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여행]by 채지형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치앙라이의 시계탑. 8시가 되면 여러 색으로 바뀐다

태국 북부에는 치앙라이라는 아담한 도시가 있다. 십분만 나가면 울창한 숲을 볼 수 있고 고개만 넘으면 고산족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치앙라이는 도시 여행자보다는 자연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치앙라이는 역사도 깊다. 1262년 란나왕국을 세운 멩라이 왕은 치앙라이를 첫 수도로 삼았다. 치앙라이는 란나왕국이 치앙마이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왕국의 중심지였다.

 

치앙라이 도시 자체는 자그마하지만, 긴 역사만큼이나 역할은 크다. 라오스나 미얀마와 같은 이웃 나라로 이어주는 관문일 분만 아니라, 매싸이나 매싸롱, 두이퉁을 비롯한 태국의 아기자기한 태국 북부의 작은 마을을 이어주는 허브다. 그래서 외국 여행자들보다도 태국 현지 여행자들이 더 많다.

 

태국 북부 여행을 위해 들른 치앙라이. 치앙라이에는 야시장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치앙라이 시계탑 주변에서 열리는 주말 나이트바자이고, 하나는 고속터미널 옆에서 매일 열리는 나이트바자였다. 어차피 야시장인데 하나만 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양쪽을 가보고 알게 됐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치앙라이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주말 야시장

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맛도 중요하지만 눈길을 끄는 것도 중요해

치앙라이에서 머물던 토요일. 북부의 다른 마을을 여행하다 일부러 토요일에 맞춰서 치앙라이로 돌아왔다. 주말에 열리는 나이트바자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치앙마이나 방콕에서도 나이트바자에 가봤지만, 치앙라이의 나이트바자는 어떨지 궁금했다.

 

툭툭을 타고 도착한 나이트바자. 낮에는 차도 다니고 툭툭도 다니던 도로인데, 밤이 되니 장터로 변신해 있었다. 몇 시간 만에 노점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사람들은 자리를 깔고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들을 팔고 있었다. 파는 것은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노래도 팔고 먹을 것도 팔았다. 시끌시끌한 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역시 곳곳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야시장에 흥이 빠질수 없다.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거리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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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디페인팅 삼매경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양쪽 노점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사람들에 묻혀 흘러가야했다. 살까말까 고민하던 물건을 사기 위해 뒤돌아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출근길 9호선 급행처럼 대열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 문득 치앙라이를 친구에게 아담하고 고즈넉한 도시라고 소개한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복잡한 시장에서도 사람들은 쪼그리고 앉아 바디페인팅을 하고 있었다. 일회용 타투라고 해야 할 지, 바디페인팅이라고 해야 할 지 고민되지만, 몸에 뭔가를 열심히 그려 넣고 있었다.

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왼쪽) 섬세하게 만들어진 목공예품

(오른쪽) 박리다매! 1개 10바트, 12개 100바트(약 3800원). 저렴한 가격에 바구니 가득 이것저것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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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털실로 만든 여러 제품들. 지갑이 절로 열린다

(오른쪽) 꽃으로 만든 장식품

안쪽으로 들어가니 걷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그때 눈앞에 나타난 것이 목공예품이었다.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어 탐이 났지만, 크기와 가격을 보고 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 없이 쇼핑 가방으로 직행했던 품목은 ‘치앙라이’라고 쓰여 있는 작고 귀여운 노트와 벽걸이였다. 언제나 무게도 가격도 가벼운 아이들이 쇼핑 일순위다.

 

고산족 여인은 시장 한가운데 자리를 펴고 가방을 만들고 있었고, 수더분하게 생긴 여인은 털실을 가지고 앙증맞은 인형을 짜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지만, 현지인이 훨씬 많았다. 태국 북부로 여행 온 태국 각지의 사람들부터, 치앙라이의 젊은 연인들, 시장 구경 나온 가족들까지 다양한 현지인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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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달걀에 맛살과 팍치를 넣고 만든 길거리음식. 맛은 전하고 비슷하다 

(오른쪽) 아무리 먹어도 배부를 것 같지 않은 메추리알 후라이

야시장에서 인기 있는 집은 역시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들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를 것 같지 않은 메추리알 후라이와 따끈한 국물을 맛볼 수 있는 간이음식점 앞은 줄이 줄지 않았다. 아, 더운 나라에서 왜 따끈한 국물이 인기냐고 궁금해 할 수 있겠다. 태국도 추울 때가 있다. 특히 가을 이후의 태국 북부는 해발이 높아 밤이 되면 춥다. 그러니 따끈한 음식이 인기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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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나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야시장 노천식당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

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고속터미널 주변에 있는 치앙라이 야시장. 그림과 사진을 파는 갤러리도 있다

치앙라이에서 주말 야시장을 놓쳤다면, 매일 밤 고속터미널 옆에 있는 야시장을 찾아보자. 첫 인상은 그다지 반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건을 파는 상점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30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보고 남는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안으로 들어가야 치앙라이 야시장의 진정한 매력을 만날 수 있으니까.

 

고속터미널 옆 치앙라이 야시장은 시장이자 사교장이었다. 넓은 노천시장에서 공연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한잔을 즐길 수 있었다. 해 질녘이 되니 노란색 테이블이 하나둘 채워지더니, 아홉시가 가까워오니 수백석의 자리가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족들에게는 패밀리레스토랑이었고 친구들에게는 분식집, 연인들에게는 포장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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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을 자극하는 야시장의 먹거리들

노천식당이지만 파는 음식 종류는 수백 가지였다. 팟타이와 똠양꿍같은 태국의 대표 음식은 물론이고 알 수 없는 수많은 음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견과류와 매운 고추를 함께 올린 생선구이부터 고소해 보이는 곤충튀김, 보글보글 끌고 있는 전골, 먹기 좋게 잘라놓은 과일, 막 튀겨낸 스프링롤까지 하나같이 식탐을 자극했다.

 

그 중 하나를 쳐다보며 “니 크 아라이 크랍?”(이게 뭔가요?)라고 물었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름은 모르더라도 맛은 알아야지.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주문했다. 한 손에는 코끼리가 커다랗게 그려진 바지 세벌이 담긴 까만 비닐을 들고, 한 손으로는 튀김 한 조각을 먼저 입에 넣었다. 여기에 멀리서 들려오는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시원한 싱하 맥주 한잔을 마셨더니, ‘아, 이것이 여행의 맛이지’ 싶었다.

 

결국 치앙라이에 머물던 며칠간, 야시장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첫 날은 혼자였지만, 다음날은 버스에서 만난 미국친구와 함께 가서 더 많은 종류의 음식에 도전했다. 궁금한 음식을 하나씩 맛보며, 특별한 태국 북부 여행의 하루하루를 마감했다. 소박하지만 정이 넘치던 치앙라이 야시장, 마음이 답답할 때면 살랑살랑 산책하듯 드나든 그곳에서의 시간이 떠오른다.

살랑살랑 밤 마실, 치앙라이 야시장

저녁 아홉시쯤 되면 넓은 노천식당이 꽉 찬다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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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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