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봄에 떠나는 새하얀 겨울 여행, 일본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설벽

[여행]by 채지형

여름 같은 봄입니다. 얼음 가득한 물로도 갈증이 가시지 않더군요. 춥다고 투덜대던 겨울이 벌써 그리워졌습니다. 문득 봄에 겨울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는 없을까 싶더군요. 두바이에 있는 실내스키장도 생각나고 하얀 눈을 쓰고 있는 히말라야의 산도 몽실몽실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멀지 않고,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겨울’이 생각났거든요.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특별한 겨울

일본 도아먀(富山) 현에 있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입니다. 그곳에 가면 겨울이 아직 숨 쉬고 있답니다. 뿐만 아닙니다. 눈으로 쌓인 18m 높이의 벽도 볼 수 있답니다. 거대한 벽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산책할 수도 있고요. 이 설벽(雪壁)은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두 달간만 열려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을 안겨주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이 느껴진답니다.

꽃 피는 봄에 떠나는 새하얀 겨울 여

눈 사이에 길을 내기 위해 부지런히 눈을 밀어내고 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죠. 특히 다테야마(立山)가 있는 지역은 일본에서도 눈으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연평균 약 7m의 눈이 내릴 정도니까요. 사람들은 고민했습니다. 이 눈을 어떻게 이용할까 하고요. 그러다 깜짝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눈밭 가운데 길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되어도 눈으로 쌓인 벽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게 말입니다.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현실이 되어, 다테야마의 명물 ‘눈의 계곡’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설벽은 약 15~20m의 키를 자랑하며, 무로도 고원에서 덴구다이라까지 약 500m 구간에 이어져 있습니다. 평지보다 기온이 낮아 싸늘하기도 했지만, 설벽의 놀라움에 온몸이 짜릿해지더군요. 

눈으로 만들어진 18m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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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남아있는 일본 북알프스의 봄날 풍경.

다테야마는 후지산, 하쿠산과 함께 일본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해발 3,015m의 산입니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해발 3,000m급의 일본 북알프스를 전차와 케이블카, 로프웨이, 트롤리버스로 횡단하는 세계적인 산악관광루트예요. 다테야마역에서 출발해 수령 1,000년이 넘는 나무숲을 산책할 수 있는 비조다이라, 고산식물들의 찬란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는 미다가하라,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하이라이트인 무로도,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댐인 구로베댐을 거쳐 나가노현의 오오기사와역까지 이어지는데요. 트레킹 마니아뿐만 아니라 북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일반 여행자에게도 인기가 높은 곳이죠.

꽃 피는 봄에 떠나는 새하얀 겨울 여 꽃 피는 봄에 떠나는 새하얀 겨울 여

(왼쪽) 다테야마 알펜루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다테야마역. (오른쪽) 가파른 경사를 타고 오르면 비조다이라역에 도착한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이렇게 자세히 말씀드리는 이유는, 설벽이 이 루트에 있기 때문이에요. 설벽을 보기 위해 알펜루트의 한쪽 끝 지점인 다테야마 역(475m)에 도착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니, 7분 만에 해발 977m의 비조다이라(美女平)역에 데려다주더군요. 무려 평균 경사가 24도였습니다. 풍경은 단숨에 겨울로 바뀌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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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설벽으로 데려다줄 고원버스. 환경을 고려해 만들어진 하이브리드 버스다. (오른쪽) 봄이지만 아직 눈이 남아있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비조다이라역에서 설벽까지 가기 위해서 다시 고원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눈이 쌓인 낮은 벽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주변에는 봄과 겨울이 기싸움을 하는 것처럼 세상에는 초록과 눈이 이리저리 섞여 있었습니다. 음과 양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함께 있는 기분이랄까요. 편안하게 북알프스의 풍광을 보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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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알펜루트 설벽. 설벽 사이를 차가 천천히 달리고 있다.

고원버스를 타고 50분쯤 달리니 무로도(室堂)역에 닿더군요. 무로도역은 해발 2,450m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류장입니다. 본격적인 설벽은 이곳에서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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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이기를 기다렸다가, GPS가 달린 봉을 따라 길을 내면 눈의 계곡이 만들어진다.

버스에서 내리니 설벽이 더 높아 보였습니다. 눈앞에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 한참 동안 입만 벌리고 서 있었습니다. 키보다 10배도 더 높아 보이는 눈의 계곡을 걸으니 두려움이 앞서더군요. 한걸음 더 들어가니, 두려움은 스르르 잦아들고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500m나 이어져 있는 그 길을 천천히 걷다가 달려도 보고, 차가운 벽을 만져 보기도 하고, 오감으로 눈을 느껴 보았습니다. 햇살 찬란한 봄에 만나는 겨울이라니, 두려움도 복잡한 마음도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더군요.

일년 중 단 두달, 봄 속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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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에서 맛보는 카레라이스

눈의 계곡이 가능한 것은 다테야마에 내리는 눈과 함께 기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테야마의 도로들은 매년 12월부터 4월 중순까지 폐쇄된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위험하기 때문이죠. 눈이 내리기 전에 설벽을 만들기 위해 도로 곳곳에 긴 봉을 세워놓습니다. GPS(위성항법장치)를 감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겨우내 눈이 쌓이기를 기다렸다가, 3~4월 집중적으로 눈을 밀어냅니다. 그러면 도로 옆으로 거대한 눈 계곡이 만들어지고, 관광객들은 꽃이 피는 봄 두 달 간 ‘봄 속 설국 여행’을 이곳에서 즐길 수 있게 되는 거죠. 물론 설벽이 계속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온이 올라 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눈이 녹아내립니다. 설벽의 키는 조금씩 낮아지겠죠. 그리고 해가 쨍쨍 뜨는 여름이 되면, 그제야 벽이 다 허물어지고 눈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답니다.


찬란한 봄날,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겨울.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간의 상상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어떠신가요. 겨울이 그리운 분이시라면, 도야마행 비행기표를 검색해보시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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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야마의 각양각색 기념품들

다테야마 설벽 오픈기간

- 매년 개방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다테야마 알펜 루트는 11월 30일까지지만, 눈의 대계곡은 6월 22일까지만 열린답니다. 입장료는 따로 없습니다. 

- 오픈 시간 : 평일 10:00~15:15, 토 일 공휴일 9:30~15:30

- 알펜루트 사이트 : http://www.alpen-route.c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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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펜루트 홈페이지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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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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