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by여행 매거진 브릭스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비어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양복을 입은 신사, 맥주 맛 한 번 봐보자고 시골에서 상경한 촌뜨기, 문 열 때 들어와 문 닫을 때까지 죽치고 앉았던 애주가 혹은 중독자까지, 하루 800명이 넘는 손님이 도쿄 신바시新橋의 ‘비어홀’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맥주는 돈 좀 만지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서양인이 그 이름을 지은 작명법만큼이나 비어홀의 사업 방식은 혁신적이었다. 500mL <에비스 생맥주> 한 잔이 불과 10전이었고, 위장이 작은 사람을 위한 250mL 잔도 한 푼 더 받는 거 없이 딱 반값이었다. 당시 괜찮은 식당 덮밥 한 그릇이 30전이었다. 오백 석 잔이면 덮밥 한 그릇보다 배가 더 부른 건 물론이거니와 덤으로 기분까지 좋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전승되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마차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온 한 촌부는 이곳에서 맥주라는 놈을 처음 맛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캬, 거 참 시원하다. 근데 좀 씁쓸하네.”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삿포로 '개척사 맥주'

삿포로 맥주 박물관의 비어홀에서 <삿포로 개척사(가이타쿠시開拓使)>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홀로 앉은 내 기분이 딱 그와 같았다. 전날 마신 <삿포로 클래식> 여섯 잔이 채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이 잔을 비워도 되는 것인가,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한낮에 마시는 이 개척사 맥주가 해장술이 될지 이대로 날 호텔 방에 처넣을 긴급영장이 될지는 역시 마셔봐야 답이 나올 일이었다. 평소 편의점 ‘수입 맥주 4캔 만 원’ 행사의 노예로 살면서도 삿포로 맥주는 고려조차 해 본 적 없었는데, 삿포로에 온 후로 주야장천 삿포로만 마시고 있었다. 하긴 삿포로에선 “생맥주 한 잔 주세요.” 라는 말이 “<삿포로 클래식> 한 잔 주세요.”와 동의어나 다름없다. 딱 한 번, 어느 식당이 <기린 생맥주>를 팔았다. 그 기린 맥주를 마시며 이상하게도 나는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일본의 맥주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맥주 제조의 역사를 알고 싶어서는 물론 아닐 테고, 공장에서 갓 나온 맥주를 마시기 위함이다. 어떤 곳은 견학을 마치면 한 잔을 무료로 준다고 하고, 어떤 곳은 입장료에 샘플러 석 잔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도 500엔을 내고 참여할 수 있는 프리미엄 투어가 있었지만, 나는 그냥 자유롭게 관람하는 무료입장을 택했다. 그래서 그런지 맥주를 공짜로 주지는 않고, 그냥 내 돈 내고 자판기에서 티켓을 사서 바꿔 마셔야 했다. 게다가 이곳은 말 그대로 박물관이지 현재 삿포로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도 아니었다. 삿포로에서 뭔가 시원한 걸 마셨다 싶으면 그게 <삿포로 클래식>일 정도로 발에 치이는 맥주인데 굳이 이곳까지 와야 했나 의문스러워지는 순간. 하지만 나는 일종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전날 맥주 여섯 잔을 함께 마셔 준 일본인 류가 이곳에 가보라고 권했기 때문이었다.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홋카이도는 삿포로 맥주"

류를 만난 건 내가 묵던 호텔 건너편, ‘인터내셔널 바’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인 술집 ‘TK6’에서였다. 그 수식어를 허투루 쓴 건 아닌지 실제로 외국인 손님도 여럿 있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인테리어에도 미국의 펍 같은 느낌이 배어있었으며, 무엇보다 주인이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인터내셔널한 곳이었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던 그녀에겐 일본인 특유의 사근사근한 서비스가 오래된 맥주의 거품만큼도 없었다. 걸걸하게 웃고, 손님이 사는 맥주를 절대로 사양하지 않으며, 유창하게 영어로 이야기하고 소리도 지르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타박 주기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실내 사진을 찍다가 다른 손님들하고 친해진 후에 허락을 받고 찍으라고 그녀에게 핀잔을 들은 나는 홀로 의기소침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버르장머리 없다고 이모에게 혼난 어린아이 같았다.

 

그때, 역시 홀로 온 류가 내 옆에 앉았다. 바 테이블도 거의 만석이었기 때문에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묻고 답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의 다른 쪽 어깨에는 벽걸이 TV 속 축구 경기에 푹 빠진 뉴질랜드 남자의 건방진 어깨가 붙어 있었다. 누가 봐도 국적도 다르고 동행 같지도 않은 우리 세 남자 앞에는 각자의 술 취향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었다. 매끼 맥주를 마셨더니 이젠 좀 지겹다며 나는 진 토닉을 마시고 있었고, 류는 이 바에서 가장 저렴한 생맥주인 <삿포로 클래식>을 마시고 있었으며, 사람을 쳐다보는 것도 아주 건방진 매력이 있던 뉴질랜드 남자는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 수입 병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다양한 주류를 제공한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가끔 민감한 손님도 있고,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잖아요?”

 

역시 막 그즈음에 TK6의 사장은 나에게 당근을 던져주고 있었다. 나는 금세 기분이 풀어져 진 토닉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아마도 하와이쯤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은 그녀는 누구라도 허물없이 대하는 것으로 장사의 맥을 짚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이라고 답하자 류가 관심을 보였으며, 우리는 간단한 통성명과 신변잡기를 공유하게 되었다. 곧 사장의 관심은 세 남자 중 그나마 가장 멀끔한,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건방질 만큼 일본어도 유창하게 잘하던 뉴질랜드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바 테이블에 홀로 앉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남자는 삿포로에서 왔다고, 여기서 몇 년째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뉴질랜드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잠시 후에 들었다.) 어쨌든 술김에 남의 사정에 호기심이 생긴 나와 류는 자연스레 귀를 그쪽으로 열어두었고, 서로 뉴질랜드 남자의 묘한 건방짐에 반감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누가 이걸 들여놓으라고 샘플로 갖다 줬는데 마셔들 봐요.”

 

나란히 홀로 앉은 세 남자의 꼴이 처량했거나 우스웠는지 사장이 맥주 한 병을 꺼냈다. 미국 동부에서 온 <브루클린 이스트 IPA>였다. 라거보다는 에일을 좋아하는 나는 이미 한국 마트엔 쫙 깔린 지 오래라고 굳이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맥주는 이 나라가 앞서있지 않나, 누구 말마따나 맥주 맛도 모르면서 괜히 망신이나 당하지 말자고 잠자코 모르는 척 삼 분의 일 정도 채워진 작은 잔을 받았다. 세 남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일본 맥주는 영 맛이 없는데 이건 괜찮군.”

 

그렇게 뉴질랜드 남자는 일본 맥주도 발아래로 놓았고, 어쨌든 IPA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음, 침묵으로 긍정했다. 하지만 류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마시던 <삿포로 클래식>을 다 비울 때까지 사장이 맛보라며 준 맥주를 비우지 않았다. 그냥 <삿포로 클래식> 한 잔을 더 주문할 뿐이었다.

 

“이게 제일 맛있어요. 마셔 봐요. 최고예요.”

 

오늘만 해도 두 잔은 마셨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마침 점점 늘어나는 술값이 부담스러워진 찰나라 나는 류의 기분도 맞춰줄 겸 같은 걸 주문했다. TK6는 선불이었다. 천 엔 지폐를 내고 맥주 한 잔과 500엔 동전을 받은 다음, 십여 분 후에 또 그 500엔 동전을 반납하고 새 잔을 받아 마시는 게 핀볼 게임 마냥 즐거운 곳이었다.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니카 위스키' 또한 홋카이도를 기반으로 하는 주류 업체다.

어느 정도 취해서 그럴까, 밥집에서 반주로 먹을 때보다 <삿포로 클래식>은 시원하고 청량하며 마셔도 마셔도 질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류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물여섯이고, 한 살 연상과 결혼한 지 갓 일 년이 됐는데 자정이 넘은 이 시각까지 혼자 술을 마시고 앉아 있으며,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배우 중에선 특히 김태희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술은 삿포로 맥주였다. 구글 번역기까지 켜둔 채, 더듬더듬 일본어로 말할 때는 존댓말을 쓰는데 더듬더듬 영어로 말할 때는 왠지 반말을 나누고 있는 것 같은 사이였다, 우리는. 슬슬 어지럽기 시작하고, 어느덧 새벽 한 시가 넘었으며, 축구 경기가 저렇게 길었던가, 흐리멍덩한 가운데 뉴질랜드 남자는 아직 TV에 열중해 있었다.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은데 가장 궁금한 한 가지씩이 두 남자에게 남아 있었다.

 

“이 시간까지 술 마시면 부인이 뭐라고 안 해?”

 

“뭐라고 하지. 지금도 계속 문자가 오고 있어.”

 

이 친구, 주변 사람 속 썩이는 데 일가견이 있구만. 그러나 밤늦게까지 몸으로 하는 고단한 일을 한다고 하니 그게 뭔진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를 이해해 주기로 한다. 그리고 그도 그 순간 가장 궁금했던 걸 나에게 물었다.

 

“내일은 뭐 해?”

 

딱히 계획한 바는 없다고 답하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가 봐. 맥주도 싸고 최고야.”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어쩐지 류와 닮은, 미후네 도시로가 등장한 1970년 삿포로 맥주의 광고 포스터.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오래된 간판들.

일본 최초의 비어홀에서 처음으로 맥주를 마신 시골 남자의 말처럼 숙취 중에 마시는 <삿포로 가이타쿠시> 맥주는 시원하고 씁쓸했다. 편의점에서 사 마실 수 있는 삿포로 캔맥주나 이 도시에 온 이후로 줄곧 마셔왔던 생맥주보단 어딘지 모르게 탁한, 그것이 숙취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 그대로 고된 노동 이후에 어울리는 술이었다.

 

1869년, 에도 정부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홋카이도를 개척하기로 하고, 그 업무를 추진하는 ‘개척사’를 설립한다. 춥고 황량하다고 하여 본토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홋카이도가 일본의 방화벽이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린 정착지로 떠오른 셈이다. 물론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가 그러했듯 그 씨앗을 싹 틔우는 데 필요한 거름은 다름 아닌 인간의 피였다. 홋카이도의 원주민이었던 아이누 족은 민족 말살 정책에 의해 학살당하고, 살던 집을 빼앗겼으며, 지금껏 살아온 전통 양식대로 사는 것도 금지당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사회적 차별을 피해 자신의 뿌리를 숨긴 채 살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우리와도 악연이 있는 구로다 기요타카는 개척사의 차관으로 부임했다가 곧 장관으로 올라서는데, 그것이 구로다의 잔인한 성격을 잡음을 없애는 데 잘 활용하라는 에도 정부의 노림수였을 수도 있다. 또한, 평소엔 땅을 일구고 유사시에 전투를 하는 둔전병 역시 본토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온 범죄자를 받아 그 머릿수를 채우기도 했다.

 

그렇게 개척과 침략의 종이 한 장 차이를 넘나들며 원주민의 반발을 정리해 나가던 이들은 홋카이도에서 벌일 수 있는 신식 산업에 눈을 돌렸다. 이들의 눈에 띈 건 홋카이도 땅에서 자생하던 품질 좋은 홉이었다. 또, 이 섬의 기후는 맥주의 원료인 보리가 자라기에도 적합했다. 우연인지 어떤지 미국인 윌리엄 코플랜드가 요코하마에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소를 지은 해도 개척사가 세워진 1869년이었다. (이 ‘코플랜드 맥주’가 바로 ‘기린 맥주’의 전신이다.) 요코하마나 도쿄나 홋카이도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개척사의 일원들은 맥주라는 새로운 주류 산업으로 홋카이도를 부흥시키자는 마음 반, 언제 배를 통해 맥주를 받고 앉아 있나 직접 만들고 말지, 라는 당찬 개척 정신 반으로 삿포로에 맥주 양조장을 세우기로 한다. 그것이 1876년이었고, 1877년 마침내 <삿포로 맥주>가 세상에 등장했다. 삿포로 맥주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빨간 별을 달고 당당히 본토의 항구로 들어섰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삿포로 개척사 맥주>가 바로 그때의 맛을 재현한 맥주였다.

 

개척의 역사에 드리워진 어둠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어쨌든 별개인가 아닌가, 생각하면 꼭 피처럼 쓴 것 같잖아, 나는 효모라도 가라앉아있다는 양 맥주잔을 이리저리 돌렸다. 아니다, 그냥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입 안이 쓸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쩐지 비겁해지는 것 같지만 <삿포로 클래식>이나 마실 걸 그랬다, 그렇게 잔은 천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어홀 저편엔 같은 회사 사람으로 보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진을 치고 평일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낮술을 즐기는 사람들.

물론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개척 시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일본 역사책에도 누락된 일일 게 분명했다. 대신 일본 맥주의 역사만큼은 맥주 회사다운 꼼꼼함으로 정리를 잘해 놓았다. 1882년, 개척사가 해산하면서 개척사 양조장도 민영화되어 ‘삿포로 맥주’로 사명을 바꾸고, 일본 4대 맥주 회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경영 전략 면에선 도쿄에 첫 비어홀을 만들고 <에비스 맥주>를 대접하던 ‘일본 맥주’라는 회사가 한 수 위였던 모양이다. 이 ‘일본 맥주’는 ‘삿포로 맥주’는 물론 아사히 맥주의 전신인 ‘오사카 맥주’를 합병하여 ‘대일본 맥주 주식회사’라는 거대한 기업을 출범시켰다. 그러다 전후 1949년 9월, 독점금지법에 의해 다시 ‘일본 맥주’와 ‘아사히 맥주’로 분리되고 말았다.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일본제국은 오직 하나다, 라는 망상 때문이었는지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는 <삿포로>니 <아사히>니 하는 고유 상표 사용을 금지했는데, 이 해부터 다시 각자의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풀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맥주’는 그들이 권리를 가진 <삿포로>나 <에비스>라는 상표를 쓰지 않고 제 이름을 딴 <일본 맥주>를 열심히 팔기 시작했는데, 삿포로를 돌려달라는 원성이 워낙 자자해 결국 1956년에 <삿포로 맥주>를 되살리기에 이른다. <에비스 맥주>를 부활시킨 건 1971년이었다.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맥주양조소를 열 당시 사용했던 맥주통의 복원품.

맥주 맛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일본 맥주가 썩 맛있는 맥주는 아니라 하기도 하고, 촌부의 눈도 번쩍 뜨이게 했던 <에비스 맥주>는 개중에서 훌륭하다고 엄지를 들어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삿포로에 가면 삿포로 맥주만 마시게 된다. 홋카이도 한정 판매라는 <삿포로 클래식>을 “나마 비루(生ビ-ル)”라는 일종의 대명사 하나로 줄창 마시게 된다. 얼른 들어오라는 아내의 재촉을 본척만척하는 류도, 일본 맥주는 별로라고 말하던 건방진 뉴질랜드 남자도, 회식 중인 왁자지껄한 남녀 회사원들과 일 인석에 앉아 홀로 라면을 먹는 아저씨도, 하이네켄 로고와 헷갈린 바보나 맥주만 마시면 배가 부른데 어쩐지 이건 질리지 않는다고 감탄하는 나도 종국에는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를 주문하고 만다. 싸고, 청량하면서도 물 탄 듯 밋밋하지 않은 이 술을 어떤 약속처럼 들이킨다. 이젠 일본인과 거의 융화된 아이누 족의 후예들도 어디선가 이 술을 마시고 있을까. 침략의 역사와 슬픈 구전보다 빠르게 몸 안을 돌아다니는 알코올은, 어찌 됐든 얼른 기분이 좋아지는 편이 낫다고 우리를 속이는 중일까.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TK6 Bar & Grill

  1. 6 Chome-6-5-3 Minami 2 Jonishi, Chuo Ward, Sapporo, Hokkaido Prefecture 060-0062
  2. http://tk6.jp/

삿포로 맥주박물관

  1. 일본 〒065-8633 Hokkaido Prefecture, Sapporo, Higashi Ward, 北7条東9丁目1-1
  2. http://sapporobeer.jp

글/사진 베르고트
글쓴이 베르고트는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