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안티구아

[여행]by 채지형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입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의 화산

가을이 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안티구아가 생각납니다. 안티구아는 과테말라에 있는 아담한 도시로, 커피가 잘 어울리는 곳이죠. 골목을 걷다보면 낮게 깔려 있는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안티구아 커피는 커피 애호가들도 엄지를 척 올릴 정도로 향 좋은 커피로 유명하죠. 안티구아 주변에 화산이 있는데요. 커피나무들이 주로 화산의 경사면에 심어져 있어요. 이곳에서 비를 듬뿍 맞고 빛도 풍부하게 흡수하면서 커피나무가 자라는데, 이런 자연환경 덕분에 안티구아 커피는 특별한 맛을 품게 된 것이랍니다.


커피 때문에 안티구아에 갔던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꼽다보면 안티구아에서 나른하게 커피를 마시던 그때가 떠오르곤 한답니다.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안티구아 주변에는 맛 좋은 카페가 많다

오래된 도시가 주는 편안함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고즈넉한 안티구아 골목길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안티구아 곳곳에서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만날 수 있다.

안티구아는 오래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간직한 곳입니다. 안티구아의 건물들은 대부분 17, 18세기에 지어졌죠. 긴 세월을 살아온 도시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답니다. 진한 겨자색과 연한 분홍색, 빨간 벽돌색으로 칠해진 건물들은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기도 하지요.

 

안티구아가 사랑스러운 이유 백 가지 중 첫 번째는 평화로움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자들과 긴 세월 중앙아메리카 땅에서 살아온 과테말라 인디오들이 옹기종기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더없이 평화롭거든요.

 

안티구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빠르께 센트랄(중앙공원)에는 아침부터 밤중까지 크고 작은 수다와 청량감 넘치는 웃음이 이어집니다. 독특한 전통 복장을 한 마야족의 후예들과 어설프게 스페인어를 말하는 여행자들이 한데 모여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신 미소를 터트리죠.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빠르께 센트랄 주변에 있는 길거리 서점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아침

어쩌면 제가 안티구아를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서 걸음을 잠시 멈췄기 때문일 것 같아요.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한달  반 정도 머물렀거든요. 애초에 안티구아에 예정된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어요. 본격적인 남미 여행을 앞두고 생존 스페인어를 배운 후 바로 부지런히 돌아다닐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이 앙증맞은 마을이 여행자의 발길을 놓아주지 않더군요. 일주일은 이주일로, 그리고 한 달로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안티구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스페인어를 배우러 가는 아침 시간이에요. 마을 전체에 깔려있는 자갈길의 감촉을 느끼며 스페인어 학원으로 향하는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레고 신나더군요. 매일 숙제가 쏟아졌지만, 숙제를 안 해도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어요. 100점을 맞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도 아니니,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더군요.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스페인어 학원에서의 수업시간

하루에 받은 스페인어 수업은 네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한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하나의 ‘놀이’ 같았다고나 할까요. 걸음마부터 시작한 스페인어지만, 대부분 바로 써볼 수 있는 것들이라 스페인어 수업은 언제나 흥미진진했죠.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모두가 선생님이었다는 것이에요. 안티구아는 도시 전체가 스페인어 학원이라고 할 정도로 길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선생님이 되어 주더군요. 시장에서도 사진 현상소에서도 모두가 떠듬거리는 스페인어를 기꺼이 참아주더라고요. 바쁜 일이 있어도 한마디라도 스페인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발음까지 교정해주는 안티구아 사람들을 보며, 사람들이 왜 이 도시에 빠지게 되는지 알겠더군요.


그러나 밤이 되면 아침의 평화로움은 열정의 도가니 속으로 사라집니다. 안티구아의 유명한 펍, 모노 로꼬(‘미친 원숭이’라는 뜻)에 세계에서 날아온 젊은이들이 모여 과테말라의 대표 맥주인 가요(‘수탉’이라는 뜻)를 손에 들고 여행에 대해, 삶에 대해 목청을 높여 떠들어 대거든요. 특히 목요일에는 내로라하는 살사 선수들이 살사 바에 모여 현란한 실력을 뽐내는데, 그때가 되면 이 고풍스러운 도시는 세계의 그 어떤 도시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르곤 합니다. 낮의 평화로움이 어떻게 이런 열정을 숨기고 있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죠.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과테말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맥주, 가요(gallo) 표지판

안티구아 주변의 반짝이는 보석들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라고데 아띠뜰란

과테말라의 멋진 여행지들을 당일치기나 1박 2일로 짧게 여행할 수 있는 허브 도시라는 점도 안티구아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주말만 되면 여행 가방을 챙겨서 여행 속 여행을 떠나곤 했거든요.

 

짧은 여행 중 가장 매력적인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꼽히는 ‘라고 데 아띠뜰란’이었어요. 그곳을 찾은 첫날,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 아래 넓은 호수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호숫가에서는 마야족 여인네가 머리를 감고 있었어요. 그늘에 앉아 한참동안 호수를 바라다보니, 뭔지 모를 에너지가 조금씩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더군요. 아, 이것이구나 싶더군요. 라고 데 아띠뜰란 호수 주변에는 명상가들이 모여 있는 섬도 있어요. ‘산마르코’라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려 명상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답니다.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히피 배낭족들의 보금자리, 쉘라

라고 데 아띠뜰란 외에도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는 히피 배낭족들의 보금자리인 ‘쉘라’와 까만 모래사장이 유명한 ‘몬테 리코’, 아기자기하나 기념품을 사기 좋은 ‘치치카스테낭고’ 가파른 산이지만 화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빠까야’까지 안티구아 주변에는 보석 같은 곳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어요.

 

서울의 일상을 살다가, 숨이 턱턱 차오를 때면 안티구아에서의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다보면 안티구아산 커피의 진한 향기와 편안함이 온몸을 찬찬히 감싸주고, 가슴이 다시 콩콩 설레기 시작하거든요.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을, 과테말라

까만 모래가 인상적인 몬테 리코

2016.09.12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채널명
채지형
소개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