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싣고 두둥실 남인도 수로유람

[여행]by 채지형

“남인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요? 언니, 제가 허니문으로 가고 싶었던 곳이에요. 보트 타고 수로유람 하는 것이 제 로망 중 하나였거든요.”

 

신혼여행지를 말하자마자, 인도를 사랑하는 후배 지혜가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혜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수로유람이 어떤 것일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보트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 그다지 특별할 것 같지도 않았고요. 배를 한두 번 타본 것도 아니고 말이죠. 1박 2일 배를 타고 물 위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죠. 

코코넛 나무가 이어진 수로 따라 흔들흔들

낭만 싣고 두둥실  남인도 수로유람

하우스보트가 흘러갈 수로

알고 보니 남인도 수로유람은 인기 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였어요. 남인도 서쪽 께랄라 주에는 900km에 달하는 물길이 이어져 있어, 옛날부터 차보다 배가 더 물건을 운반하는 데 유용했죠. 께뚜발람(Kettuvallam)이라고 불리는 수송선이 다녔는데요. 어느 날 이 수송선을 여행자용 보트로 시범 운영을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해요.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수로유람은 남인도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답니다. 

 

일반적으로 배낭여행자들은 수십 명이 타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데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전용 보트를 빌릴 수도 있답니다. 저희는 둘이서 배를 통째로 빌리는 호사를 누려보기로 했습니다. 허니문이니까요. 가격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더군요. 1박 2일 수로유람과 맛있는 식사, 편안한 잠자리를 포함해서 6,000루피. 우리나라 환율로 바꾸면 1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어요. 더 고민할 필요가 없더군요. 

 

출발은 코친의 숙소 앞. 택시를 타고 40분쯤 달렸습니다. 길 양쪽에는 키 큰 야자수들이 줄줄이 서 있고 드넓은 새우 양식장이 이어졌습니다. 남인도의 풍요로움이 느껴지더군요. 드라이버는 일요일이라 차가 막히지 않아 일찍 도착했다며, 자그마한 배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낭만 싣고 두둥실  남인도 수로유람

여유만만 물 위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하우스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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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막대기로 방향을 조정하는 길잡이

우리의 1박 2일을 책임질 하우스 보트였습니다. 보트 위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건강해 보이는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주더군요. 우리의 길잡이 아저씨였습니다. “나마스떼”하고 반갑게 화답하니, 뒤에 있던 다른 스탭들도 나와 인사를 건네더군요. 배의 앞과 뒤를 각각 담당하는 스탭 두 명과 요리사까지, 모두 3명의 스탭과 함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깨끗하게 치워진 테이블 위에는 타고르의 책이 놓여 있었고요. 의자는 보기보다 편안하더군요. 가방을 배 위에 던져놓고 의자에 몸을 던졌습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들어오니 더 없이 마음이 가벼워지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뱃놀이

배는 좁은 수로를 타고 천천히 흘렀습니다. 잔잔한 물결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께랄라의 아름다운 물빛을 보여줬습니다. 수로를 따라 사람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의 꼬맹이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더군요.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요. 옆으로는 오리와 닭이 종종걸음을 걸으며 먹이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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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가 늘어선 수로를 따라 살랑살랑 흘러간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물 위를 천천히 흐르다 보니, 문득 이렇게 고요하게 배를 타 본 적이 있나 싶더군요. 나른해졌습니다. 봄볕을 쬐는 고양이처럼 까무룩 졸기도 하고요. 이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배의 주인공이 우리 두 사람뿐이라는 것도 꽤 괜찮더군요. 분주하고 정신없는 인도를 여행하다,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니 이것이 바로 허니문이구나 싶더군요. 사방은 고요했고 햇살은 따사로웠습니다.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날씨. 앞에는 키 큰 코코넛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수로에는 야자수의 그림자가 또 다른 그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더군요. 그저 미소 띤 얼굴로 눈빛을 나누며 “좋다, 좋아”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소담한 마을 구경과 시원한 바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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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해변과 정박해있는 배들

배 위에서는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습니다. 멍하니 앉아있는데, 뒤에서 쉬고 있던 길잡이 아저씨가 잠시 내리자고 하더군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50미터쯤 걸었습니다. 거침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인도양이 눈앞에 나타나더군요. 소담한 수로에 흐르는 물과는 다른 느낌이었죠. 바다가 주는 시원함, 거친 힘이 달려들었습니다. 보드라운 모래사장 위에는 멋진 배들이 줄줄이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려진 배들도 있더군요. 인도사람들은 힌두교를 믿는다고 알고 있지만, 께랄라 지역에는 기독교를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답니다. 유럽 사람들이 향신료를 구하러 들어온 곳이 남인도다 보니, 이곳에 기독교가 많이 퍼지게 된 것이죠. 역시 남인도는 평소에 보지 못한 인도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배로 돌아가는 길. 길잡이 아저씨가 숲속으로 인도하더군요. 작은 숲이었는데 그 안에는 시나몬 나무와 손을 대면 몸을 움츠리는 귀여운 식물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현장학습 나온 초등학생처럼 신나게 길잡이 아저씨를 쫓아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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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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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1하우스보트에서 맛 본 음식들

한바탕 마을과 숲을 돌고 오니 배가 출출해지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요리사 아저씨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밀즈였습니다. 손님은 저희 둘밖에 없는데,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해 짜파티도 만들어주었습니다. 애피타이저로 먹는 빠빠드(papade)도 빠트리지 않더군요. 빠빠드는 기름에 튀겨 고소한 맛이 나는데, 너무 가벼워 바람에 날아가려는 바람에 붙잡느라 한바탕 씨름을 하기도 했습니다. 체크무늬 테이블보 위에 차려진 식사. 요리사 아저씨에게 엄지를 척 올려 보이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없이 평화로운 아침시간

해질 즈음. 스탭들은 배를 정박시키더군요. 배에서 사용할 전기를 충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스탭들은 마을로 자러 가고, 배에는 온전히 저희 부부만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고, 세상은 고요하고, 맛있는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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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넉넉한 하우스보트 내부

배 가운데에는 방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배 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더군요. 에어컨도 달려 있고요. 배에서 잠이라니, 흔들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깊은 잠을 즐길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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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아침을 여는 시간

하우스보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아침이었습니다. 새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는데요. 작은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 사이로 빛이 조금씩 들어오더군요. 울창한 야자수 숲과 그 앞에 펼쳐진 고요한 물. 고즈넉함 자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옴샨티’를 읊조리며 손을 모으게 되더군요. 이보다 더 평화로운 순간이 언제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무념무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요.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 기분이 들더군요. 마침 그때 마을에 자러 갔던 스탭들이 돌아와, 싱그러운 아침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도 더없이 환한 얼굴로 답했습니다. 귀한 시간을 갖게 해준 세 명의 스탭들과 수로유람을 소개해준 후배 지혜, 그리고 손 흔들어준 께랄라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밀려들더군요. 1박 2일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배만 탔을 뿐인데, 내리려니 어찌나 아쉽던지요. 언젠가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이곳을 다시 찾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야 하우스 보트와 작별할 수 있었답니다.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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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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