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공주 석장리박물관

[여행]by 채지형

지난달 공주 석장리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공주와 부여, 익산에 있는 백제유적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후에 공주를 찾을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공주를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도 석장리박물관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었어요. 구석기시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거든요. 기대하지 않아서일까요. 생각지 못한 수확을 얻었습니다. 석장리박물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발견했거든요.

1974년 교과서에 구석기가 등장하게 된 배경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공주 석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공주 석

(왼쪽) 석장리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구석기시대를 재현한 움막. (오른쪽) 가로등도 특색있게 돌도끼 모양이다.

석장리박물관은 선사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구석기 유물 박물관이예요. 박물관 입구에 가면 주먹도끼를 쥔 거대한 손 모형이 서 있습니다. 앞에는 유유히 금강이 흐르고 있고요. 넓은 잔디와 초록빛 산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더군요.


석장리박물관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석장리 유물이 발굴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역사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답니다. 잠시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미국에서 여행온 대학원생이 석장리에 왔다가 뗀석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파른 손보기 연세대 교수가 석장리에서 본격적인 구석기 유물 발굴을 시작하고, 수차례 발굴을 통해 묻혀있던 한반도의 구석기 이야기가 책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석장리의 구석기 유물에 대한 내용이 처음 교과서에 실린 것은 1974년. 석장리 유물이 발굴된 이후 우리나라 교과서가 바뀌게 된 것이죠. 그래서 파른 손보기 교수를 한국 구석기 연구의 아버지라고 부른답니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그전까지 ‘일본보다 한국이 인류 정착이 늦었다’고 주장했었는데요. 1964년 석장리 유적지 발굴을 계기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공주 석

도구를 이용해 사냥하는 구석기 시대 생활상을 볼 수 있다.

구석기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긴 시대입니다.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를 24시간이라고 가정하면, 구석기시대가 차지하는 정도는 약 23시간 56분을 넘어갈 정도예요. 현생 인류가 오래된 것 같지만 구석기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죠. 석장리박물관에 있는 인류의 진화를 따라가다보니, 알파고가 만들어낼 시대에서 돌아보면, 오늘날이 어떻게 비춰질 지 궁금해지더군요. 

 

이곳에서는 대표적인 구석기 유물인 ‘주먹도끼’도 볼 수 있습니다. 주먹도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규격화된 도구로,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기록물이예요. 하나의 도구가 여러가지의 기능을 한다고 해서 구석기판 ‘맥가이버칼’이나 마찬가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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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도끼

열정이 만들어낸 파른 손보기 선생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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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작업에 여념이 없는 손보기 선생

박물관 중심을 자리하고 있는 주먹도끼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파른 손보기 선생의 기록물이었습니다. 흙이 잔뜩 묻은 노트와 손때 묻은 카메라, 낡은 자와 도구들이 마법처럼 그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책상 위에만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직접 흙을 나르고 장화를 신고 이곳저곳을 누볐더군요. 인디아나존스의 존스박사가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기록은 또 얼마나 꼼꼼한지. 어느 식당에서 무엇을 얼마에 먹었는지까지 상세하게 적으셨더군요. 발굴기록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파른 손보기 선생의 노트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고고학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들어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찌릿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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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으로 꼼꼼하게 남긴 기록과 당시 사용한 카메라. (오른쪽) 1975년의 석장리 발굴 관련 기록.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옆에 있는 파른 손보기 기념관으로 넘어갑니다. 그곳에 가면 더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파른 손보기 선생은 석장리 발굴과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고학과 역사 전반에 남긴 큰 발걸음들을 살펴볼 수 있거든요. 


손보기 선생은 고고학 용어를 우리말로 쉽게 바꾸는 데도 힘을 쏟으셨습니다. 이전에는 핸드액스나 수부처럼 어려운 용어를 써야했는데, 손보기 선생과 동료들 덕분에 한결 쉬운 주먹도끼나 뗀석기와 같은 용어를 갖게 된 것이죠. 서지학자로서의 공로도 큽니다. 고려의 금속활자가 서양 구텐베르그보다 200년 앞섰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분도 손보기 선생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는 석장리박물관에서 큰 스승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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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리 유적 발굴을 소재로 한 디오라마

만지고 타고 마음껏! 가족여행지로도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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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구석기시대에 살던 동물 모형. (오른쪽) 얼핏 보면 테마파크같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아이들에게 큰 인기다.

석장리박물관 야외 전시관에는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더군요. 곳곳에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모형을 세워놓아 테마파크에 온 것 같았어요. 선사시대 동식물을 복원한 모형도 어린이들에게 인기였습니다. 금강을 여유있게 바라보고 있는 구석기인 옆에 앉아보기도 하고, 동물을 잡기 위해 겨누는 도구를 만져보기도 하고요. 금지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마음껏 만지고 탈 수 있어 어린이들이 더욱 좋아하더군요. 금강과 박물관 사이에는 유채꽃이 활짝 펴 있어, 더 없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5월 5일부터 5월 8일까지 이곳에서 축제도 펼쳐진다고 해요. ‘2016 석장리 세계 구석기축제’라는 이름인데요. 구석기시대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연휴기간에 갈 곳을 정하지 못하셨다면, 구석기축제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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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보고 난 후에는 오리배를 타며 여유로운 봄날을 보내는 것도 좋다.

여행정보

* 석장리박물관 : http://www.sjnmuseum.go.kr 

* 2016 석장리 세계 구석기축제

기간 : 5월5일 ~ 5월8일

장소 : 공주시 석장리 박물관 일원

전화 : 공주시 문화관광과 관광축제팀 041-840-8112 / 1899-0088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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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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