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have a cup of tea? 여행자의 친구, 향긋한 차

[여행]by 채지형

Shall we have a cup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민트티. 차 한잔 마시다보면, 멀리 여행왔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에 밖에 나갔더니 낙엽이 뒹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일주일전, 아니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대야에 허덕였는데, 이런 반전이라니요. 하늘도 예사롭지 않았죠.

 

뭉게구름부터 새털구름까지 구름도 두둥실.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더군요.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성큼 다가온 가을을 환영하는 의미로 오늘은 차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보았어요. 차는 여행자에게 중요하죠. 멀리 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기도 하고 편안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타는 차(car)나 마시는 차(drink)나 종류는 다르지만 무척 고마운 친구들이죠. 서늘해진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향긋한 차를 마시러 떠나보겠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옮겨 주는 타임머신, 향긋한 차

여행을 하면서 지역마다 다른 차 문화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 같은 남미에서 만난 마떼부터 시도 때도 없이 마시는 인도의 짜이, 길거리 좌판에서 코피아를 쓴 할아버지가 타주는 달달한 커피, 로마의 유서 깊은 엘 그레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달콤한 것들과 함께 하는 홍콩의 애프터눈 티까지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차를 마시는 풍경들이 있죠. 

Shall we have a cup

마떼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컵. 여기에 마떼 잎을 충분히 넣고 따뜻한 물을 붓는다. 

Shall we have a cup

마떼를 마실 때 쓰는 빨대, 봄비야(Bombilla). 아래에 거름망이 달려있다.

녹차처럼 생긴 차 마떼를 보면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 우슈아이아에 붙어있는 작은 호스텔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 호스텔 식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르헨티나 친구들은 마떼를 번갈아 마시면서 열심히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그들은 '봄비야'라고 불리는 빨대로 마떼를 빨아 마시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하나의 빨대를 이용해 돌아가면서 마시는 것이었어요. 제 차례가 돌아왔는데, 저도 모르게 난감한 표정을 지었죠. 그때 옆에 있던 아르헨티나 친구가 그러더군요. "마떼를 나눠 마시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거야."라고요. 그들에게 마떼는 단순히 음료가 아니라, 이미 생활 속에 녹아있는 문화더군요. 그날 저는 아르헨티나의 그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작은 마떼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마떼는 녹차처럼 잎을 우려서 마시는 차예요. 감탕나무 잎이 마떼 잎인데요, 녹차처럼 생겼어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마떼 잎을 엉덩이가 통통한 컵에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붓고 봄비야로 쭉 빨아 마시죠. 우리가 길거리에 커피가 가득 담긴 컵을 들고 다니듯,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사람들은 마떼를 들고 다닌답니다. 마떼를 빼고 그들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죠. 공원에 데이트 나온 커플도,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 옆에도, 노점상 아저씨의 좌판에도 항상 마떼가 있더군요. 사람들은 마떼를 마시기 위해서 보온병이 담긴 큼지막한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는 수고조차 마다하지 않더라고요.

오색찬란한 색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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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한송이가 피어난 국화차

‘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물론 중국입니다. 중국 지역마다 유명한 차가 있지만, 운남성은 오래될수록 맛과 향이 깊어지는 보이차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보이차는 대엽종 차엽을 발효시켜서 만든 차로,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제대로 만들 수 있죠.

 

저에게 보이차는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던 약손이었습니다. 운남성에 있는 작은 운하의 도시, 리장에서 마신 보이차는 그 어느 곳에서 마셨던 차보다도 따뜻했었어요. 이별의 상처를 털어버리고 훌훌 떠난 여행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리장에서 마셨던 그 보이차를 사고 나니 마치 만병통치약을 얻은 듯 뿌듯해지더군요.

 

운남에서 좋아하는 또다른 차는 꽃차였습니다. 여러 가지 꽃이 섞여있는 것을 즐겨 마셨죠. 처음에 이 봉지를 봤을 때 커피믹스가 떠오르더군요.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섞어놓은 커피믹스처럼, 대추와 잣, 꽃잎과 설탕이 한 봉지 안에 담겨있었거든요. 꽃차는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했습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차, 기운을 내 주는 차, 향기가 좋은 차 등 그 용도와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투명한 다관 속에 마치 춤을 추듯 펼쳐지는 꽃들의 향연이며 오묘한 색의 조화는 마시지 않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게 만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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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차. 눈으로 먼저 음미하고 혀로 느낀다. ⓒ Antonio Foncubierta 

커피로 점을 볼 수 있는 터키쉬 커피

커피 역시 차처럼 단순한 음료의 용도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를 마시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죠. 수백 년 전부터 유럽의 카페들은 예술작품들을 탄생시킨 요람이었으며, 혁명과 예술의 중심이었습니다.

 

달짝지근한 모로코의 커피부터 진하디 진한 터키의 커피,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다는 인도네시아의 커피 루왁, 연유를 부어야 제 맛이 나는 베트남 커피까지 세상에는 수많은 커피들이 있습니다. 여행을 할수록 다양한 커피를 만나게 되고요. 커피를 마시던 그 풍경 속에 들어가 함께 커피를 마시면,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유쾌하고 약간은 야릇한 그 경험을 떠올리기 위해 여행했던 곳의 특별한 커피를 사가지고 돌아오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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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점을 보기 위해서는 커피를 마신 후 찌꺼기의 무늬를 잘 살펴야한다.

터키는 16세기 후반 이스탄불에만 카페가 600여개가 성행할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셨어요. 그러나 명세와 달리 터키쉬 커피의 맛이나 향 자체에 빠지기는 쉽지 않더군요. 터키에서 커피를 잔뜩 사 왔는데, 그 이유는 맛보다는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터키식 커피는 아라비아산 원두를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쓰는데, 1~2명분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입구가 넓은 작은 기구에 물과 커피가루를 함께 넣고 끓여서 만든답니다. 끓이다가 거품이 나서 넘치려고 하면, 잠시 불을 꺼뒀다가 다시 끓이고 끄고를 3번 정도 반복합니다. 달달한 커피를 원하면 미리 말을 해야 해요. 터키식 커피는 커피가 나온 후에 설탕을 넣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불에 끓일 때 설탕을 넣어서 함께 만들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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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구석구석에는 커피점을 봐주는 카페들이 많다. 사진은 베벡의 한 카페.

터키쉬 커피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남는 커피 찌꺼기의 무늬를 보고 운세를 점치는 커피점 때문이죠. 마치 종로에 있는 사주카페처럼 이스탄불의 구석구석에는 커피점을 봐주는 곳들이 적지 않습니다. 남은 커피 가루 모양이 모자처럼 생기면 뭔가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등 점괘를 해석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며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지더라고요.

 

이 외에도 터키에는 커피와 관련된 재미있는 풍습이 있어요. 남녀가 만나는 선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라고 해요. 또 남자가 여자 집에 인사를 하러 찾아갔는데, 여자 마음에 남자가 안들 때는 설탕대신 소금을 넣어서 커피를 내온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들만 가는 모로코의 카페

터키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그 어느 나라사람들보다도 커피를 즐깁니다. 길거리에서 오며가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중동 지역이죠. 이슬람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아니 시시때때로 커피를 마시거든요. 소주잔처럼 작고 앙증맞은 잔에 달콤하기 그지없는 이슬람식 커피를 즐깁니다.

 

처음에는 달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 커피에 중독이 되는 것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더군요. 한 이슬람 도시를 여행할 때 아침저녁으로 찾아가던 길거리 카페가 있었어요. 이 빠진 커피 잔이었지만, 그 잔의 문양과 색은 무척이나 고풍스러웠고 할아버지의 호기심 반짝이는 눈빛은 길거리 커피에 빠져들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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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카페에 가면 여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모로코에서는 남자들이 카페를 점령하고 있다.

커피와 관련해 재미있던 풍경 하나는 모로코에서 커피를 마실 때였습니다. 이국적인 것에 열광하는 여행자들이 모이는 말라케쉬라는 도시였어요. 주택가에 있던 카페였는데,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요.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 때문이었어요. 아랑곳하지 않고 일기를 열심히 쓰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여자 손님은 아무도 없더군요. 알고 보니 그곳은 남자들만 가는 카페였어요. 모두들 하릴 없이 퍼즐을 풀고 있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꽤 평화로운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떠나질 않더군요.

 

차 이야기를 꺼내니, 인도의 달달한 짜이와 터키의 향긋한 애플티, 일본의 진한 녹차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계 곳곳에서 마신 차들이 생각나는군요. 차를 마시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을 보니, 차는 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 가을에는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Shall we have a cup

이스탄불 탁심거리를 걷다가 한 숨 돌리며 마신 애플티.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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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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