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강철비' 사업 감추는 이유

[비즈]by 비즈니스워치

분산탄, 살상범위·불발탄 탓 '비인도적' 지탄

투자유치, 태양광사업 등 발목…분할 결정


"환영 남조선폭파집단!" 1990년 한화그룹 고위 관계자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이 내건 현수막 내용입니다. 한화그룹의 당시 명칭인 '한국화약그룹(Korea Explosive Group)'을 중국식으로 번역해 한국을 '남조선'으로, 화약을 '폭파'로 바꿔 표시한 것이었습니다. 테러 집단을 연상케 하는 호칭에 화들짝 놀란 한화는 1993년부터는 지금의 축약한 사명을 쓰게 됐습니다. 영문명도 'Hanwha'로 바꿨습니다.


이런 옛 얘기를 왜 꺼냈냐고요? 해프닝을 겪어가며 불가피하게 사명을 바꿨지만 여전히 한화그룹의 뿌리는 화약사업과 이에 파생되는 방위사업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여서랍니다.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 자체에 방산 부문을 꾸리고 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등 방산 계열사도 여럿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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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분기 ㈜한화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서도 호조의 실적을 낸 것도 방위사업이 제 몫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화의 화약방산 등 제조부문은 전년동기 대비 매출이 20.8% 늘어난 4751억원, 영업이익은 189.7% 급증한 25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자회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매출은 1조27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6% 늘었고, 영업이익은 32억원으로 흑자전환했습니다.


하지만 한화의 방산 사업 가운데는 '아픈 손가락'이 있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며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 무기로 손가락질을 받게 된 '분산탄' 얘깁니다.

막강화력 '분산탄'

분산탄은 '집속탄'으로도 불립니다. 커다란 '모탄(母彈)' 안에 조그마한 '자탄(子彈)' 수백개가 들었습니다. 탄은 항공기, 지상 발사대 등을 통해 투하되거나 발사됩니다. 모탄에서 분리된 자탄이 넓은 범위의 적진에 피해를 입힙니다. 하늘에서 자탄 수백발이 떨어지는 모습에 '강철비(Steel Rain)'라고도 불립니다.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죠.


분산탄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넓은 범위를 타격한다'는 게 무기로서 가진 강점입니다. 순항미사일이나 유도탄이 탄두에 센서 등 각종 복잡한 기기가 들어가야 하는 것과 달리, 분산탄은 구조가 단순해 단가도 비교적 저렴합니다. 살상 면적은 최대 2만2500㎡(6900평)에 이르기도 합니다. 표적을 정하고 목표물을 타격하는 '순항미사일'의 폭발 범위가 약 1000㎡(300평)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수십 배 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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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속탄 단면. 커다란 모탄 안에 자탄 여러 개가 들었다./사진=stopexplosiveinvestments 사이트 갈무리

하지만 분산탄은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자탄 불발률이 높다는 구조적 문제점이 지적됩니다. 미사일은 대개 목표물에 명중할 경우 그 반작용으로 내부 '격침나사'가 폭약을 폭발시키는 '기폭관'을 때려 폭발물이 연쇄적으로 터지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분산탄의 자탄은 기폭에 필수적인 운동에너지가 일반 미사일보다 떨어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탄은 크기가 작고, 무게가 적게 나가기 때문에 진흙이나 수풀, 하천 등에 자유낙하하면 지상에 불발탄으로 남기 쉽습니다. 일례로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내 무장단체 헤즈볼라 간 전투에서 쓰인 분산탄 자탄 중 40%가 불발탄이 돼 남은 것으로 국제연합(유엔)이 추산할 정돕니다.

국제적 '비호감'

이런 분산탄의 장단점은 모두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이라고 지탄받습니다. 타격 범위가 넓다는 장점은 인명피해를 무차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불발탄이 많다는 단점은 전후에까지 민간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특히 불발 자탄은 하늘에서 쏟아진 '공중 지뢰'가 되는 셈입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에 따르면 분산탄 피해의 98%가 민간인에게서 발생하며, 이 가운데 33% 이상이 어린이라고 합니다. 전투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민간인의 안전을 강조하는 '제네바 협약'에 분산탄이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분산탄 사용을 금지하자는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됐습니다. 유엔은 2010년 '집속탄 금지 협약'을 발효했습니다. 여기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노르웨이,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100여개국이 조약 당사국으로 참여할 정도로 각국은 분산탄 사용 금지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당장 영토를 맞대고 있는 북한이라는 위협으로 인해 분산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분산탄 투자규모가 세계 2위에 오를 정도로 이 무기를 전략적으로 키워왔습니다.

한화솔루션까지 '탈 날라'

다시 한화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이런 우리나라 방위정책에 발맞춰 ㈜한화는 분산탄을 군에 꾸준히 납품해왔습니다. 최근까지도 다연장 로켓포 '천무' 분산탄 버전을 2021년까지 약 400억원을 들여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분산탄은 모탄 한 발에 든 900개의 자탄으로 축구장 3배 면적을 타격할 수 있는 화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화는 그렇게 공들이던 이 분산탄 사업을 지난 7월30일 떼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물적 분할을 통해 신설법인 '코리아 디펜스 인더스트리'를 세우기로 했죠. 그 배경에는 기업으로서는 분산탄 사업 때문에 받는 국제사회에서의 비판보다도 훨씬 아픈, '현실적 불이익'이 있습니다.


노르웨이 연기금은 자신들의 '투자 블랙리스트'에 ㈜한화를 2007년부터 13년째 올리고 있습니다. 역시 군에 분산탄을 함께 납품하는 풍산과 말이죠. 작년 기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를 자랑하는 이 연기금뿐만 아니라 네덜란드공무원연금, 스웨덴 연금펀드, 덴마크 공적연금 등 유수 연기금들도 ㈜한화를 '투자배제' 목록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분산탄 등 일부 군수사업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분산탄 사업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투자 유치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 것이죠.


게다가 다른 계열사 사업까지 부정적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화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는 태양광사업에 사달이 났습니다. 재작년 말 네덜란드 일부 금융회사들이 한화솔루션(한화큐셀 흡수)과 신규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한화솔루션 모회사(지분율 36.9%)가 분산탄을 생산하는 ㈜한화라는 이유에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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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큐셀 독일 기술혁신센터에서 진행 중인 태양광 모듈 품질 테스트/사진=한화솔루션 제공

현지 태양광 패널 설치 기업 '잔준(Zaanzon)'은 그 이후 한화솔루션과 거래관계를 끊기까지 했습니다. 한화솔루션은 세계 2위 규모인 유럽 태양광 발전시장에서 부품 1위 업체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모기업 방산사업 탓에 사업이 헝클어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이런 고초를 겪은 ㈜한화는 분산탄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면 금융시장에서도, 사업 파트너들에게서도 손가락질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겁니다.


하지만 새 계열사로 분산탄 사업을 넘긴다 하더라도 그룹 내에서 이 사업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감추는 데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방위사업이다보니 매각도 간단치 않습니다. 일단 분산탄 사업을 떼어낸 한화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지켜볼 만하겠습니다.


최형균 기자 chg@bizwatch.co.kr

2020.08.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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