰이 시작된 이후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 등 대형 메모리 기업뿐만 아니라 애플, 아마존, 브로드컴, 폭스콘 등 각계 글로벌 기업들이 잇달아 입찰에 나서자 현지 매체들은 놀랍다는 반응입니다. 입찰금액도 이 매체들은 10조원 수준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지만 현재는 30조원까지 치솟은 상황입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일본의 한 경제지 기자는 "도시바 메모리의 인수가액이 최근 낸드 시장 쇼티지(shortage)와 맞물려 급상승하고 있고, 도시바 경영진 또한 이를 최대한 레버리지(leverage)로 삼고 있다"며 "하지만 실제 20조원을 주고 도시바를 인수할 정도로 어리석은 행동을 할 기업은 중국계 말고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핵폭탄'을 쥐고 있는 도시바의 암묵적 경고

도시바가 이같은 현지 언론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몸값을 30조원까지 띄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포'입니다. 도시바가 보유하고 있는 메모리 기술은 한국, 일본, 미국 기업들에게는 나름 '유용한' 기술이 될 수 있겠지만, 이 기술이 중국계 기업으로 넘어가면 '핵무기'와 다름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도시바 메모리는 과연 30조원의 가치

도시바의 요카이치 메모리 반도체 공장 전경./ 도시바 홈페이지

도시바는 인수 초기부터 중국계 기업의 입찰을 전략적으로 현지 언론에 흘려왔습니다. SK하이닉스와 폭스콘이 손을 잡고 공동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루머가 대표적입니다. 이 뉴스는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 등의 경쟁 메모리 기업뿐만 아니라 애플, 아마존과 같은 기업에도 자극이 됐습니다. 만에 하나 폭스콘이 도시바 메모리를 인수할 경우 예측불허의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폭스콘은 샤프를 인수한 후 삼성전자에 LCD 패널 공급을 전격 중단했지요.

 

전자 제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낸드플래시 수급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공포가 퍼지자, 도시바는 이번엔 정반대의 메시지를 날립니다. 중국 기업에게 가급적 도시바 메모리를 매각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일본 현지 매체를 타고 전 세계 반도체 업계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폭스콘을 비롯한 중국계 투자회사들이 더욱 큰 '베팅'에 나서도록 하는 자극제가 됐습니다.

머리 복잡해진 SK하이닉스 "인수를 해도 문제, 안해도 문제"

이와 함께 웨스턴디지털, 마이크론 등과 함께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SK하이닉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1차 입찰에 10조원에 달하는 가격을 냈지만, 현재 상황에 비춰볼 때 2차 입찰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입찰가를 써내야 합니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들어 'SK하이닉스가 인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속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도시바 매각과 관련해 SK하이닉스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일본 정부 채권단의 관리 혹은 중국 이외의 재무적 투자자가 인수하는 것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도시바의 낸드 기술을 통해 SK하이닉스는 낸드 분야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얻게 되지만 반대로 급격한 재무 상황 악화로 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높다"며 "반대로 인수하지 않을 경우 경쟁 메모리 기업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처하거나 최악의 경우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출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황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