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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그린란드로부터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by여행 매거진 브릭스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크리스마스와 새해 휴가의 끝자락에는 학교 시험이 있었고, 후에 회사에 복귀했다.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공부하면 일하고 싶고, 일하면 공부가 그립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자’ 내 인생은 스무 살 이후로 그렇게 공부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 어떻게 그린란드를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분명, 고등학교 세계지리 시간이었겠지만, 오랫동안 나의 비루한 상식으로 그곳은 이글루에 사는 에스키모들의 땅이었다.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Mads Pihl @ Visit Greenland

나를 움직인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어느 날, 나는 지구의 북반구, 그중에서도 위쪽에 위치한 새하얀 얼음덩어리 섬을 발견했다. 분명 그린란드(Greenland, 초록 땅)라고 쓰여 있는데, 새하얀 섬이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Greenland의 이미지를 검색했다. 새하얀 빙하와 눈에 둘러싸인 알록달록한 색의 집들, 세상에 이런 곳도 존재하는 구나!

 

그게 2010년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도쿄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이러한 것들을 하고 싶다’고 자주 말하는 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꿈을 실현시키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말해 버렸으니, 지키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거다. 일본에서 일하면서도 주변인들에게 “나는 여름에 그린란드를 여행할 거야”하고 말하고 다녔다. 6개월간 모은 돈을 한 달 만에 다 쓰긴 했지만, 일곱 도시의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닌 그린란드 여행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고, 결국 내 삶의 모습을 바꾸고 말았다.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Mads Pihl @ Visit Greenland

보통 그린란드의 회사 업무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야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이 끝나고 나서도 자기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크리스마스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출근할 때, 그리고 퇴근할 때에도 밖이 컴컴해서 기분이 우울했었다. 하지만 이제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퇴근길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이제 겨울이 가고 있는 건가? 봄이 오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할 때 즈음, 하얀 눈은 아직 제 역할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는 듯 찾아오고 또 찾아온다.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마치 영화 <투모로우>를 보는 듯한, 재난 영화 같은 날씨가 며칠 간 계속된다. 하루는, 공부도 일도 쉬는 날이어서 창밖으로 그 엄청난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날씨에 차들이 다니는 것도 신기하고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을 걷는 것도 너무나도 신기했다.

 

눈보라를 헤치며, 한 엄마가 두 아이가 탄 썰매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심한 눈보라에 뒷자리에 탄 아이가 그만 썰매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몇 발자국 앞으로 더 썰매를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썰매에서 떨어진 작은 아이는 이내 곧 울음을 터뜨렸고, 그제야 엄마는 아이가 썰매에서 떨어졌음을 인지했다.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오늘 아침도 밖은 눈보라로 가시거리가 5미터도 되지 않는 날씨였다. 제설차와 제설 작업인부들은 그 거센 눈보라 속에서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 출근 직전, 나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눈이 덜 쌓였을 큰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평소에 다니는 지름길을 택해서 눈과 추위를 덜 맞이할 것 인가. 나는 평소대로 지름길을 택했고,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허리까지 쌓인 눈 속에서 ‘아, 왜 여기로 왔지?’ 후회해도 늦었다. 한번 들어선 지름길을 뒤돌아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길을 걷고 있지 않았다. 길은 없어진 지 오래고, 마치 내가 북극의 탐험가라도 된 듯,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나만의 길을 만들고 있었다. 가끔 부모님께 연락이 오면 늘 눈길, 빙판길 조심하라고 하는데, 눈에 허리까지 파묻혔으니 넘어질 수도 없다. 평소보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회사에 무사히 도착해 동생에게 이 엄청났던 출근길 이야기를 톡으로 들려주었다. 눈이 허리까지 왔다고 하니, 얼마 안 왔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내 키가 크지 않다는 게 함정이지만, 정말 눈이 많이 왔다. 믿어주길 바란다.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생각해보니 이 날은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이런 눈이 재앙이었나 보다. 그린란드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출근길이 아니었나 싶다. 제설작업이 끝난 퇴근길은 출근길보다 훨씬 수월했다. 바깥은 분명히 추웠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등에 땀이 흥건했고 언덕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다리와 어깨에 힘을 너무 많이 줬는지 피곤하기까지 했다.

 

‘아, 눈이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오는 거야.’ 하고 생각하다 보니, 나는 그린란드에 있고 지금은 겨울이다. 눈은 거침없이 와야 하고 놀랄 만큼 추워야 당연한 나라다. 가끔, 엄청난 눈보라 속을 걸으며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그냥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참, 나 그린란드에 있지.’ 나는 그렇게 너무나도 당연한 그린란드의 새하얀 겨울 속에 있다.

그렇게 당연한 그린란드의 겨울

표지사진 ⓒMads Pihl @ Visit Greenland

글/사진(6~11) 밤하늘은하수 

글쓴이 밤하늘은하수는 세계 최대 섬인 그린란드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린란드 대학교에서 West Nordic Studies 전공으로 사회과학석사과정 중에 있으며, 그린란드 관광청 (Visit Greenland)에서 Student Assistant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