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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의 화이트 템플

by여행 매거진 브릭스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의 화이트

치앙마이에서 치앙라이 주를 거쳐 태국 국경 마을인 치앙콩까지 가면, 라오스가 코앞이었다. 동남아시아 여행의 백미는 십 수 시간씩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데 있다. 이때 좌석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오롯이 에어컨의 유무다. 야간열차의 일등석은 호텔급의 침대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에어컨이 달려있기 때문에 일등석이다. VIP 버스는 정말 VIP들만 타는 게 아니라 에어컨을 쐬면서 좌석을 조금이나마 뒤로 젖혀 잠들 수 있기 때문에 VIP 버스다. 여행을 하다 보면 돈 씀씀이의 기준이 지역 평균에 맞춰지기 마련인데, 그래서 VIP 버스를 선택하는 일조차 망설여지고는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떴더니 기분이 몹시 나쁘다는 이유로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비용보다 이곳의 기차 일등석이나 VIP 버스 좌석 한 칸을 차지하는 비용이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라오스에서는 한국에서 폐차 위기에 몰린 버스를 수입해 현역으로 돌리는 걸 보고는 했는데, 앞 유리에 금이 간 정도에 그치는 VIP 버스가 그나마 안전해 보였다. 이곳에서 “VIP”란 말은 “Very Insecure Person(매우 불안정한 사람)”으로 새롭게 정의되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뱃길이었다. 치앙마이의 여행사들이 주력(?)으로 파는 2박 3일의 태국-라오스 간 이동 프로그램은 메콩 강을 따라 라오스 북쪽 국경에서 루앙프라방으로 내려가는 ‘슬로우 보트’가 메인이었다.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모두 10명이었다. 나중에 슬로우 보트를 딸 때가 되면 그렇게 모인 팀이 수배로 늘어나 거의 12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배에 오른다. (가이드북에서 말하는 안전 탑승 인원은 80명이다.) 그런 상황을 모르던 나는 2박 3일의 첫날, 순진하게 희희낙락하며 태국 북부를 달리고 있었다.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의 화이트

단체 여행이 흔히 그러듯,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 중간에 뭐 볼 만한 게 있으면 한 번 보고 간다는 보너스가 우리 프로그램에도 있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치앙라이 주 한복판. 미니버스가 거대한 휴게소 같은 곳에 멈췄다. 밥이라도 먹는 건가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저만치 앞에 새하얗게 빛나는 사원을 보았다. 별명도 화이트 템플White Temple인 그 사원은, 도무지 현실에 발을 디딜 줄 모르는 정신 나간 영혼들이 이 세상에 세워놓은 하나의 기념비였다.

 

왓 롱쿤Wat Rong Khun(롱쿤 사원)이라는 버젓한 이름이 있음에도 ‘하얀 사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말 그대로 건물 전체가 흰색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왔을 뿐이지 나는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나중에야 치앙라이를 여행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정도였다. 땡볕 아래 하얗게 솟은 사원은 괴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거대한 회반죽 덩어리가 반사하는 눈 부신 빛이 부담스러워서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망설여 질 정도였다.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의 화이트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이트 템플이 상징하는 바가 명확해졌다. 지옥, 또는 지옥 같은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이나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면 작은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이편은 지옥이고 다리 저편은 극락이었다. 그 둘 사이에 놓인 이 다리는 ‘윤회의 다리’라 불리는데,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불교의 교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하얀 외관만 독특한 건 아니었다. 다리를 건너기 전 지나야 하는 ‘지옥’을 구경할 때였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고, 고통에 차 구부러진 마디마디가 사실적으로 조각된 수많은 손이 땅에서 솟아있었다. 악취미라며 몸서리를 치는 와중,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영화 「프레데터」에 등장하는 잔혹한 우주 사냥꾼 프레데터의 팔이 하나 튀어나와 있었다! 난 좋아하지도 않았던 그 영화를 떠올리며,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사원에다 할 만한 장난질은 아닌데,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영화 주인공의 손은 그대로였다.

 

그제야 주변에 있는 조각상 대부분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경전 또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아귀나 수라 대신 러브크래프트식 상상력이 가미된 악마나 괴물의 형상들로 지옥을 구현해 놓은 것이다. 이걸 그대로 옮겨다가 ‘20세기 공포 영화 전시전’ 같은 곳에 가져다 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면 그런 전시가 끝나고 쓸모없어진 전시품을 사원 측에서 헐값에 사들였던가.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의 화이트

하지만 이 정도는 속세인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종단의 새로운 시도라고 봐줄 만했다. 정말 놀라운 건 본당 안에 있었다. 한쪽 벽면에 그려진 불화佛畵 속에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캐릭터들이 숨어있었다. 터미네이터, 해리 포터, 스파이더맨, 앵그리 버드, 쿵푸 팬더에 심지어 9.11 테러로 무너진 월드트레이드센터까지. 아무리 태국에 사원이 많다고 하지만, 일면 불경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속세의 이미지가 차용된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장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화이트 템들도 원래 이런 곳은 아니었다. 그저 허허벌판에 놓인 다 쓰러져 가던 사원에 불과했었다. 그것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축한 주인공은 치앙라이 출신의 비주얼 아티스트 찰럼차이 꼬싯삐빳Chalermchai Kositpipat이었다. 그는 태국 불교 예술과 현대적 이미지를 뒤섞은 작업으로 유명세를 얻었는데, 처음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태국 정부와 불교계는 물론 다른 예술가로부터도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하기야 이 사원에 차용된 소재만 하더라도 종교와 예술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세월이 흐르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이들이 늘어나 종교와 예술, 대중문화가 접점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건 훌륭한 사업 수완일 수도 있었다. 태국 북부를 여행하는 여행자 대부분은 서양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러하듯, 그들 역시 동양을 향한 막연한 환상을 안고 이 땅에 온다. 그런데 그곳에서 딱 그네들의 고향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니, 지나가는 길에라도 한 번은 들러보겠다는 호기심이 생길 것이었다. 그렇다, 화이트 템플은 사원보단 관광지라고 할 수 있었다.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의 화이트

일행을 모두 태운 미니버스가 다시 엔진을 가동했다. 서로 국적도 다르고 안면도 없는 여행자끼리 방금 본 사원에 관해 몇 마디 말을 나눴다. 태국인도 아니고 불교 신자도 아닌 내가 방금 본 사원은 좀 과하지 않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낸 이유는, 어쩌면 나와 이 사원의 설립을 백안시한 이들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동양의 정신을 공유하는 데 있는지도 몰랐다. 이것이 우리의 종교이고 우리의 예술이던가요? 아니면, 나 또한 형식에 급급한 꼰대에 불과한 걸까요? 

 

그러다가 문득 본당 한가운데에서 좌선을 하던 승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밀랍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무수한 관광객들 앞에서도 지워지지 않았던 경건한 분위기를 나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화이트 템플이 종교 예술이라면 으레 경전에 충실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틀을 완벽하게 깨부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쨌든 재미있으니까. 해리 포터나 쿵푸 팬더와 함께 해탈하자는 게 아니라 그들이 곧 속세의 번뇌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또한, 예술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게 내릴지 몰라도 그 표현에 한계는 없음을, 이름도 쓰기 어려운 아티스트는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니까. 방금 무엇을 보았던 건가, 나는 되물었다. 그러나 원래대로 돌아온 창밖의 풍경-나지막한 산등성이와 넓은 논밭의 연속-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의 화이트

글/사진 베르고트

글쓴이 베르고트는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