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마켓

[여행]by 채지형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포토벨로 시장에서는 한 가게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물건들이 다 달라서 하나하나 보다보면 시간이 훅 흐른다

“오래 된 것은 좋은 것이야”


지난 주 하얼빈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새로운 것만 반짝이는 것 같다는 푸념에 연륜이 묻어나는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익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아름다워졌다는 것이라고. 새것만 쫓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나보면 시간이 지닌 힘을 알게 된다고. 


오래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기원전 물건부터 1960년대 골동품까지 오래된 물건들을 볼 수 있는 시장이 떠올랐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골동품 시장, 포토벨로 로드 마켓(Portobello Road market)이다. 주말이 되면 오래된 것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곳. 창고에 박혀 있을 물건들이 당당하게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르는 곳. 런던의 대표 아이콘인 포토벨로 로드 마켓. 게다가 이 시장은 낭만영화의 대표주자인 영화 ‘노팅힐’의 무대가 아니던가. 왠지 그곳에 가면 노팅힐에 나오는 헐리웃 스타 안나와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 윌리엄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오래된 것들의 천국, 포토벨로 로드 마켓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알록달록 아름다운 건물들이 이어져 있는 포토벨로 시장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포토벨로 로드 마켓 가는 길에 만난 거리의 예술가

그래서 런던에 도착한 날부터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토요일에 가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 포토벨로 시장에 가기 위해서 언더그라운드 노팅힐 게이트 역에서 내렸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길거리는 이미 시장구경을 나온 이들로 북적거렸다. 길을 몰라도 물을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다들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거리의 예술가였다. 온 몸을 하얀 색으로 채운 거리의 예술가는 한동안 눈 한번 깜박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언제 움직이나 보자는 심산으로 팔짱을 끼고 쳐다보고 있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파스텔톤 건물들이 서 있었다. 본격적인 골동품 시장의 시작이었다. 그 곳부터 국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골동품들이 하나 둘 사연을 가지고 어지럽게 좌판에 깔려 있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할 수 없는 타자기, 누가 썼는지 모를 숟가락과 포크,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 지 상상도 안 가는 물건들. 오래된 물건들 하나하나가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저런 물건은 누가 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앤틱 제품들 속에 한참을 빠져 있다 보니, ‘지니의 요술 램프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게 됐다.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좌) 빈티지한 물건들이 포토벨로 시장의 인기 품목 (우) 식기류도 많다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곳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파는 물건에도 파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는 포토벨로 시장

요술 램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가 없을까 뒤져보다 마음에 드는 소품 하나를 발견하고 흥정에 들어갔다. 아프리카에서처럼 일단 20% 정도 내려서 가격을 불러 봤지만, 우아한 깃털 모자를 쓴 주인 할머니는 어렸을 적에 당신이 쓰던 것이라며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역시 에누리 없는 포토벨로 시장이다. ‘시장의 가장 큰 즐거움은 흥정에 있다’고 외치는 이들조차 이곳에선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 모습이 그다지 야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이곳이 ‘영국’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빈티지한 물건들이 포토벨로 시장의 인기 품목

가죽으로 만든 고풍스러운 여행가방도 탐났다. 가격을 물으니 무려 200파운드란다. 허름한 상태치고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놀란 토끼 눈으로 가방을 쳐다봤더니,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는 그 가방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랬다. 포토벨로는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사는 곳이라고. 역시나였다.


신기한 골동품을 구경하면서 한참을 내려오니, 상큼한 과일과 맛깔스러운 빵들이 펼쳐져 있었다. 어딘가에 헨젤과 그레텔이 숨어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큼지막한 빵들은 또 다른 동화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맛있는 빵과 과일, 다양한 향신료도 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맛있는’ 먹이를 잡는다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근위병을 본따 만든 인형들

에너지 충전을 위해 빵을 한 조각을 입에 무니, 신선한 청과물 시장으로 시작했다는 포토벨로 시장의 역사가 떠올랐다. 지금은 골동품 가게가 포토벨로 시장의 트레이드마크지만, 골동품 가게가 시장의 아이콘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다른 시장처럼 과일과 음식을 파는 시장이었는데, 1940년대 폐품장수들이 이곳에서 중고물건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골동품을 거래하는 이들이 시장에 하나둘 들어오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났고, 포토벨로 시장은 일반 시장이 아니라 골동품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이다. 


오늘 날의 포토벨로 시장은 앤틱 섹션(Antiques Section), 과일과 야채(Fruit&Veg), 새제품, 패션 마켓, 중고품 등 다섯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골동품들이 2km에 걸쳐 빼곡히 이어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다면 지도를 미리 보고 가는 것이 좋다. 골동품에 관심이 많다면 노팅힐 역에서 내리고, 귀여운 장식품이나 아기자기한 잡화를 사고 싶다면 래드브로그 그로보역에서 내리는 것이 효율적이다. 


시장은 일주일 내내 열리지만, 길거리 노점이 많이 서는 토요일이 가장 볼 것이 많다. 토요일이 힘들다면 금요일에 찾는 것도 괜찮다. 단 목요일은 오전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오후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어느 날짜에 가든 잊어서는 안 되는 것 한 가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것.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잡는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곳이니까.

TIP! 궁금한 것이 있다면, 포토벨로 웹사이트를 참고. 포토벨로에서 물건을 팔 수 있는 방법도 안내되어 있다. http://www.portobelloroad.co.uk

 

런던의 귀여운 아이콘, 포토벨로 로드

런던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기념품도 판다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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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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