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은 홍길동이 아니다

[비즈]by 비즈니스워치

고구마 450t·다시마 2000t 전화 한 통에 판로열려

농어민 살리자는 취지 공감속 근본적 대책 필요도

"상품의 제품화 절실…지속가능한 구조 만들어야"


최근 왕고구마와 다시마 악성 재고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전화 한 통에 처리됐습니다. 백 대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과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백기사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백 대표와 백기사들의 통 큰 결단에 소비를 통해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왕고구마와 다시마를 키우는 농어민의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요. 아쉽게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을 확률이 큽니다. 백 대표 덕분에 급한 불은 껐지만, 수급원리를 거스르는 기본문제는 또다른 문제이니까요.


매번 백 대표와 백기사들이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백 대표의 '매직' 이면에 존재하는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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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특히 농수산물 업계에서 백 대표가 언급한 재료들은 가격 추이가 변할 정도죠. 지난해 백 대표가 유튜브에서 '만능양파볶음'을 만들자 당시 40% 이상 떨어지던 양파가격이 소폭 오름세로 돌아선 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근 백 대표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활로를 뚫기 어려워 재고가 쌓여있던 해남산 왕고구마와 완도산 다시마의 대량유통에 성공시켰습니다.


대량판매가 이뤄진 첫 번째 상품은 고구마입니다. 지난 4월 방송된 SBS의 예능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에서 백 대표는 전남 해남의 한 농가를 찾아 재고로 쌓여있는 450t가량의 왕고구마 판매에 나섰습니다.


백 대표는 카메라 앞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에게 전화해 왕고구마의 매입을 요구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2월에도 백 대표의 전화를 받고 강원도산 '못난이감자' 30t을 사들여 이마트를 통해 유통해준 바 있습니다. 정 부회장은 "알아보겠다"는 답을 전했습니다. 방송이 끝난 뒤 이마트는 해남산 왕고구마의 특판에 나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최근에는 완도산 다시마가 주인공입니다. 백 대표는 완도를 찾아 다시마 재고 2000t이 쌓여있다는 고민을 듣고 다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함 회장은 "다시마가 1장 들어가는 라면에 2장을 넣겠다"라며 흔쾌히 다시마 매입을 결정했습니다. 이후 오뚜기는 완도산 다시마가 2장 들어간 오동통면의 한정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왕고구마와 오동통면 모두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이마트는 왕고구마를 판매하는 동안 고구마 전체 매출이 전년대비 218%나 올랐습니다. 오뚜기의 온라인쇼핑몰 오뚜기몰은 배송지연사태까지 겪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재고처리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일회성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고구마와 다시마의 재고를 처리했더도 수급원리는 거스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백 대표가 팔아치운 왕고구마는 보통 쉽게 접하던 고구마보다 크기가 큽니다. 하지만 청과업계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크기가 큰 고구마보다 작은 고구마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소비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식사 대용으로 고구마를 주로 먹었지만, 최근에는 건강 간식이나 다이어트 식품으로 고구마를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자레인지에 넣어 쉽게 익힐 수 있는 크기와 모양이 인기입니다.


다시마는 어떨까요. 수협 수산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최근 수년간 다시마의 재고는 크게 늘고 있습니다. 생산량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다시마 생산량은 66만t입니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김과 미역 생산량을 추월한 수치입니다.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2004년 기점으로 전복양식이 증가하면서 전복 먹이용으로 생산을 크게 늘린 결과입니다. 최근 수년간 전복 소비량이 줄자 다시마가 쌓이기 시작한 겁니다. 생산량을 제때 줄이지 못했습니다.


왕고구마와 다시마 재고는 냉정하게 말해 시장예측 실패 사례입니다.


관련 전문가들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상품이 창고에 쌓여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각 협회가 가공상품 개발과 시장조사, 상품기획 등에 더 투자를 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원재료 수준의 '상품'을 가공해 소비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낙삼 공주대학교 외식상품학과 교수는 "매년 못생긴 감자와 왕고구마는 나올 수밖에 없으며, 대안은 오로지 가공뿐"이라며 "하지만 가공상품 판매를 위한 시장조사와 상품기획과 생산설비에 투자하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재고가 쌓인다고 손을 놓고 '왜 우리 동네는 백종원이 안 오느냐'고 한탄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백 대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농어민과 농협·수협 등 협동조합, 그리고 정부가 조금 더 고민해야 할 부분 아닐까요.


[비즈니스워치] 강현창 기자 khc@bizwatch.co.kr

2020.07.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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