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라이브

[여행]by 채지형
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

칠산정에서 내려다본 백수해안도로

요즘처럼 답답했던 때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사방이 다 막힌 것 같은 날들인데요. 이럴 때는 잠시 ‘멈춤’을 누르고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뭔가 응어리지고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영광에 있는 백수 해안도로입니다.


백수 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길이랍니다. 저에게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마음이 힘들면 찾아가곤 하는 길이라, 치유의 길이라고나 할까요.

칠산 바다 품고 시원하게 드라이브

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

칠산정에서 내려다본 백수해안도로

백수 해안도로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석구미마을에서 대신리를 거쳐 원불교 성지가 있는 길용리까지 이어지는 16.8km 길이의 길이에요. 왼쪽에는 해안절벽이, 오른쪽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지죠.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멋진 바위들까지 빼고 붙일 것 없이 그림 같은 풍경화 한 폭이 연출된답니다. 온 세포를 짓누르고 있던 스트레스가 바람과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반갑게 맞아주는 바위들을 하나씩 둘러보면,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지죠.


이곳에 오는 분들은 칠산정과 백암전망대, 노을전시관, 그리고 영화 ‘마파도’ 촬영지를 차례로 돌아보곤 하는데요. 발걸음이 먼저 가는 곳은 역시 칠산정입니다. 바다에 옹기종기 떠 있는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라고 하는 일곱 섬에서 이름을 따 칠산정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칠산정에 서면, 나고 드는 차들과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 늠름하게 서 있는 절벽과 절벽을 때리는 파도가 한눈에 들어오죠.


칠산정에 오를 때는 보온병에 차를 한잔 담아가면 좋아요. 나만을 위한 정자인 양 호사를 부려보는 것도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랍니다. 바람이 세기 때문에 따뜻하게 입고 올라가시고요.

눈도 입도 즐거운 칠산타워 전망대

해안도로라고 해서 드라이브만 고집하실 필요는 없어요. 차에서 내려 걸어보시면 더 좋아요. 바다를 가깝게 볼 수 있는 칠산정에서 노을 전망대까지 약 3km 되는데요.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바람의 숨결과 파도 소리에 푹 빠져 걸을 수 있답니다. 걷다보면, 건강 365계단이 나타납니다. 길이 바다로 이어져 있어, 특별한 기분을 안겨주죠. 계속 내려가다 보면 용왕님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하게 됩니다.


백수 해안도로와 함께 칠산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요.  약 한 달 전(2016년 10월 11일) 문을 연 영광 칠산타워인데요. 높이가 무려 111m로, 전라남도에 있는 전망대 중에서 가장 높아요. 1층에는 영광의 특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판매장이 있고 2층에는 향토 음식관이 마련되어 있어요. 푸른 바다로 눈을 채우고 맛있는 남도 음식으로 배를 채우다보면, 가을의 헛헛함이 조금은 사라질 것 같아요.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영광

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

인도 승녀 마라난타가 384년 불법을 전한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영광 법성포에 자리하고 있다. 

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

우리나라의 다른 사찰과 달리 인도 간다라 양식의 불상을 볼 수 있다.

영광은 종교 성지로도 유명합니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와 불갑사도 가보셔야 합니다. 백제는 고구려에 이어서 두 번째로 불교를 받아들였어요. 384년 침류왕 원년 백제의 불교가 들어온 곳이 바로 영광이었죠. 그래서 영광에는 불교 유적지가 풍부합니다.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法聖浦)도 백제에 불교를 전하러 온 성인 마라난타가 뱃머리를 댄 포구라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답니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마라난타가 전했던 불교와 불교예술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라, 인도의 향이 진하게 깔려있거든요. 대승불교 발원지인 간다라의 조각과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 먼저 나타납니다. 간다라 미술관에 가면, 불교가 전해진 역사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볼 수 있는데요. 문득 '마라난타'라는 성인이 말을 거는 것 같더군요. 수천 년 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새로운 세계로 뛰어든 국제적인 지식인, 마라난타. 그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그가 했을 번민과 고민이 남다르게 다가오더군요. 마라난타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의 삶은 또 다른 깨달음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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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 전경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돌아본 후에는 마라난타가 창건한 불갑사로 향했습니다. 초가을 불갑사는 꽃무릇 세상이 펼쳐집니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초가을에는 절 자체가 북적북적하죠. 절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꽃무릇 때가 지나서, 사람이 그다지 많진 않아요. 11월의 불갑사. 조용해진 불갑사가 더 마음에 와 닿더군요.


불갑사에서 눈길을 끈 것은 꽃창살이 아름다운 대웅전과 절 뒤를 감싸고 있는 참식나무 군락이었습니다. 연화문과 국화문, 소슬빗살 무늬로 처리된 꽃창살 덕분에 대웅전이 한층 화사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불갑사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부분은 용마루 위에 있는 도깨비 얼굴 모양의 기와예요. 언제, 누가, 왜 저렇게 지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어요. 근엄한 절 위에 앉아있는 도깨비기와에 눈길이 자꾸 가더라고요. 대웅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형식으로 지어졌어요. 보물 제380호로 지정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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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 대웅전의 꽃문양

비겁하지 않은 생선, 굴비

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

법성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굴비두릅

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

영광굴비

영광을 이야기할 때,  이것을 꺼내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것을 빠트리는 기분이 들죠. 바로 굴비입니다. 법성포에 가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굴비 거리가 있어요. 영광 여행을 다녀오면 언제나 배와 손이 두둑해지죠. 굴비 정식으로 혀를 호강시켜주고 그때 그 맛을 추억하기 위해 굴비 두릅을 들고 올라오니까요.


옛날보다 수심이 얕아져 굴비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해요. 그래도 영광굴비는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넘쳐흐르죠. 영광굴비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건조 방식에 있습니다. 굴비는 썩히지 않고 말리는 것이 중요한데, 법성포의 지리적 위치상 건조가 잘 되고 맛있는 굴비를 만들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죠. 적합한 습도와 기온이 유지되니까요. 여기에 천일염으로 염장하는 제조 방식이 더해져 전국 유일의 영광굴비가 만들어진다고 해요.


'굴비'라는 이름에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고려 인종 때 법성포로 귀양을 온 이자겸이 그 맛에 반해, 이것을 임금에게 바쳤어요. 그런데 이것이 아부가 아니라, 백성된 도리로 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굴비(屈非)'로 지었다는 이야기랍니다. 굴비의 유래를 듣고 나니, 상 위에 올라온 굴비가 조금 더 특별해 보이더군요. 백수해안도로에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열심히 분위기를 잡았던 것이 얼마 전인데, 굴비를 맛보며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네요. 이래서 마음이 울적하면, 무작정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 같아요.

마음이 답답할 때, 백수 해안도로 드

고즈넉한 불갑사의 가을

20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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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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